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엔딩노트]행복하게 살다, 그리고 행복하게 죽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다!

송씨네 2013. 1. 3. 17:14

 

140자로 말해봐  @songcine81(http://twitter.com/songcine81)

행복한 죽음... 그런게 어디있냐고 물으시겠지만 이 다큐에 그 해답이 있는 것 같네요.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가족과 사별하거나 관계가 소원해진 분들에게 도움이 될 영화입니다.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전체 관람가 영화이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소재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어른을 동반한 관객분들은 죽음에 대해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시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죽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죠! 가족과 화해가 필요한 분들은 꼭 보시길...

 

 

올해 첫 영화로 무엇을 볼까 하다가 얼마전 문을 연 독립전용관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개봉된 영화지만 놓쳐버린 영화들 중 한 편이었지요. 국내판 포스터를 보고 너무 가벼운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깐요.

하지만 실상 이 영화는 그렇게 만만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 <엔딩노트>(원제 エンディングノート / Eding Note)입니다.

 

 

 

 

평범한 중년 남자 스나다 도모야키 씨는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많은 후배들의 격려속에 정년퇴임한 그는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말기암 판정... 청천벽력 같은 얘기죠.

그런데 도모야키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조금은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로 합니다.

엔딩노트... 죽음을 앞두기 전에 해야할 일을 적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죠. 일종의 버킷리스트이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남기는 유언입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치룰 성당을 스스로 구하고 천주교로 개종을 준비합니다.

미국에 있는 아들과 손자들을 위해 직접 달려가 놀아주고 다음해 봄에는 이들이 일본으로 오면 다시 놀아주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일 될지도 모를 선거에는 야당에 투표를 합니다. 평생 여당을 지지 했던 사람이지만 후세를 위한 결정이지요.

죽음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몇 주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서둘러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불러오기로 합니다.

그의 생애에 행복했던 날들이 저물고 있습니다.

 

 

 

 

 

 

다큐에 중심이 되는 인물은 스나다 도모야키라는 이제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남자입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경험했으며 VHS 테이프시대에 결정적으로 공을 키운 인물로 등장하죠.

도모야키의 세대는 어떻게 보면 일본에서는 중요한 사람들로 생각이 되어집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인상적으로 보신 분들이라면 상당히 인상적인 배경이 있는데요. 1960년대 일본의 모습입니다.

의외로 일본도 경제가 발전하던 과도기 시절이었고 도모야키 처럼 많은 사람들이 산업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을 경험한 주역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 퇴물로 변하고 있고 젊은이들과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는 점이죠.

 

바로 이 시절을 태어나고 자란 도모야키의 모습속에 일본의 현재와 미래가 담겨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모습입니다.

핵가족 사회의 시대에서 벗어나 자녀들은 독립을 하고 심지어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 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도모야키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아내와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라는 점이며 그 때문에 둘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서 어쩌면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둔 도모야키에게 보이지 않는 가족이 있는데요.

바로 막내 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은 특이한 방법으로 다큐가 진행됩니다.

도모야키의 1인칭 시점에서 나레이션이 나오지만 그의 목소리가 아닌 딸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스나다 마미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죠.

사고뭉치는 아니지만 물가에 내놓은 새끼처럼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막내의 이야기를 실제 막내인 본인이 자신의 시점이 아닌 아버지의 시점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독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이것은 김재환 감독의 <MB의 추억>에서 이명박 대통령 시점으로 나레이션이 진행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의 시점으로 대신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인데 그 사람에 감정이입을 해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점이 쉽지 않죠.

하지만 감독인 스나다 마미는 담담하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 장례식을 하고 있는 성당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너무 슬프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다큐라서 담담하게 그려질 것이 뻔한데 도모야키 본인이나 가족들 모두 농담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추억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죠.

자녀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 손자들의 재롱을 보지 못하는 것의 아쉬움도 있으며 아흔이 넘은 노모보다 먼저 떠나는 불효자식이라는 죄책감이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 슬픔과 아쉬움을 의외의 담담함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은 어떤 관객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 영화 <청원>에서도 자신의 안락사를 요청하는 남자가 나오고 죽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이지만 결코 슬프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축제의 분위기로 맞이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 <엔딩노트>와도 약간 유사한 상황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남자와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불가능해보이는 남자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쉽게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너 정말 이러면 죽여버린다', '정말 죽고 싶냐', '아... 힘들다, 살기 싫다' 등등의 말들...

죽는다는 말을 쉽게 내밷는 이 사회가 싫고 그런 사람들이 싫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물론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혼내준다는 말을 말을 살벌하게 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죽는다는 단어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극단적인 단어인데 이것을 쉽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가볍게 보는 이 시대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이죠.

 

 

 

 

 

 

핵가족 시대, 그리고 감성이 매말라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 이 작품을 보시고 우리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화해가 된다면 좋겠죠.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