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건축학개론]백 투 더 1990... 기억 저편의 첫사랑은 이런 것?

송씨네 2012. 3. 25. 15:33

 

 

 

첫사랑에 대한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제대로 사랑을 해보지 못한 31년산 모테솔로인 저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경험자들에게는 그 첫사랑의 느낌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과거를 이야기한 영화도 많았습니다만 바로 가까이 1990년대의 이야기는 2000년대의 과거와 지금 현재의 2010년대를 사는 지금과도 분명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삐삐와 주택복권, 그리고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 생각나는 그 시절로 초대합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입니다.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이 각각 두 명... 그러니깐 과거의 커플과 현재의 커플로 나뉘어 총 4명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등장인물이 정해지는 데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과 현재의 장면들이 상당히 비슷한 분량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집중한 이야기일 경우 현재의 등장인물이 조연이 되는 경우가 많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회상장면이 적으면 과거의 등장인물이 조연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작품은 남녀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비율이 비슷합니다.

 

이야기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럭저럭 잘나가는 건축가 승민(엄태웅 분)에게 한 여인이 찾아옵니다. 선글라스에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도도한 이 여자의 이름은 서연(한가인 분)으로 그녀는 앞써 낡은 집 한 채를 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입니다. 서연은 난데없이 승민에게 집을 새롭게 고처달라 요청합니다. 자신의 고향이던 제주도에 아버지가 살던 집을 리모델링할 생각이었지요. 그녀의 제안을 얼떨결에 수락한 승민은 약혼녀이자 건축 디자인 회사 동료인 은채(고준희 분)과 자리를 함께하게 되고 승민과 서연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건축학과 학생이었던 승민(이제훈 분)과 달리 서연(배수지 분)은 음악을 전공했지만 심심치 않게 건축학개론을 청강했었지요. 자신의 전공도 아닌데 말이죠.

건축학과 선배인 재욱(유연석 분)이 서연을 마음에 두고 있긴 하지만 서연은 그렇게 쉽사리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건축과 강 교수(김의성 분)의 지도에 따라 이들은 학교에서부터 자신이 사는 집을 탐구해보는 것은 물론 여행을 가보라는 등의 다양한 과제를 받게 됩니다.

서울 토박이인 승민과 달리 제주도에서 살던 서연에게 서울에 대한 느낌은 너무 달랐고 서울을 탐구하고 여행을 떠나면서 이들의 관계는 급진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쑥맥인 승민은 서연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재수를 준비하는 납뜩이(조정석 분)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지만 쉽지만은 않죠. 그러나 선배 재욱이 술에 취한 서연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승민은 충격에 휩싸이고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멀어지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이들은 지금 다시 만나게 된 것이고요.

 

과거와 현재를 구분 짓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대순으로 나열하여 굳이 자막을 표기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방법이 있고 현재와 과거를 정신없이 교차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막을 사용하여 몇 년도라는 것을 표기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부 영화들은 과거의 나열 순서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오히려 관객을 혼란을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편한 방법은 과거와 현재의 배우를 구분 짓는 것입니다. 굳이 시대적 상황을 나타내는 자막을 표기할 필요가 없지요.

영화 <써니>가 무려 13명의 주인공을 등장(성인 수지(과거 역은 아시다시피 민효린 씨) 역의 윤정 씨 경우는 특별출연이었지요.) 시킨 것을 생각한다면 <건축학개론>의 등장인물은 상당히 준수한 수준이죠.

 

이 영화를 보고 제가 감탄을 한 것은 1990년대의 생활상을 어쩌면 저렇게 완벽하게 재연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사실 1970년대, 1980년대 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시대적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자료 수집이나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간혹 아쉬움이 남는 예도 있으니깐요. 1990 년대는 겨우(?) 20년 전이니 시대적 고증에 어려움이 없어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경우도 만만치 않지요.

