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천년여우 여우비-이성강 감독... 한국의 지브리를 꿈꾸며...

송씨네 2007. 1. 28. 23:13

 

100년 전...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탄 우주선이 한 야산에 불시착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그 외계인들과 여우비라는 이름의 구미호가 같이 살고 있다.

말이 구미호이지 아직 꼬리가 다섯개 밖에 나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앞에 이야기한 요요라는 외계인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열매보다도 못을 좋아하는 말썽요가 이들 무리에 이탈을 하면서 여우비는 말썽요를 설득시키러 인간세상으로 내려간다.

거기에는 왕따로 소외당했던 학생들이 모여 하나의 대안학교를 만들고 있고 강선생은 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여우비는 여기서 황금이를 만나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싹트게 된다.

하지만 한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여우비와 황금이의 사이는 멀어지고 거기에 황금이는 얼떨껼에 영혼들의 세계인 '카나바'에 빠지게 되고 여우비는 그를 구하러 신비의 연못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솔직히 고백하는데 나는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를 보지 못했다.

나는 많은 리뷰를 쓰면서 본 영화보다 보지 못한 영화가 많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마리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성강 감독을 그나마 세상에 알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리 이야기'와 '천년여우 여우비'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는 비현실적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성강 감독은 판타지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리 이야기'가 부드러운 파스텔 느낌이라면 '천년여우 여우비'는 조금 덜 부드러운 느낌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3D와 2D가 고루 사용된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애니메이션은 2D가 중심이었지만 '토이 스토리' 같은 3D가 등장하면서 3D 애니메이션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2D의 장점과 3D의 장점을 같이 살린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조금은 달라졌다.

가령 그림자 탐정과 여우비가 골목을 나서는 장면과 같은 3D화면이라던가 나뭇잎이 나비로 변하는 장면처럼 3D와 2D를 적절히 합친 장면도 있다. 뭐니 뭐니해도 가장 절정은 '카나바' 호수에서의 장면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라면 너무 지브리 스타일로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야자키 히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정말 로 일본에서 알아주는 애니메이션 제작 집단이고 최고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성강 감독의 작품이 그런 맛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이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면에서는 칭찬을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판타지적인 상황라던가 그림 스타일이 지브리를 닮아간다는 것은 어느정도 생각해볼 일이라고 본다.

('카나바' 호수 장면의 경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고 버스가 사고를 면하는 장면에서는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가 생각나는 것은 나 혼자만 그런 것일까?)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앞에도 이야기했듯이 이성강 감독의 실력은 나날히 발전하고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 특성상 원화를 분할하여 작업하는 업체들의 공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하청업체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맡은 양방언의 몫도 크다.

나는 그의 음악중에 '프린스 오브 제주'(Prince of Cheju)라는 곡을 매우 좋아한다.

한 은행 CF에 삽입된 이 음악은 그가 재일동포이지만 매우 한국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음악가라는 점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생각된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양방언을 추천한 사람이 '마리 이야기'의 음악 감독이었던 이병우였다. 최고는 최고를 알아본다.)

 

그렇다면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성우 실력은 어떨까?

손예진은 처음이었다고 하지만 의외로 좋았다.

특히 여우비의 역할 중의 대부분이 멋쩍게 웃는 장면이 많다.

그럼에도 어린 소녀의 웃음소리라던가 심리 변화를 의외로 잘 소화해냈다.

공형진과 류덕환은 '마리 이야기'에 참여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실력은 말안해도 알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 작품의 결론은 의외로 우울하다.

'씨네 21의' 이성강 감독 특집(588 호)을 봤다면 이미 다 공개해 버린 스포일러 때문에 김셌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결말은 의외로 여우비와 황금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렇다고 여우비가 슬픈 비극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성강 감독은 결론만큼은 동화속 해피엔딩이 아닌 현실적인 결론을 맺고 싶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 여운은 극장을 나서면서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고..

(어린 친구들은 이해를 못하니깐... 따라서 이 작품은 어른들도 봐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결론만큼은 결코 유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결말은 어찌보면 여우비가 인간이 되었다기 보다는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인지 모른다.

카나바의 정령들이 영혼의 새장와 새를 지키는 임무를 띄면서 영혼이 여기서는 절대로 빠져나가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우비는 자신을 희생해서 황금이의 영혼을 구했다.

결말에서 여우비의 영혼을 보내주는 것은 착한 심성을 갖은 이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자 용서(화해)이었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신성인(희생)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강선생이 돌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더라도 화해와 용서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다.

모두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 왕따 문제를 조금 다뤄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지만 여우비와 황금이의 스토리가 중점이 되어서 오히려 이들에 대한 화해와 용서에 관한 메시지는 분량이 적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 점이 조금은 아쉽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미호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나 '전설의 고향' 따위의 스토리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성강 감독은 존재 가능성이 희박한 외계인과 구미호의 조우를 통해 아름다운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많이 죽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아름다운 동화를 같이 감상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용서와 화해, 그리고 희생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