최근 영화들의 화두는 시간여행입니다.
타임워프 혹은 타임슬립이라고 불리우는 이런 방식은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프리퀼 만큼이나 많은 영화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화두는 젊은 감독이건 노년의 감독이건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럽을 돌며 세상만사를 이야기했던 우디 앨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는 끊임없이 유럽을 이야기했고 그 중에는 프랑스 파리에 대한 이야기도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놓고 파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겠다는데요. 구식 푸조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모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입니다.
소설가인 길(오웬 윌슨 분)은 약혼녀인 이네즈(레이첼 맥아덤스 분)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장인어른 사업차 겸 여행도 하기 위해 방문하게 됩니다.
이네즈에게는 부모님이자 길에게는 장인과 장모인 존(커트 풀러 분)과 헬렌(미미 케네디 분)도 이들의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정치 이념까지 들먹이는 길의 이상한 성격이 존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이들의 앞날을 축하해주러 온 길에 흥겨운 여행길이어야만 했겠죠.
우연이 만난 이네즈의 절친이자 커플인 폴(마이클 쉰 분)과 캐롤(니나 아리안다 분)을 만나면서 이들의 여행은 이어졌지요.
근데 잘난척하는 폴을 보고 길은 무진장 기분이 나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잘 알고 있음에도 이네즈에게 무시당하는 것도 불쾌하기만 합니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러 길을 나선 길... 그런데 길(Gil)이 길(Way)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열두 시 종이 울리고 갑자기 나타난 클레식 푸조 한 대... 얼떨결에 탑승한 길은 그가 그렇게 꿈꾸던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가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뭔가 고뇌에 가득차 있는 헤밍웨이(코리 스톨 분)도 만나고 세기의 카사노바 피카소(마르샬 디 폰조 보 분)도 만납니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그녀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분)도 만나죠. 그 뿐만 아니라 헐리웃용 작품으로 평가받던 자신의 작품을 여류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캐시 베이츠 분)에게 선보이는 영광도 얻게 되지요. 또한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수다쟁이인 살바도르 달리(애드리언 브로디 분)를 비롯해 문학을 사랑하지만 항상 티격태격하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톰 히들스톤 분)와 그의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엘리슨 필 분) 부부도 만납니다.
이렇게 길은 현재와 1920년대를 정신없이 다니고 있고 그러니 남들 눈에는 그가 재정신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런 모습을 이네츠와 그녀의 부모(길에게는 장인, 장모)가 이해할 리가 없지요.
한편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이 남자에 아드리아나는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길과 아드리아나는 또 다른 시대의 파리로 향하게 됩니다. 과연 이들이 꿈꾸는 황금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우디앨런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테마가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죠.
그것은 그 국가의 도시만 집중적으로 파고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곽경택 감독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뉴욕이나 뉴저지를 자주 이용했고, 영국 런던이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았죠.
그렇다면 바로 여기 프랑스 파리는 어떠했을까요? 배우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를 생각하셨다면 기대가 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디 앨런은 기대에 버금가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말이죠.
영화가 시작되고 약 3분간 뜬금없이 파리의 전경을 비추는 것은 파리의 아름다움을 이제부터 느껴보라는 우디 앨런의 신호같아 보이네요.
사실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은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잔재미를 주지만 때로는 우리가 모르는 인물들이 많아서 영화 자막 밑에 각주(주석)을 달아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모르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선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하기전에 그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보기로 하죠.
먼저 헤밍웨이(1899~1961)는 말이 필요없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죠. 미국 소설가이자 시인이죠. 「노인과 바다」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등의 소설을 발표하여 많은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프리렌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로 변하게 되었지요. 그는 여기서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이라는 여류작가의 영향을 받는데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길'도 자신의 작품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작품성을 인정받고 싶어하지요. 실제 거트루트 스타인도 헤밍웨이처럼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1902년에 프랑스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의 아내이자 역시 작가였던 젤다 피츠제절드(1900~1948)의 경우 검색을 해야 겨우 확인이 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남편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부도 1924년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생활을 하는데요, 남편이 소설 집필에 매달리는 동안 아내는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외도도 하였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의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밝게 그려지긴 했지만 실제로는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길'을 1920년대로 들어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스페인 태생의 화가이지만 그 역시 1920년대 프랑스로 넘어가 영화 <황금시대>의 작품에 도움을 주기도 했고 훗날에는 히치콕 감독과의 작업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피카소(1973~1881)와 헤밍웨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아드리아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힘을 다해(?) 검색을 총동원했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없더군요. 제가 볼 때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1920년대 사람들 중 가상의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우디 앨런이 극적 재미를 위해 필요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럴 수 밖에 없는데에는 아드리아나와 길이 1890년대로 또 다른 시간여행을 하게되는데요. 길은 1920년대가 '벨에포크(황금시대)'라고 생각했었고 반대로 1920년대를 살았던 아드리아나에게는 1890년대를 동경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심지어는 아예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죠. 고갱(1848~1903)과 드가(1834~1917)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멋져보였고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문제는 이런 과거와 낭만을 이해 못하는 것이 비단 이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죠.
길의 약혼녀 이네즈가 티격태격하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 없는 것이죠. 과거 시대를 이해 못하고 과거 프랑스의 낭만을 이해 못한다는 점은 그렇기 때문에 폴이 길을 보고 '황금시대 사고'에 빠졌다고 비아냥 거리는 모습도 보이게 되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그 낭만을 우리가 너무 잊고 사는 게 아닌가라는 아쉬움이죠.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힘들어도 그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질적인 형편은 어려워도 낭만을 알고 살던 착한 사람들이 그 시대에는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 지금 이 시대를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길이 골동품 가게를 드나들고 거기서 만난 가브리엘(레아 세이두 분)에게 호감을 갖는 것도 마음이 통한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낭만은 아름답지만 폭력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죠.
웃기는 것은 이런 폭력도 하나의 추억과 낭만으로 생각하다가 이것이 정치적 이념으로 변질되는 과정이겠지요. (구체적으로 뭐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더 이야기하면 제 블로그의 취지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이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초반에 길과 그의 장인이 정치적 이념에 대해 떠드는 부분은 자칫 위험한 장면으로도 보였거든요. 누구의 이념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화가 아닌 폭력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여기서 말하는 낭만이라는 단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화려한 캐스팅도 인상적이지만 192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엮어놓은 우디 앨런의 솜씨에 놀라게 되는 작품입니다.
그것에 적당한 인물을 찾고 거기에 나름대로 비슷한 싱크로율을 지닌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만족하시는지요? 100% 만족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잦아진 것은 그 때의 낭만이 오히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추억에 너무 젖어버리면 그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봅니다. 영화 속 1920년대에 갖혀버린 사립탐정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황금기' 혹은 '황금시대'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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