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그 놈 목소리-그 놈을 공개 수배합니다!

송씨네 2007. 2. 5. 20:18

 

1990 년대...

노태우 대통령은 날로 흉악해지고 늘어만 가는 범죄를 줄이기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는 '믿어주세요~!'를 외치면서 국민에게 호소했다.

뉴스센터에서 이 한심한 연설을 보고 있는 한경배 앵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클로징 맨트를 멋있게 날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과 사는 어느 다른 이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가장이다.

엄마가 계모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상우는 그런 엄마 지선이 미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상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지던 날 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현금 1억원을 준비하라는 협박전화였다.

두 사람은 일단 그것에 따르기로 하지만 범인으로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는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소변경, 금액 추가를 요구한다.

형사들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정도로 치밀하고 잔인한 그 놈...

그 놈을 잡아야 한다... 

 

 

 

 

1991년 1월 29일 압구정동에서는 유괴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이형호 라는 아홉살 소년으로 행방이 묘연해졌고 탐문수사와 과학수사 등이 총동원되었지만 유괴후 44일 만에 형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이 되었다.

 

이 때 내 나이도 형호와 비슷한 나이였다.

이 사건은 당시 큰 이슈가 되었고 당시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조연출했던 박진표 감독에게는 이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수 십년이 지난 후 이들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지만...)과 더불어 의문의 살인,납치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세 가지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마감되었다. 그런데 영화는 형호와 그의 가족들을 슬픔으로 몰아놓은 그 놈을 잡으려고 한다.

 

영화는 한경배와 오지선이라는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잘 나가는 앵커 경배와 신앙심이 투철한 지선은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한 순간 그 놈이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영화의 공개 수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개구리 소년이 실종되었을 때도 1992년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이라는 작품이 개봉되었고 몇 년전 큰반항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통점이 재연 중심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과거 '사건 25 시'라는 공개 수배 프로그램도 있었고 '공개 수사, 실종'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TV나 신문 매체가 아닌 영화로써의 공개 수배, 공개 수사 요청은 언론만큼의 홍보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것을 기억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언론보다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영화라고 보여진다.

 

강우석 감독이 '실미도'를 통해 잊혀진 사람들을 이야기 하듯, 이 작품은 공소시효는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형호 군 사건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들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따라서 공소시효가 지나면 아무리 자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탈영병의 경우는 거의 공소시효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검색 결과 탈영병의 공소시효는 분명 존재하나 귀대명령을 계속 어길시 명령불복종으로는 계속 공소시효가 연장될 수 있다.)

탈영병은 이렇게 평생 고통을 받는데 살인범이나 사건의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마련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본다.

이는 그 피해자에게도 또다른 아픔이 되는 것이다.

 

박진표 감독은 아마도 또다른 아픔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소시효 연장 및 공소시효 폐지를 영화 속에서 직접적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박진표 감독은 이 작품 이전에도 실화를 바탕한 작품들로 관객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전도연과 황정민이 열연한 '너는 내 운명'도 그랬고 노인들의 성생활을 이야기한 '죽어도 좋아'도 그랬다.

박진표 감독이 왜 실화 중심의 이야기를 연출하는지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보다는 사람냄세나고 현실적인 실화가 사람들에게 또다른 감동을 주기에 아마도 실화를 고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리얼리티에는 한계가 있기에 한경배를 앵커로 만들고, 실제 협박 장소였던 곳들의 실제 촬영이 어렵게 되자 주요 장소를 어쩔 수 없이 변경하는 것은 세월의 변화 만큼이나 영화를 만드는데의 한계이자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설경구나 김남주는 많은 언론에서 찬사를 보낸지라 그 이야기는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히혀 김영철의 연기에 칭찬을 하고 싶다.

김욱중 형사로 나온 김영철은 런닝바람에 힘들지만 수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가 떠올랐다. 같은 런닝바람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점이 공통점이고 마치 억지로 끌려나온 듯 하면서도 나름대로 정의를 지킨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김영철이 맡은 김 형사에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박봉에 시달리고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도 없이 그는 트렁크에서 한경배와 그 놈의 목소리를 도청하는데 여념이 없다. 발가벗은 모습으로 굴욕을 당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웃기다기 보다는 형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하긴, 그가 괜히 궁예나 김두환 역할을 딴 배우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이 영화도 아쉬운 장면이 많다.

시대적 고증을 살린 점은 칭찬할만 하다. 지금은 합병되고 사라진 한일은행 간판과 구식 현금 인출기의 모습이라던가 현대식 간판을 옛날 간판으로 교체하는 노력도 보였다. 하지만 중간 중간 신한은행의 새로운 로고가 보이거나, 상우의 지하 아지트에서 칠성사이다 병을 담는 플라스틱 박스가 요즘 것이라는 옥의 티가 있었다는 것이 아쉽다.

(칠성사이다와 관련한 옥의 티는  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동감'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70년대에 살고 있는 김하늘이 마시고 있는 칠성사이다 병이 요즘 나온 로고를 사용했다는 것이 바로 그 옥의 티...)

 

또한 여형사(차수희 역)로 등장한 고수희의 경우 의외로 흡연장면이 좀 많았다.

여성이 흡연하는 것가지고 뭐라고 해서는 안되지만(이거 차별하는 사람이 더 문제있다.) 여형사가 흡연을 하는 모습은 보기는 좋지 않았다.

여성이 담배피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남성이건 여성이건 담배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옮지 않다고 본다. 건강이 우선 아니겠는가?

(흡연자 분들이 화내실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비흡연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고수희 씨가 건강한 역할을 좀 맡았으면 좋겠다. 박준면 씨나 출산드라 김현숙 씨 등과 같이 개성강한 배우들이 요즘 대세인 것 같은데 고수희 씨만의 개성을 보여주시길...)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엔딩에 나왔던 그 놈의 몽타주이다.

그도 분명 이 작품을 봤을 것이다.

보고 있다면 故 이형호 군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고 죄값을 받길 바란다.(물론 공소시효가 지났으로 법적인 죄는 없지만 그 죄값은 그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또한 공소시효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아직도 미해결 사건은 너무 많다.

제 2의, 제 3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말이 많았던 얼마전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형호 군이나 개구리 소년 사건들과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