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으로 기억한다.
'나디아'(Nadia Of The Mysterious Seas, Nadia: The Secret Of Blue Water, 1990)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었다.
한 공중파 방송에서 방송하던 이 만화는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었고 주제가 역시 많은이들의 입에서 맴돌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만화를 만들었던 가이낙스라는 곳은 지브리 만큼이나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만화를 만들었던 회사인데 그 성격이 다른 것이 지브리는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다운 판타지를 그려낸다면, 가이낙스는 역시 비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이 세상을 그려나간다. 마치 그 세계가 현실인지 미래인지 구분짓지 못하게 말이다.
일본에서는 1987년에 만들어졌고, 10년 후인 1997년에 복원판으로 만들어지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10년이 흘러 이 복원판을 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나디아'에서 보던 만화 스타일이 사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림체나 스타일은 비슷하기만 하다.
시로츠쿠 라는 청년이 있다. 그는 군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모자란 성적에 그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던 그의 유일한 희망은 우주군이었다.
그러나 육군도 아닌 공군도, 해군도 아닌 생판 처음 듣는 우주군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조직처럼 보인다.
그 조직은 왕따가 되었다. 마치 시로츠쿠 본인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단지를 돌리던 리이크니 라는 소녀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우주군 훈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오네마이스 왕국, 그리고 전 세계 최초로 우주 비행선이 발사되는 순간...
우주군 대원도, 시로츠쿠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는 알 수 없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작품의 첫부분(오프닝)과 끝부분(엔딩 크레딧)은 이 작품의 스케치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보면 이들 우주군이 창설되고 시행착오를 겪은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우주군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리고 우스겟소리로 우주인과 만나서 뭐하냐는 비아냥거린 비웃음도 있다.
그러나 그 비웃음에도 우주국 대원들과 시로츠쿠는 세상과 맞써 싸우며 결국 우주선 발사를 성공하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의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며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요즘말로 '쇼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부족한 장비로 훈련을 대신하고 어설픈 도구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은 상당히 우수워 보이지만 점차 그들의 노력을 하고 그 속에서 훈련을 하는 모습은 우수워 보이기 보다는 이제는 안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이 장면을 보면서 얼마전 최초의 한국 우주인이 된 고산 씨가 떠오르기도 했다. 얼마나 힘든 훈련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낙스는 이 후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나디아'를 비롯해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과 같은 주로 우주 전쟁을 소재로 한 SF 판타지 만화를 탄생하게 된다. '왕립우주군'과 이후 작품들을 보면 알겠지만 가이낙스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전쟁의 허무함과 환경 오염의 피해, 그리고 그 외의 후유증들을 마치 지금의 일인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장황스러운 설명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단지 지금 세계가 현재라는 것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과거 만들어진 작품들과 지금 현재의 세상은 전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왕립우주군'도 그렇고 '나디아'도 그렇고 분명 이 작품의 원산지는 일본이지만 일본식 하라가나가 작품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닌 다른 또다른 왕국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 이들 작품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다른 왕국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인데 분명 외국어를 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마치 그들의 모습은 일본인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자국의 상황을 부정하고 오히려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이상한 이방인(혹은 이상한 일본인)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 것이다.
그 뿐인가, 노인들이 우주선을 제작하는 핵심맴버로 나오는 장면은 미래에 노력하지 않고 우수한 브레인 개발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들이 세상을 구하는 상황까지 온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한 편으로는 이 장면이 노인인구 증가 후유증을 암시하는 장면이 될 수도 있고....)
시로츠구의 모습은 자유를 여전히 갈망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의 모습이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리이크니의 모습은 환경파괴에 경고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메신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더구나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성서를 인용하는 장면은 더더욱 암울하게만 보인다.)
더구나 후반에 시로츠구가 유명해지면서 광고에도 출연하고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는 장면은 지금 행해지고 있는 미디어의 모습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스타가 탄생하고 그 스타를 경배하며 지나친 취재 경쟁으로 심각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결국은 거꾸로 노인이 젊은 시로츠구를 테러하고 살해하려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어쩌면 시로츠구는 이 지구를 떠나 먼 세상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을 오히려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전쟁도 없고, 메스컴의 취재 경쟁도 없고, 아무도 자신에게 부담을 줄정도로 간섭하고 경배하지도 않을테니깐 말이다.
20 년이 지난 일본, 그리고 한국...
시대가 변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좋아져야 할 시기인데 오히려 과거애 만들어진 만화일 수록 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에게 미래는 그 앞으로가 기다려지는 미래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미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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