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M-이명세,강동원이 펼치는 모노드라마!

송씨네 2007. 10. 31. 00:31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 다오
아--- 아-- 그 사람은 갔을까 

                                                                                                                     정훈희의 '안개'(196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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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은 마니아들 사이에는 지독한(?) 스타일리스트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초기 작품인 '개그맨'을 비롯해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첫사랑' 등의 작품을 보더라도 독특한 소재와 독특한 영상, 독특한 자막으로 시대를 앞써간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반대로 그의 영화가 너무 어렵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형사' 이후 다시 강동원을 선택한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보다 조금 무겁고, '형사'보다 더 어려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 'M'이 아마 그런 것 같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작가 민우는 상대편 출판사에 원고 독촉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는 원고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자꾸만 꿈에서 어떤 여인이 나와서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에서 카페 '루팡'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그 의문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이 예전 살던 동네의 미용실 집 조카였던 미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더욱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두렵기만 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낌은 딱 하나였다.

영화속 민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치 단절된 느낌에 대화를 하고 있다.

혼자서 독백하는 연극의 일종인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일식집 다다미방(일본식 전통 방으로 되어 있는 것...)에서 벌어지는 대사나 모습들은 관객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덩치 큰남자가 자리를 옮기고 선풍기를 틀고,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허락도 없이 비싼 회를 시키고...

이런 방식의 대사와 행위들이 되풀이되고 있고 민우도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것들을 반복하고 있다.

 

어느 한 기자는 이명세 감독과 데이빗 린치 감독을 비슷하게 연결시킨 모습도 보았는데 사실 두 감독의 공통점이라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영상들을 자주 선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데이빗 린치(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렌드 드라이브 등등을 연출한 감독)는 상당히 어렵게, 불친절하게 관객과 마주 대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형사'를 기점으로 이명세 영화도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다. 데이빗 린치처럼 말이다.

 

 

영화는 민우가 꿈속의 여인을 만나고 그 여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과거 살던 고향으로 돌아간 민우는 미미의 발자취를 찾아가지만 더욱더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거기에 그가 찾아간 카페 '루팡'의 정체와 그 곳의 나이든 바텐더의 정체도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궁금증은 왜 이 영화의 공식 홈페이지가 m0820.com 이냐는 것이다.

그러니깐 '0820'이라는 숫자의 궁금증이다.(다행히도 그 궁금증은 영화를 보면서 풀렸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이 번호의 정체는 밝히지 않겠다.)

이 작품은 따라서 그 모든 것이 미스테리이다.

홈페이지의 주소부터 시작해서 미미의 정체, 루팡 카페의 비밀까지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 이명세 감독은 어쩌면 'M'이라는 알파벳 속의 비밀 다음으로 수많은 미스테리를 관객에게 던져주면서 게임을 제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몽환적인 느낌과 미스테리는 사실 그러고 보면 이명세 감독의 특기일 수도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달밤의 격투(거의 왈츠에 가까운...)라던가 '형사'에서의 어둠속에서 벌어지는 남순(하지원)과 슬픈 눈(강동원)의 대결 장면처럼 몽환적인 느낌과 의도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떼로 몰려오는 점에서 그의 영화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이 영화의 상영도중에 잔인하거나,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엽기적인 장면이 없었음에도 일부 관객들이 조기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다른 일부 극장에서도 한 두 명씩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형사'의 경우도 이런 난해함 때문에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영화를 살린 것도 재미있게도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한 마니아들 때문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M'을 흥행실패라고 벌써부터 떠들고 있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자칫 '형사'에서 흥행 참패의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해보게 된다.

 

 

일부에서 나오는 강동원의 연기 미숙도 그가 연기가 부족했기 보다는 이명세 감독의 연출 의도에 맞게 오바스럽게, 열심히 연기를 하다보니 오히려 관객들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분명 강동원의 이번 오바스러운 연기는 이명세 감독이 계산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강동원의 영화나 드라마들은 사실 폼만 잡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그가 '형사'에서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그 놈 목소리'에서도 목소리 만으로 얼마나 대단한 카리스마가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이나영과 함께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경우도 '완소영원'이라는 애칭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찬사를 보내던 언론과 관객들이 다시 강동원에게 냉정하게 대했다는 것은 상당히 유감이다.

강동원의 연기력은 점점 늘고 있는데 그 오버 연기 하나만으로 그를 과소평가 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아쉬운 점은 공효진이다.(연기 말고, 그녀의 배역 말이다.)
'행복'에서는 은희(임수정)와 약간의 앙숙으로 등장하면서 영수(황정민)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던 여인 수연으로 등장했는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미미(이연희)로 인해 좌절하는 여인 은혜로 등장하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이연희의 경우는 전작 '백만장자의 첫사랑' 이후 드라마 쪽에 집중하다가 다시 재도전을 했는데 실수투성이지만 어딘가 비밀을 가지고 있는 4차원 여인(?) 미미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점이 있다.

이 영화의 주제가로 나오는 '안개'라는 곡이다.

'꽃밭에서'라는 노래로 우리에게 친숙한 정훈희 씨의 이 노래는 영화에서는 이연희 버전으로 들을 수 있고 엔딩 크레딧에서는 보아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이연희와 보아... 바로 공통점이 나온다.

바로 SM 사단이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지금은 회장님이 되신 이수만 씨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막이 나온다.

(대표에서 이사, 그리고 지금은 SM 그릅의 회장님이라고 한다... 이런...)

물론 보아는 최고의 엔터테이너이고 한류를 만든 장본인임은 동의한다.

하지만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도 상업적인 수단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인 것 같아 조금 아쉽다.

 

 

 

'M'은 앞으로도 전작 '형사'와 마찬가지로 관객들과의 찬반양론이 벌어질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명세 감독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토론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된다.

(참고로 지난 10월 26일 방송된 EBS '시네마 천국'에서의 '이명세 스페셜'을 주위깊게 시청해 보셨으면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형사'처럼 뒤늦게 빛을 보는 경우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 PS이자 이 영화의 결정적인 스포일러...

(상당히 영화의 결정적인 내용 일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과감히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이 영화에서 '루팡' 카페는 추측하건데 저승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팡이를 든 사내가 미미 앞에서 자꾸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후반에 드러나게 된다.

미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에 '0820'이라는 숫자를 언급했는데 이 숫자의 비밀을 이야기하자면 민우와 미미가 다시 만나기로 한 날이다.

그리고 카페 '루팡'이 문을 연 날짜인데 이는 미미를 저승사자인 지팡이를 든 사내가 데려간 날짜와 동일시 생각한다면 딱 드러맞는 것이다. (그 늙은 바텐더는 바로 저승사자였던 것...)

그렇기에 카페 '루팡'은 민우가 찾아갈려고 해도 찾아 갈 수 없는 장소인 것이다.

바로 떠나는 영혼들의 아지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