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오래된 정원-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줘서 미안해...

송씨네 2007. 1. 7. 23:46

 

1980년대...

지옥같다면 지옥같은 시기...

화염병과 쇠파이프, 그리고 최루탄과 물대포...

현우는 어렵게 어렵게 도피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는 운동권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만난 초등학교 미술 교사인 윤희를 만나게 되는데 그런데 그녀는 의외로 씩씩하고 겁이 없다.

그렇게 현우와 윤희는 6개월을 살았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었다.

서울에서 시위의 강도도 높아지고 그만큼 이들 운동권 학생들을 잡으려는 이들의 움직임도 거세지는 마당에 현우는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행복했는데 왜 이제 떠나는가?

윤희는 현우를 잡아보려지만 그의 의지는 꺾을 수가 없었다.

17년이 지났다. 현우는 결국 붙잡혀 무기징역을 받았고 1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세상은 모두 변해있었고 현우의 어머니 보다도 머리카락은 현우의 어머니 보다도 더 하얕게 변해버렸다.

윤희는 병으로 죽고, 그 사이 현우의 딸 은결도 태어났다.

지옥같은 1980년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야한 영화 안만들고도 만든 작품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감독이 있다.

바로 임상수 감독이다.

물론 그의 감독 데뷔작인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문소리가 등장한 '바람난 가족'은 나름대로 야했지만 항상 문제가 된 작품들은 따로 있었다.

'눈물'로 10대들의 생활상을 고발하고, '그 때 그사람들'로 암울한 시기의 대통령의 모습을 풍자했던 그 이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 내놓은 것은 1980년대 학생들의 시위(혹은 데모)가 질리도록 많았던 시대이다.

내가 태어났을 시기에도 화염병 시위는 항상 TV 화면을 가득 체우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화염병 시위는 줄어들었다. 최루탄 사용도 공권력 남발의 문제점으로 점차 사라졌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80년대 대학생들은 시위만 하고 살았노라'라고 이야기 하는 작품은 아니다. 거기서 사랑도 있었고 인권에 맞써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기에는 웬지 모르게 미안한 시대에 이야기이다.

더구나 주목할 점은 황석영의 원작을 가지고 만든 영화라는 점이다.

황석영이 누구던가!

'장길산'. '삼포가는 길', '모랫말 아이들' 등등의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던 작가가 아니던가?

그런점에서 황석영과 임상수의 만남은 정말 최고의 만남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과 담을 쌓은 나로써는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논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원작이 영화와 다른점이 몇 가지가 확인되었다.

우선 원작에서는 현우의 18년이었는데 영화에서는 17년으로 1년 줄어들었다.

그리고 현우와 윤희가 함께한 시간이 3개월에서 6개월으로 늘어난 점이 원작과 영화가 다른 점이다.

형량을 줄인 것은 18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고 잔인하기에 줄인 것일테고, 현우와 윤희가 함께한 시간을 3개월로 늘린 것은 아마도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또한 윤희의 독일 유학 이야기도 생략되었다. 이는 해외 로케의 문제점이 아닐까 싶은데 이를 대신 충족시키기 위해 감독이 생각해 낸 것이  1986년 건국대 사건의 재연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홍보자료에서도 이 작품을 '블록버스터 멜로 영화'라고 지칭한 것도 이 장면에서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생각되어진다. 수많은 엑스트라와 4박 5일간의 기간, 막대한 분량의 소품(특히 화염병)이 사용됨으로써 당시 암울했던 80년대 시위모습을 재연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가 인상 깊었던 것은 의외의 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윤희의 후배인 미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법학과를 나왔지만 학생운동에 가담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접은 그녀는 공장의 공두리(참고로 본인도 노동자이다. 노동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거슬리긴 하겠지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로 신분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는 여기서도 수모를 당한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별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동료들과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회사로부터의 질책이고 결국 그녀는 분신자살을 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마치 전태일(1948~1970) 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역을 맡은 김유리가 다른 배우 만큼이나 눈에 띄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도 원작을 최대한 살렸고(참고로 원작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줄거리를 대강 파악하였다.) 염정아와 지진희의 연기도 좋았다. 염정아는 결혼을 앞둔 시기에 찍은 작품이나 임상수 감독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심하게 야한 장면은 없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단점을 굳이 뽑으라면 과거와 현재를 너무 자주 왔다 갔다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거꾸로 상황설정이 되는 것 같아 '박하사탕' 식의 방식을 생각하였지만 영화는 현우의 출소 모습후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과거로 같다가 갑자기 현재로 전환되는 방식이기에 혼란함은 더 하다.

가령 현우가 윤희와 사랑을 나누었던 갈뫼로 내려가서 숙식을 취하는 장면을 이야기 해보면...

이제는 늙어버린(?) 현우가 갈뫼에서 출소 후 첫 아침을 맞이할 때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것이 윤희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느 순간 현우는 젊었을 적 모습으로 변화된다. 살짝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장면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아예 마지막 장면에서 성인이 된 은결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윤희는 여기저기서 길가에 서성대고 있다.

마치 간단하게 조작되는 타임머신처럼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관객의 아무런 이해를 돕지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확실히 구분 짓는 것도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렸을 때 뉴스로 접했지만 바로 가까히 그 현장을 목격했을 정도의 세대는 아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최루탄을 알고, 화염병에 대해 알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만큼 우리가 살아왔던 시기에는 이렇게 암울한 시대도 있었다.

 

우리는 과거를 너무 잊고 살아간다. 좋지 않은 과거는 잊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서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는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최후에 살아갈 것인지 말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흐르고, 또 흐르는 것이다.

 

 

 

PS. 임상수 감독이 '그 때 그 사람들'에서 故 박정희 대통령을 이야기했다면 이 작품은 전두환 前 대통령이 바로 비판의 대상이다.

임상수 감독의 이 작품을 보면서 만화가 강풀이 연재한 '26년'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한 영화사에서 이미 판권을 구입했다고 하던데 이 작품 웬지 임상수 감독에게 맡기면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현우가 독방에 갇히는 장면에서 암흑속에 울고만 있는 현우(지진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길다.

이 장면을 보면서 '그 때 그 사람들'의 초반 암흑 장면이 떠올랐다. 박정희 前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상영금지 소송을 걸면서 결국 이 장면은 암흑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임상수 감독은 그 때의 억울함은 긴 암흑 장면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