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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삶은 아름다운가에 대한 질문... 고문 속에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다.

송씨네 2012. 11. 25. 14:41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설경구 분)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대목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역사의 수레바퀴에 많은 시련을 겪은 그는 어쩌면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고문 아닌 고문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최근 1985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1997년이 주목을 받은데 이어 1985년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힘든 시기, 짧은 순간 많은 격동의 시기를 겪은 시절이라서 그런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얼마전 개봉한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에 이어 다시한번 1985년의 그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이번에는 미국 문화원이 아닌 남영동의 어두운 어느 사무실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영화 <남영동 1985>입니다.

 

 

 

1985년 9월 4일... 목욕을 마친 한 사내가 다른 이들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늘상 그러던 일이라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어디론가 인계되고 도착하자 마자 이유없이 구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사실을 말하라고 사람들이 종용하고 있지만 이 남자는 입을 쉽게 열것 같지 않습니다.

515호... 여기에 남겨진 이 남자의 이름은 종태(박원상 분)...

박전무(명계남 분)은 계속 그에게 말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알고 있는게 없는 이 남자는 아무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학교 동문인 윤사장(문성근 분)이 달래보지만 여전합니다. 박전무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시달림 당하는 이 남자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장의사라... 별명이 장의사라고 하길래 자신의 억울함을 시원하게 풀어줄 의사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장의사라 불리우던 두한(이경영 분)은 알고보니 최고의 고문기술자였던 것이죠.

칠성판이라는 기구는 기본이고 여기서 물고문과 전기고문, 고춧가루 고문 등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515호에서 종태를 고문을 돕는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되지요.

집에는 못가더라도 죽어도 야구중계는 라디오로 들어야 하는 강과장(김의성 분), 큰 덩치로 종태를 감시하는 백계장(서동수 분), 애인의 변심에 고민하는 이계장(김중기 분), 나이는 어리지만 항상 이계장과 티격태격하는 김게장(이천희 분) 등등...

죄가 없는 그이지만 이 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없는 죄를 만들어야 합니다.

진실로 포장된 거짓을 말하고 나면 또 다른 악몽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의문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고문 이야기로 러닝타임을 채우는게 가능하겠냐는 의문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2010년에 만들어진 영화 <베리드>는 아예 좁아터진 관에서 95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십 여분의 시간이 더 긴 이 작품이 쉬울 수도 있지만 어려운 도전이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남영동 1985>는 상당히 보고 있으면 괴로운 영화입니다. 다양한 고문이 등장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문들이 잔인한 고문들을 이어놓지는 않았으니깐요. <쏘우> 시리즈의 직쏘처럼 잔인한 부비트랩이 아닌 도구로만으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잔인하지 않을 뿐이지 그것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지금은 고인이 된 故 김근태 씨의 남영동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책 '남영동'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니깐요.

민주주의 관련 운동을 하던 故 김근태 전 의원(영화에서의 종태)은 젊은시절 월북한 형들과 몰래 만나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면서 그를 가만히 놔둘 생각을 하지 않지요.

수많은 진술서를 작성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로 빈칸에 사람 이름을 채워야 한다는 것도 고통일 것입니다.

그 고통, 지옥의 문으로 들어서게 만든 이가 바로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죠.

피를 흘리지 않고도, 얼굴과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고문을 가하는 방법을 연구한... 하지만 그는 의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닙니다. 고문 기술자이니깐요.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감을 느끼게 만드는 대사가 앞에 이야기했던 칠성판을 가져오라는 것일 겁니다.

무시무시한 도구에 양심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남자도 거짓말쟁이로 만드니깐요.

얼마전에 방송한 드라마 <각시탈>에서는 대못상자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순순히 사실을 고백하는 독립투사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기억하실텐데요.

이처럼 고문의 후유증은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조차도 졸지에 나쁜 사람, 변절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죠.

 

 

종태가 피로감에 코피를 쏟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에서는 피 한방울 등장하지 않습니다.

