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밀양-영화 마니아들이여, 이창동에게 경배하라!

송씨네 2007. 5. 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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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리뷰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스포일러입니다. 주의 바랍니다!

 

 

전직 교사이자 소설가, 문화관광부 장관...

이창동 감독에 관한 경력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의 능력에 놀라게 된다.

문광부 장관을 김명곤 장관에게 넘겨주고 다시 돌아온 이창동 감독...

이 영화의 배경은 경남 밀양이 주 배경이다.

모든 장면이 밀양에서 시작해서 밀양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밀양을 홍보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밀양을 비하하는 영화도 아니고...

 

신애는 죽은 남편을 발자취를 따라 밀양에 왔다. 사랑하는 아들 '준'을 데리고 말이다. 초행길에 자동차가 고장나고 종찬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밀양에 도착했다. 그리고 밀양에 정착한다.

절대로 적응을 못할 줄 알았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인테리어를 논하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녀는 피아노 학원을 차렸고 '준'은 동네에서 좀 떨어진 웅변학원에 보낸다.

그냥 아무일도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들이 사라지고 결국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신(神)은 믿지 않지만 신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믿고 싶었다.

 

'밀양'은 역시 이창동 감독 답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밀양이라는 도시에서 홀로 남은 한 여인의 극복기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는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얼마전에도 다른 영화의 리뷰에서도 거듭 강조를 했지만 이 영화 역시 중요한 핵심이라면 하나님(신)과 용서라는 단어일 것이다.

유괴를 당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얼마전 박진표 감독의 '그 놈 목소리'를 떠오를 것이다. 가슴에 멍이들고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런데 의외로 두 영화의 공통점이 보였다.

앞에도 이야기 했던 신(神)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자녀(둘 다 아들들...)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면서 자신이 다니고 있는 종교에 회의를 느낀다.

물론 다른 점이라면 지선(김남주)은 바로 좌절을 하는 반면 신애는 좌절 속에 교회를 찾았고 하나님에 의해 괴로움도 잊고 아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웅변학원 원장을 용서할 수 있었노라 말한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그녀는 두 번 놀라게 된다.

학원원장도 하나님에게 죄를 빌었다는 것과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를 용서하기 위해 왔건만 이미 자신은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니...

신애의 입장에서는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갑자기 부정하고 악행을 저지른다.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훔치고, 집회가 있는 야외에서는 그 곳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건너편 약국의 장로를 유혹하는 악행도 벌인다.

그렇다, 그녀는 미쳐버린 것이다.

완전히...

 

괴로운 것은 신애 뿐만이 아니다.

그녀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종찬에게도 그녀의 변화를 쉽게 수긍할 수는 없었다.

 

 

이창동 감독은 항상 누군가를 싸이코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박하사탕'의 영호도 그랬고, '오아시스'의 종두도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배우들 모두 설경구라는 점...)

'밀양'에서는 전도연을 그렇게 만들어 놨다.

하지만 그의 전작들이 그랬듯 그들이 왜 미쳐버렸는가에 대한 의문은 이미 앞에 동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같이 보던 내 친구가 이런 주장을 했다.

영화 속에서 신애에게 접근을 하는 종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당신같은 사람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신애)

" ....... " (종찬)

"속. 물~!" (신애)

 

그 친구가 주장하길 영화 속의 진정한 속물은 종찬이 아니라 신애 자신이었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들 '준'이 납치되고 유괴범은 그녀에게 몸값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돈은 피아노 학원 차리고 이런 저런 돈 빼고 남은 전재산 800 여 만원이 전부였다.

(800 여 만원이 담긴 쇼핑백 밑은 가짜 종이돈으로 가득차 있다. 이는 정말로 신애에게 전재산이 그 뿐임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소품이다.)

유괴범은 '그러면 땅 둘러보러 다니는 것은?'이라고 묻는다.

(물론 이 대사는 실제 등장하지 않지만...)

다음 대사에서 신애는 '그냥 그것은 둘러본 것이다'라고 대답을 한다.

사람들에게 과시욕을 보이기 위한 그저 하나의 쇼라는 것이다.

유괴범인 웅변학원 원장은 그것도 모르고 그녀 모르게 서서히 접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논쟁꺼리가 있다.

과연 이창동 감독은 과연 기독교(특히 개신교)를 비하했는가라는 의문이다.

 

앞에도 이야기 했듯 신애의 유혹에 약국집 장로가 넘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섹스를 하는 듯 하다가 장로는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고 이야기하고 행위를 중단한다.

기독교를 다니는 사람은 알겠지만 십계 중에 '간음하지 말라!'라는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실제 개신교도 있어 봤었고 지금 카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이창동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인간의 성욕은 그 어떤 종교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 장면이나 몇 몇 장면을 통해 기독교를 비하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 실제 교회에서 촬영한 장면도 있으며 극중 배역중에서는 실제 목사님도 끼여 있다.

(감독들(혹은 스텝진들)은 촬영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의도를 설명해야 한다. 따라서 그 의도를 모르고 촬영허가를 내는 사람은 없다. 분명 이창동 감독은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님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이 장면에서 기독교를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야외에서 벌어진 기도회 장면일 것이다.

신애는 천막으로 들어가 마이크 엠프를 끄고 거기에 자신이 미리 준비해 온 CD를 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래는 김추자가 부른 '거짓말이야'(1971)라는 노래다.

(참고로 이 노래는 '아름다운 강산', '미인' 등을 작사, 작곡하고 노래한 '락 음악계의 대부' 신중현(1940~)의 곡이다. '거짓말이야'를 김추자가 부른 당시 그녀의 율동이 간첩을 부르는 신호라는 근거없는 낭설로 방송금지를 당했던 곡이기도 했다.)

이 노래가 의미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장면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자식을 잃은 신애의 입장이었다면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분위기이다.

 

 

 

논쟁꺼리는 이 것이 끝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저분한 신애의 집 마당에 살짝 비춰지는 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과연 이창동 감독식의 해피엔딩인가라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모두 그렇게 행복한 해피엔딩은 아니었다.('박하사탕'의 경우 역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처음 장면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해당된다.)

 

인테리어를 바꾸면 장사가 잘 될꺼라는 충고를 했던 신애...

정말로 의상실 주인은 신애의 충고대로 인테리어를 밝게 바꾸고 나서 장사가 잘되었고 신애에게 자랑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은 뚜렷히는 아니지만 이웃과 다시 가까워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장면의 앞장면은 사실 불안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신애는 머리모양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종찬에게 이야기한다. 도착한 미장원은 공교롭게도 웅변학원 원장의 딸이 보조로 일하고 있다. 어쩌면 이 장면에서 또 한번의 신애가 이들에게 용서를 할 수 있는 찬스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신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된다.

그리고 종찬에게 왜 하필이면 여기냐고 묻는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바라본다.
아마도 이 것도 그들을 용서하라는 신의 뜻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화해를 하지 않았지만 이미 화해의 길로 한 걸음 앞써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에 아무것도 못자랄 것 같은 지저분한 마당 흙바닥에 빛이 등장하는 장면은 해피엔딩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창동 감독의 컴백작은 역시 예사로운 작품이 아니다.

물론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삐딱하게 바라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항상 말하지만 이 결론은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이창동 감독이 생각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논쟁꺼리가 되는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되는 날짜에 헐리웃 영화인 '캐리비안의 해적 3 : 세상의 끝에서'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쉽게 논쟁꺼리가 될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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