이 작품의 메인이 되어버린 전람회(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서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015B의 '신인류의 사랑' 같은 명곡을 이 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멋진 일이었고 낡은 비디오 가게, PC 통신 하이텔, 015 삐삐(무선 호출기), 버스 안에 주택복권 광고, 게스 티셔츠 등등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고증한 이 영화는 고증 면에서는 최고였다고 봅니다. (짝퉁 게스 티셔츠에 관한 에피소드는 어머니의 헌신을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고요.)

 

건축과 사랑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소재임에도 건축에 대한 고증도 나름 신경을 쓴 듯 보입니다.

개봉을 앞두고 일반관객뿐만 아니라 건축과 학생들에게도 자체적으로 시사회를 열었던 것 같던데 건축과 학생으로 보이는 분이 전화로 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살짝 유포하시는 광경을 보았는데 건축과 학생들에게도 이 영화에 대한 고증이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보이더군요. 실제로 엔딩크레딧에도 건축과 관련하여 스텝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을 봐서는 건축 부분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건축과 관련된 리얼리티가 잘 살아난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 또 하나는 바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용주 감독이 실제 건축학과 출신이라는 것이죠.)

 

 

 

 

영화는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멜로 드라마의 성격을 그대로 띠고 있지만 간간이 보여준 웃음도 이 영화에서는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일부 배역을 맡은 배우들에 대한 연기력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인 역할과 청년 역할로 나뉘는 작품이다 보니 두 사람의 외모나 연기를 할 때의 방식이 얼마나 똑같겠느냐는 비교를 할 수밖에 없지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편차가 있는(?) 연기력으로 입에 오르내리던 한가인 씨와 드라마 <드림하이> 시즌 1으로 연기 경험이 있던 미쓰 에이의 배수지 씨(우리는 보통 그냥 수지라고 부르죠!~)의 경우에도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두 사람의 연기는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싱크로율이 문제이죠. 앞에도 이야기했듯 말투나 외모를 어떻게 닮아가게 하였는가에 대한 것이죠. 한가인 씨가 배수지 씨를 맞추느냐, 아니면 배수지 씨가 한가인 씨의 이미지에 맞추느냐의 문제이겠지요. 이는 승민 역을 맡은 엄태웅 씨와 이제훈 씨에게도 똑같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승민의 약혼녀로 등장한 고준희 씨나 승민의 선배로 등장한 유연석 씨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으로 등장하여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배역이라면 바로 납뜩이 역의 조정석 씨라고 생각됩니다. 승민에게 사랑의 기술을 어설프게나마 가르치는 그는 승민에게 헤어무스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준 인물이기도 하죠. 뮤지컬 배우로 알려진 그는 현재 새로 방영된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도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라서 앞으로 그의 이름을 각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네요.

 

하지만 이 영화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고증은 최고였지만 그 고증이 오히려 이 영화에 독이 되기도 했지요.

가령 1990년대 상황에서 계속 눈에 거슬린 것은 주택가 골목길에 정체불명의 번호들이죠. 거주자 우선주차제에 등장하는 고유번호들이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영화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거슬리는 옥의 티죠. 스쿨존을 나타내는 속도제한 표시도 도로 바닥에 등장했는데 이것 역시 그 시기에는 없던 것이고요. 그러나 의외의 옥에 티는 승민이 서연에게 보내준 택배입니다. CD와 CD 플레이어를 보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파손되기 가장 쉬운 물건들이 이런 음반과 가전제품이죠. 그런데 이런 제품들에 에어캡(흔히 우리는 뽁뽁이라고 말이죠.)을 씌우지 않은 상태에서 택배를 전달했다는 것은 옥에 티 중의 하나이죠.

이렇게 배달된 물건에 '취급 주의'라는 경고도 없이 택배를 보냈는데 전람회의 음악이 잘 나왔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라는 겁니다.

 

 

 

1990년대... 가깝다면 가까운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추억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도 과연 아름답겠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삐삐와 PC 통신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이미 스릴러 <불신지옥>으로 신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이용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건축학개론>은 두 번째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용주 감독의 다음 작품도 은근히 기대되는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나 저러나 김동률 씨가 그렇게 부르던 '기억의 습작'... 계속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