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황진이-장윤현 감독의 두번째 맬로, 송혜교의 두번째 영화...

송씨네 2007. 6. 9. 21:04

 

나는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화제작 보다는 남들이 보지 않는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런 작품들 중에서도 보석같은 작품들이 존재하니깐...

 

얼마전 하지원이 나왔던 드라마 '황진이'...

나는 이 드라마 역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드라마가 아닌 영화버전의 '황진이'가 선을 보였고 그 주인공으로 송혜교가 확정되었다.

 

드라마 황진이와 영화 황진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그래서 힘든 일이다.

그래서 비교 분석은 여기서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약간의 비교는 필요할 듯 싶다.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가 기생이 된 이유부터가 우선 차이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불공을 드리던 길에 길을 잃어버리던 와중에 기녀들이 춤을 추는 것에 반해 그 길로 뛰어들었던데 반해 영화버전의 황진이는 집안이 기울고, 또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터전을 버리고 기녀가 되기로 결심하는 부분이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황진이의 사랑을 나누는 이는 김은호로 지금으로 치자면 엘리트에 해당되는 양반집 도령이었다는 점... 하지만 영화 황진이의 놈이는 신분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적이 된 불운의 인물이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벽계수의 경우 드라마에서는 그는 악당이지만 영화에서는 황진이가 유혹한 남자에 불과하다. 관할 사또로 부임한 희열이 황진이를 괴롭히는 역할이다.

 

이렇게 보도자료로 본 줄거리로만 봐도 영화버전과 드라마 버전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개봉이 되기 이전부터 하지원과 송혜교의 연기대결이 비교가 된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누가 잘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배우 모두 청순 가련형의 대명사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미모와 지식, 춤솜씨를 겸비한 최고의 기녀를 연기한 그녀들의 노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접속'으로 알려진 장윤현 감독의 신작이다.

'텔 미 썸딩'으로 그는 연출력은 인정받았으나 후속작인 '썸'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멜로를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접속'과 '황진이'는 극과 극의 상황이다.

'접속'은 현대극이지만 '황진이'는 시대극(사극)이라는 점이 그것이며 '접속'이 묘한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야기되었던 것에 반해 '황진이'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처럼 폐쇄적이나 사랑에 갈망하는 청춘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반 벽계수와의 시조 대결이라던가 황진이가 나이든 학자를 찾아가 유혹은 커녕 깨달음을 얻고 가는 장면에서 이 작품의 진가는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의 놈이와의 로맨스가 주축이 되다보니 이야기가 속도감이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송혜교에게도 좋은 찬스인 작품이었다.

이른바 드라마로는 흥행(시청률) 보증 수표였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데뷔작인 '파랑주의보'는 차태현과 열연했음에도 큰재미를 보지 못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다는 것때문에 승락했지만 역시 앞에도 이야기해듯이 하지원과의 비교 평가는 항상 그녀에게 큰 고통이었는지 모르겠다.

 

영화가 잘되고 드라마가 안 되는, 그리고 드라마가 잘되고 영화가 안 되는 배우가 있다.

송혜교는 지금으로써는 후자 쪽으로 봐야 한다.

이는 아직 영화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많은 배우들이 겪는 딜레마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도연도, 김혜수, 염정아 등의 배우들은 드라마에서 영화로 옮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배우들이다.

질책도 받고 항상 위기였던 그녀들이 전환점을 맞는 작품들을 출연하면서 영화가 되는 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

송혜교는 연기의 문제 보다도 관객들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기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열심히 노력하여 영화와 드라마 모두 신경을 쓴다면(물론 두 마리 토끼 잡는 것은 매우 힘들다.) 좋은 배우로 거듭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일부에서는 놈이(유지태)와 황진이의 시나리오상의 만남이 적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자주 등장하며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두 배우가 호흡을 못맞춰서 어색한 연기가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정말 배우가 마주칠 기회가 없다면, 그래서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면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 같은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 파이란과 강재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위장결혼으로 합성해서 만든 사진이 전부이다.)

시나리오에 많이 마주치지 않아 그들의 연기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물론 같이 하나가 되어 연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의 핵심을 알고 연기한다면 마주보지 않고 연기하지 않더라도 명연기는 얼마든지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황진이와 함께한 그녀들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데 드라마 '황진이'에서 그녀를 돕는 역할을 했던 인물로 많은 이들이 백무(김영애)를 꼽는다면 이 작품에서는 윤여정이 맡은 할멈(유모)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윤여정은 참 신기한 배우이다.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감정표현이 뛰어나고 영화의 극중 인물들의 중심을 잘 잡는다.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이나 '오래된 정원',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작품을 보면 그녀가 의외로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어려웠던 인물은 희열 역을 맡았던 류승룡이다.

그 역시도 여러 작품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악당도 아닌 선한 사람도 아닌 참으로 난해한 역을 맡았다. (희열의 본래 모습은 후반에 잘 드러나고 있지만...)

장윤현 감독이 희열이라는 인물를 애매모호하게 표현하지 않고 그의 성격을 뚜렷히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초반에 복선으로 깔아두었다면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을텐데 최근 드라마에 악역과 선한 역할의 경계가 사라진 것을 영화에 적용해보려고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황진이'는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맨마지막 장면에서 금강산의 절경을 보여준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영상미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마지막 대사는 좀 깼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대사는 마치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사 같았기 때문이다.

 

'황진이'의 마지막 대사 中...

바람으로 오세요. 비가 되어 내리세요. 당신따라 바람으로 지내렵니다. 당신 품에서 잠들고 깨어나렵니다. 사랑합니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대사 中....

몇번을 죽고 다시 태어난대도, 결국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 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지녔기 때문이라죠.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을 사랑합니다.

 

사실 공통점은 없지만 두 대사의 맨 마지막에 '사랑합니다'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상당히 상투적이며 두 작품 모두 죽음(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대사로 보였다.

물론 대사의 참신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왜 운명적인, 안타까운 사랑을 한 이들은 항상 낭떨어지로 몰고가는지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는 틀에 얽매어 산다.

하지만 황진이는 당시 인물로써는 현대적인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의 등에 떠밀리지 않은 자신이 하고 싶은 삶을 살았던...

그 삶이 불행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았음에 분명하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답만 찾으려고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정답은 바로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랑보다 우리는 해피엔딩을 원한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만드는 삶은 그래도 해피엔딩이 더 많기 때문이다.

 

 

PS. 어린 '황진이' 아역 배우 너무 귀엽지 않은가?

혹시나 했더니 '각설탕'에서 어린 시은(임수정) 역을 맡았던 김유정이다.

정말 앞으로 우리 눈에 자주 띌 아역배우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