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중경삼림(1994)-다시만난 중경삼림...

송씨네 2007. 12. 25. 00:32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TV에서 분명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방송하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아마도 어렸을 때 보다가 체널을 돌리던 영화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왕가위의 사랑이야기는 해를 거듭할 수록 변화되었지만 하지만 그 속의 메시지는 항상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가위 영화속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주인공들은 어느 곳을 정처없이 떠도는 이방인과도 같았다. 얼마전인가 '아비정전'을 VOD로 보면서 마리아 엘레나에 맞춰 맘보를 추던 장국영이 폼나보이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외로움에 빠진 이방인의 모습에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94년은 내가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시대일테고 아직 중국이 홍콩에 반환을 하지 않던 시절이다.

그로부터인 1997년 7월 1일 홍콩은 중국의 땅이 되었지만 지금도 홍콩은 중국이 가지고 있는 도시 중에 가장 특별한 도시로 손꼽힌다.

경제 특구로 지정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 될 것이고...

그리고 1994년은 사람들은 여전히 삐삐(무선호출기)에 의존을 하던 시대였다.

벽돌폰으로 대표되던 카폰도 없던 시절이다.

 

 

 

혼란과 더불어 과도기를 격고 있는 홍콩...

여기 두 커플이 보인다.

 

이름없는 마약중계상 여인(임청하)은 항상 노란가발에 트렌치 코트를 입는다.

그리고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항상 선글라스를 쓴다.

사랑에 버림받아 조깅으로 버림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경찰 223(금성무)은 자신의 생일날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아무 이유없이 구입하고는 역시 집에 들어가 수십통을 한꺼번에 해치운다.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에게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을 초과한 파인애플을 먹다 생기는 구토와 서러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바에서 그 트렌치 코트의 여인을 만나 접근을 하려고 하지만 그 여인은 냉정하게 그와의 대화를 끊고 있다. 술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일구어지자 그 여인도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그는 그녀의 하이힐을 깨끗이 닦아내고는 조용히 호텔방을 나선다.

 

또 하나의 커플은 반대로 한 여인의 집착이다. 

한 작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일하는 아미(왕정문 혹은 왕비)는 늘 찾아와 식사를 하는 경찰 633(양조위)에게 호감을 느낀다. (여기서는 두 명의 아미가 등장하는데 앞의 아미는 223이 사귀었던 여자의 이름이고 뒤에는 바로 왕정문이 맡은 이름이다.)

하지만 633에게는 스튜디어스 애인이 있었지만 그런 그녀는 딴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633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모습이다. 우렁각시처럼 이들이 살던 집에 침입해 스튜디어스 애인의 흔적을 없애는 아미는 633에게 자신의 감정을 알리고 싶지만 쉽지만 않다.

늘 가게에서 마마스 &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틀어대며 캘리포니아로 가고픈 소망을 이야기하던 그녀 아미는 결국 홍콩을 떠났고 633이 잊지 못했던 그 스튜디어스가 되어 돌아온다.

 

 

중국이 좋아서 아예 중국인 이름으로 살아가는(하지만 그는 대만에서 자신의 실력들을 발휘했다고 알려져 있다.) 촬영감독 두가�(크리스토퍼 도일)의 현란한 촬영기법은 이후 CF에서 많이 선보이기도 했었고 여전히 그는 두가풍이라는 이름으로 앤딩 크레딧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임청하가 다른 이들에게 쫓기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라던가 양조휘가 왕정문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촬영기법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한번쯤 흉내내고 싶은, 그러나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기법의 촬영방식이었다. '중경삼림'은 촬영방식이나 연출력 뿐만 아니라 많은 명대사를 남겼고 느끼한 닭살 맨트들을 남발하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특히 금성무가 내뱉던 대사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자주 애용되는 대사이기도 하다.

 

음악도 주옥같은 음악들이 많았다.

임청하가 즐겨 찾던 바의 쥬크박스에서 흘러나오던 Dennis Brown의 'Things in Life'는 적막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음악이었다. 말미에 임청하가 바에서 한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던 사내(한편으로는 마약 밀거래와 관련이 있는...)를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에서도 보통 누군가가 죽으면 나오는 장엄한 음악과 달리 부드러움 속의 적막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앞에도 이야기 했던  Mamas & Papas의 'Caliponia dreamin'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는 올드 팝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왕정문이 부르던 '몽중인'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크랜베리스(Cranberries)의 'Dreams'를 중국어로 번안하여 부른 곡이다. 왕정문 버전도 크렌베리스의 원곡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었고 이 곡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서 아는 분들은 아시리라고 생각되지만 엔딩 크레딧에는 이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이 나오는 경우가 있고  The Horace Silver Quintet(호레이스 실버 쿼탯)이라는 팀이 부른 'only You'가 있다. 엔딩에 나가는 곡이 각각 다른 두 곡이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 검색을 해도 '중경삼림'에 사용되는 엔딩버전의 음악들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은 앞에 언급한 이 음악들이 '중경삼림'의 OST에는 모두 없다는 사실이다.

 

13 년만에 다시 외출을 한 '중경삼림'은 왕가위 컬랙션의 나머지 작품인 '2046'과 '타락천사'와 더불어 계속 상영이 될 예정이다.

왕가위 영화를 모르시는 분들, 그의 영화를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지금 광화문의 스폰지 하우스로 달려가시길 바란다. 또한 나이들어도 여전히 호감이 가는 양조위와 금성무를 보고 싶으신 여성팬들과 이제는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춘 임청하와 왕정문(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왕비'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을 보시고픈 분들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