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너는 내 운명

송씨네 2005. 9. 19. 06:38
'배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저 멀리 보이는 현수막 뒤로 한 남자가 쫓겨나고 있다.
석중은 결혼하고 싶은 농촌총각이다.
사랑하는 젖소들과 함께 사는 평범한 남자이지만 아직 결혼을 못해 배트남까지 갔지만 이 모양이다.
스쿠터를 몰고 가던 중 한 여인을 만났다.
이 동네 순정다방에서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석중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은하라는 여자...
웬지 그녀가 좋다.
하지만 은하는 콧방귀를 내며 거절하더니만 자신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고 접근을 하려하지 않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석중과 은하는 밀고 당기는 상황속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행복도 잠시... 
은하의 남편이라면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술만 먹으면 개처럼 변하는 사람이었다.
은하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이려고 하지만 강합적인 사랑은 역시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나 보다.
한편 보건소에서는 은하를 찾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석중의 목장으로 찾아오고 영문도 모르는 석중은 은하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에이즈...
은하는 조용히 석중 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고 몇 년 후 메스컴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래도 석중은 은하를 사랑하며 그녀에게 약속했듯이 그녀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을 뿐이다.
그래... 너는 내 운명이야...
 
 
박진표 감독이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그의 전작 '죽어도 좋아'에서는 우리에게 소외된 계층 중 하나인 노인들의 성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많은 충격과 화제를 주었던 작품이다.
덕분에 이 작품은 당시 극장에도 걸릴 수 없는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는 위기까지 겪었으며 다행히도 관객들과 만남을 갖았었다.
이번 신작도 어찌보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농촌 총각과 윤락가 여인...
더구나 그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면...
이 작품은 실화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에이즈에 걸린 한 여인을 끝까지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의 한토막 기사를 본 박진표 감독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구상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너는 내 운명'은 집요하게 석중에게 취재를 했던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이다.
이 제목처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박진표 감독의 이번 작품을 보면서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으니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였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과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바로 그것이다.
범죄자와 장애우의 사랑이야기를 이야기했던 이창동 감독, 그리고 농촌총각과 티켓 다방에서 일하는 윤락녀의 사랑이야기를 얘기했던 박진표 감독...
하지만 이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작품보다 어쪄면 더 현실적일 수도 어찌보면 그 반대인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들은 사랑을 함에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죽도록 너만을 사랑해, 이세상 끝까지 너와 함께 할꺼야.'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는 커플 중에 결혼에 골인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정에 의해 이별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별은 이렇게 슬프지 않다.
그렇지만 절대 이 영화는 슬프게 그리려고만 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도 그들은 희망을 향한 한 걸음을 내비치고 있다.
또한 은하가 있는 교도소에서 여성 교도관에게 웃으면 복이온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라던가 석중이 동료들에게 생뚱맞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 그리고 그것을 자기 단골 손님인 청년에게 이야기 하는 은하의 모습을 보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박 감독은 이야기 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은하가 죽는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에이즈에 걸려 투병중인 모습 또한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은하가 교도소 감방에 비친 자기얼굴에 착시를 일으켜 마치 에이즈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전부이다.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빅진표 감독은 그렇게 정면으로 에이즈가 심각함을 알릴려고 하지 않았고 알릴 생각조차 없었다.
(이 영화는 에이즈 예방 켐패인이 아니니깐...)
'너는 내 운명'이란 기사가 실린 후 마을이 발칵 뒤집히고 석중은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는 장면으로 그 상황을 대신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캠패인 영화가 아닌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슬프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박진표 감독의 이번 작품이 웬지 나는 정이 간다.
 
황정민과 전도연의 연기력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일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시나리오를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아 기꺼이 승락했다고 한다.
전도연은 최근들어 파격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는데 '해피앤드'이후 '조선남녀상열지사-스캔들'을 거쳐 이번에도 황정민과 함께한 장면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전도연이 자주 벗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특유의 웃음소리를 다른 영화들 보다는 이 영화에서 많이 보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녀의 웃음소리는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연기하는 은하는 석중에게 있어서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그 사랑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까 슬프게 보이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웃는다.
그 웃음이 웬지 모르게 여기서는 거부감이 없다.
많은 영화와 연극무대에서 명 연기를 보여주었던 황정민의 경우 이번 작품에서는 체중을 늘리는 등의 모험을 강행했다.
솔직히 그냥 영화로만 보면 저게 과연 황정민인가 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덮수룩한 수염과 퍼진 몸매, 목에 건 이제는 찾기도 힘든 구식 핸드폰의 모습까지 영락없는 농촌 총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설경구도 그렇고 요즘 배우들은 영화를 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그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에도 조연들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우리들의 영원한 나사장 나문희의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주먹이 운다'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내 이름은 김삼순'등을 비롯한 작품에서 탄력받은 나문희는 여기서 석중의 어머니로 등장하는데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분홍신'과 '친절한 금자씨' 등 최근들어 여성 조연으로써는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고수희, 그리고 역시 최근 들어 많은 영화에서 조연급으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부선 등 남성 조연들보다는 여성 조연들의 활약이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진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음악들도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왁스의 '오빠'는 신나고 경쾌한 리듬으로 두 사람의 진실어린 사랑을 나타내는 장면으로 음악이 쓰이지만 이 두 사람의 이별 후 윤락가에서 흐르는 슬픈 발라드 버전의 '오빠'는 안타까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쓰인다.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 역시 사랑의 안타까움을 애절하게 전도연의 목소리로 들려주며 영화의 앤딩에 등장하는 '유 어 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이란 이 곡은 '너는 내 운명'의 영문제목이기도 하는데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들의 사랑을 따뜻한 분위기에 맞게 개사하여 들려준다.
 
이 가을 제대로 된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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