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내부...
방송이 신통치 않게 흘러가던 시간... 김 PD는 작가 수진에게 오늘도 혼을 낸다.
동료 작가들이 수진을 도와주기 위해 말을 했으니 다름 아닌 윤석영 교수를 인터뷰하여 방송에 소개해 보자는 것... 수진이 이미 다해놓았다고...
수진과 석영의 만남... 석영은 그런데 수진에게 노래를 시킨다.
그리고 수진과 김 PD는 석영의 추억이 있는 충북의 한 마을로 내려가고 마을 주민을 수소문하고 인터뷰하여 석영의 첫사랑 정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세월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1969년...
유신독제에 항거하는 대학생들...
하지만 그들에게도 여름방학은 찾아오고 늘 그랬던대로 그들은 농활을 하러 충북의 한 마을로 들어선다.
농땡이 치는 석영... 그리고 갑자기 그의 코를 찌르게 만드는 편백나무 향기...
그리고 그곳에는 정인이 있었다.
마을 도서관 사서를 하는 그녀는 너무 소박하고 순진한 여인이다.
그런데 그런 석영은 그녀가 좋아진다.
그 해 여름은 너무 그들에게는 짧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 다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 두 남녀...
별님의
생각은?
개나리 고개는 눈물의 고개
님을 맞던 그때가 그리웁구나
에헤에야
그님은 아무렴 그렇지 그님은
지금은 어디서 개나리 생각하나
-강홍식의 '개나리 고개'(1934년) 중에서...-
날이 추워지는 지금 멜로 영화들이 떠오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품행 제로'라는 독특한 코미디 영화를 들고 온 조범식 감독의 장편 두 번째 영화는 멜로이다.
시사회에서 이 작품을 보고 전에 만들어진 '품행 제로'를 생각하면 확실히 스타일이 다른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같은 감독인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던 1969년 시절로 돌아간다.
당연히 교련복의 대학생들이 득실거릴 것이고, 이 시절은 암스트롱이 처음으로 달 착륙을 성공하였던 시기이다. 영화처럼 달 중계를 본 당시 사람들은 달나라도 이제는 미국 땅(?)이구나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신철폐를 외치던 대학생들이지만 농촌 봉사활동(농활)은 MT 만큼이나 모두들 기다렸을 대학시절 추억꺼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영화도 어찌보면 뻔한 멜로물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이데올로기를 첨가하면 멜로라는 장르는 멜로로 끝나는 것이 아닌 역사적 상황과 그에 갈등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데에는 심심치 않을 것이다.
유신정권과 달 착륙, 농활의 소재는 그래서 적절히 배합된 반죽과도 같다.
그 반죽을 어떻게 익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냐는 과제가 남는데 조범식 감독의 전작이 코미디라는 나름대로의 헨디캡을 잘 물리쳤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은 한류 스타라는 명성에 걸맞는 배우임은 분명한 사실이요, 그 역할은 충실히 하였다.
하지만 너무 코믹한 장면과 엽기적인 장면도 등장하니 이병헌을 좋아하는 일본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해진다.(특히 길거리에 오바이트를 하는 장면은 어떨까?)
수애는 이제 겨우 세 번째 영화이지만 차분하게 연기를 하는 모습에서는 베테랑이라는 느낌마져 들었다. 하지만 너무 영화들이 조용한 멜로 중심이라서 연기 변신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살짝 유턴을 하였지만 아직도 수애는 잔잔한 영화에서 잔잔한 연기만 보여주는 것 같다.
다양한 연기 변신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 외에도 석영의 친구로 등장한 (좀 겉늙어보이는) 오달수, 특별출연한 유해진(김 PD 역), 조경철 박사(달착륙 자료 화면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실제로도 달착륙이 있던 1969년도 그가 해설을 맡았다고 전해진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기/승/전/결을 잘 살 살려 보는데 지루함이 없었다.
앞에 이야기한 유신독제와 당시 정치적 이데올로기 중 하나였던 '빨갱이 논란'을 조심스럽지만 잘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너무 웃기려든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멜로 영화는 시종일관 슬프게 진행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 웃음은 필요하다.
하지만 적장하게 집어 넣어주는 것이 멜로 영화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옥의 티는 없었지만 짚고 넘어갈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우선 1969년 농활을 위해 기차를 타던 이들의 모습 중 기차가 달리는 장면은 좀 어색했다.
CG 처리를 한 티가 너무 났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병헌의 전작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도 MT를 위해 기차를 타는 장면에서 한국철도 로고가 나온 옥의 티가 떠오르는데-MT를 간 시기가 80년대이므로 '한국철도'가 그려진 로고가 아닌 '철도청'이 붙어 있어야 정상이다. 영화 못보신 분은 '번지점프를 하다'를 꼭 보시길...-이병헌과 철도는 무슨 웬수를 졌길래...)
이병헌의 노인 분장 역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노인 분장은 참 힘들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흑수선'의 이미연, '호르비츠를 위하여'에서 초중년(?)으로 등장한 엄정화 등등 노인 분장은 자칫 영화의 감동을 웃음꺼리로 만드는 요소가 되므로 적당히 이용해야 한다.
다행히도 수애는 이 노인 분장을 하지 않은 옛 모습 사진이 등장하여 안심이 되었지만...
(그 이쁜 얼굴 분장하면... 상상이 안간다.)
또한 이 영화는 위험한 대사가 하나 들어가 있다.
마을이장 만덕(정석용)이 마을 도서관에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자, 한전(한국전력)을 비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물론 욕설 포함이다.)
이 장면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얼마전 우리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에서 달동네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걸린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한국토지공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제작자는 의도되지 않는 장면이라고 하지만 한참 이들은 애를 먹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그 때 그사람들' 역시 한동안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걸렸고 오프닝 장면이 암흑으로 시작한 것 역시 기억하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는 이런 것 까지 상대를 한다는 것이 곤역스럽지만 민감하게 돌아가는 것이 요즘 세상인지라 과연 이 대사 하나가 얼마나 위험하게 작용할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적어도 언어 순환은 하지 않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가을로' 이후 개봉 대기작 중에서는 가장 잘 나온 멜로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이 글을 쓰는 나처럼 옆구리 허전한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연인들과 보기에는 정말 딱 좋은 영화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제 낙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가을을 앞두고 극장으로 달려가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하지만 여전히 솔로에게 이 가을은, 그리고 겨울조차도 잔인한 계절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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