출혈이 심한 고문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지 않은 것이지만, (심지어는 성기노출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앞에서 이야기드렸듯이 잔인함보다는 반복되는 고문으로 인한 분노감과 거부감이 이 영화를 공포스럽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도 충분히 106 분의 러닝타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데에는 최근 인권운동으로 관심을 돌린 정지영 감독의 노력이 컸다고 봅니다. 전작 <부러진 화살>처럼 인권에 대한 이야기지만 분명 스타일은 달랐고 그것이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들이 많이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길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인데요. 영화속의 고문장면들은 약간의 모방성의 가능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 그릇된 비행 청소년들이 이 것을 보고 또 다른 방식으로 왕따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생각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듭니다. 삐뚤어진 성향을 가지지 않은 청소년들에게는 정말 이 작품을 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기가 약간 애매합니다.

 

 

 

 

 

 

 

<부러진 화살>에서 양심있는 변호사로 등장한 박원상 씨는 故 김근태 의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종태로 열연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고문 장면을 참느리라 고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와 달리 실제 가해지는 폭력은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고문을 받는 박원상 씨도 그렇고, 고문을 가하는 두한 역의 이경영 씨도 여간 고생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특히 이경영 씨는 이 작품과 곧 개봉될 <26년>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는 전에도 간간히 영화에서 카메오로 등장하거나 적은 분량에도 기꺼이 출연하는 열정을 보여주었고 최근에는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 시즌 3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고 재도약하는 그의 모습도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위의 두 사람외에도 얼마전 개봉한 <늑대소년>에서 마치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의 뚱보 군인 김준현 씨를 연상시키는 포스로 인상을 심어준 서동수 씨를 비롯해 돌아온 홍상수 사단의 배우 중 한 명인 김의성 씨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천희 씨는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님에도 사건을 수습하는 박계장 역할로 등장했고요, 신인으로 첫 영화무대에 도전하는 김중기 씨는 종태를 구타도 하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 약간은 특이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이 영화에서 박원상 씨나 이경영 씨 만큼이나 분명 머릿속에 오래 남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치계와 영화계에서도 최고의 콤비를 자랑하는 명계남 씨와 문성근 씨도 활약상이 대단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인권 문제 등을 다룬 영화에 출연하고 있지만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아 관객들의 의식을 전환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영화의 삽입곡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한 것도 인상적인데요.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빙빙돌아라...'로 시작되는 동요로 알려진  'Johnny I hardly knew ya'(이 곡의 제목도 저는 오늘 처음 알았네요.)의 경우 가사만 들으면 그냥 놀이용 동요로 생각되실지 모르지만 2차 세계대전 시대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이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자 슬픔에 잠긴 아내의 심경을 담은 노래였다고 합니다. 아일랜드의 대표적 노래로 의외로 1980 년대에서 시위에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동요하나가 이런 반전을 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을 겁니다.

또한 고문 기술자 두한이 휘파람으로 그렇게 부르던 '클레맨타인'(우리에게는 이렇게 알려진 제목이지만 'My Darling Clementine'이 원제입니다.)의 경우도 원래는 19세기 황금광 시대로 불리우던 시절 수해로 딸을 잃은 광부의 슬픔을 이야기한 노래라고 합니다.

뜬금없는 동요였을지 모르지만 알고보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곡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좀 특별합니다. 실제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이 크레딧에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일어나는 관객이 한 명도 안보입니다.)

그들의 증언은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살아돌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며, 살기위해 다른 이를 부정해야하는 자신이 싫었다는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얼마전 개봉한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에 등장했던 미국 문화원 사건을 언급합니다.

또한 모든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 덕분이라고 칭송하고 전두환 전 태통령을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보입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공감코드를 적용시키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의도적이라고요? 심지어는 정치적인 영화에는 별점 주는 것도 아깝다는 어느 우수회원의 비난도 보입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시죠. 왜 이렇게 우리가 이들 사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