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게이샤의 추억-잘나가다가 어디론가 빠져버린 영화!

송씨네 2006. 2. 12. 00:35

※이 작품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스포일러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

움막같은 집에 어머니로 보여지는 사람은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이고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은 이 애처로운 상황에서 두 아이를 팔기로 한다.

비정하다고 욕할지 몰라도 그게 최선책이였다.

언니 샤츠와 함께 어딘가로 팔려간 치요...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뒤로하고 치요가 온 곳은 게이샤들이 모여 있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하츠모모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치요는 위기의 하루하루를 겪게된다.

하츠모모의 라이벌인 마메히는 치요를 눈여겨보게 되고 그녀를 게이샤로 키우기로 한다.

물론 치요가 게이샤가 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자두맛 빙수를 사주면서 친절하게 대한 의문의 아저씨 때문이기도...

사유리로 다시 태어난 치요...

하츠모모의 알 수 없는 음모는 계속되고 과연 샤유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헐리웃 감독 입장으로 본 일본인... 그리고 게이샤(기생)의 삶은 어떨까?

일본이 아닌 헐리웃에 통째로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도쿄를 옮겨놓았다.

세트가 정교하여 과연 정말로 헐리웃에서 그 모든 촬영을 완료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더구나 감독은 뮤지컬 영화 '시카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롭 마샬이며 전체 제작 지휘는 두 말해도 이제는 바보취급 당하는(그정도로 유명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영화의 총 제작을 지휘했다.

 

배우들의 경우 남성들의 경우 일본인 배우들이 대부분 기용되었고 여성의 경우 공리, 양자경, 장쯔이 등의 중국배우들이 비중이 놓은 주연급으로 역활을 맡았으며 나머지 조연급은 역시 일본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왜 굳이 여주인공들이 일본인이 아닌 중국인이냐는 것이다. 게이샤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이 영화는 남자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주연급 여배우역시 일본인이 맡았어야 옮았다. 그렇다고 일본에 여배우들이 그렇게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인데 일본 게이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므로 대부분 일본어 대사가 나와야 함이 정상인데 왜 영어로 대사를 하는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당연히 이 작품은 헐리웃에서 만들어졌으므로 미국식 내맘대로 시네마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 공용어가 영어라고 무조건 생각하는 미국의 아니한 발상이 이 영화를 이해 못하게 만드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영화속에 일어 대사는 기본적인 인삿말정도이며 대부분의 대사는 영어임을 가만하면 (물론 배우들만 이중으로 고생하겠지만...)헐리웃에서 개봉할 때는 영어버전으로, 그리고 아시아의 경우 일어버전으로 대사처리(더빙)를 하는 것이 옮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도 이런 어처구니 없던 경우가 일본영화였던 '냉정과 열정사이'로 기억이 되는데 배우들이 중국배우. 일본배우인데다가 주무대가 이탈리아이다보니 영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여러 국어들이 짬뽕으로 섞여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언어의 통일은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들 중 하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전반적인 연기는 괜찮은 편이다.

장쯔이는 동양적인 미모가 뛰어난 배우라서 그런지 일본 게이샤의 역활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울러 약역을 맡은 공리라던가 액션배우로만 각인이 되어 있던 양자경 역시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중국인 배우가 일본인 역활을 한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모습들이다.

 

남자배우의 경우 치요를 돕는 사내역을 맡은 와타나베 켄이라던가 사유리에 애정공세를 펼친 노부역의 야쿠쇼 코지 같은 일본의 명배우들이 이들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기에 임했다. 와타나베 켄은 이제 헐리웃에서 더 사랑받는 동양배우가 되었고 '쉘 위 댄스'의 무기력한 사내를 연기한 야쿠쇼 코지는 여기서는 정반대의 역활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영상미는 뛰어나다. 롭 마샬이 전작에서 원악 훌륭했던 감독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동양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데 무난히 노력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들의 영어로 이야기하는 부분과 더불어 초반에는 게이샤의 신비와 그들의 삶을 잘 이야기하더니만 일본의 폐망에 접어드는 시기에서는 다른 헐리웃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만세'를 은근슬쩍 외치고 달아나고 있다. 영화에서 게이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며 그들은 몸과 관련된 거래는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점차 위기에 접어든 2차 세계대전 후반 회장과 노부는 갑자기 미국편이 되어 공장을 되살리려고 한다. 더구나 이들의 미인계를 이용하려고까지 든다.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들을 불러모은다는 것...

더구나 순순히 응한다는 것은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소개한 게이샤의 삶과는 조금 빗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술에 찌든 사유리의 친구이다 동료 게이샤인 펌프킨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순순히 미국을 도와준다는 것... 미국이 우월하기에 도움을 받는다는 해석을 하게 된다.

 

아울러 회장이 사유리를 돕는 것은 거의 존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하게 만든다.

사유리가 게이샤가 되고 싶어했던 것도 그 이유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회장이었다는 것은 그를 웬지 키다리 아저씨처럼 표연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그런데 마지막으로 갈 수록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 작품은 중국에서 상영금지를 받았다. 반일감정 있는 나라가 중국 뿐이겠는가?

우리나라도 일제 침략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결코 반갑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런데 반일감정 때문에 상영금지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자국배우가 일본인을 연기한다는 점은 매우 기분 나쁜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007'의 새 시리즈에 북한 장교역에 차인표를 염두해 두었다가 옮은 일이 아닌 것 같다면서 출연을 거부한 경우는 중국에서의 경우와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상영금지를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초반에 게이샤의 삶이라던가 그들의 순결을 지키는 모습 같은 것은 일본관객들이 어느정도 지지를 하겠지만 방금전에서 말했듯이 미국의 일에 발벗고 나서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과연 진짜 일본관객들에게는 무슨생각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원작이 일본 소설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미국인의 눈으로 만들기 보다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중국인이 그것도 일어도 아닌 영어로 이야기하는 영어의 압박 역시 일본 감독이 직접연출한다면 해결되지 않았을까 싶다.

괜찮은 작품인데 이래저래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