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단편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리뷰의 소개로 인해 스포일러가 불가피하게 노출되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단편영화는 혼자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묶어서 이야기하지 않는한, 그리고 영화제에서 출품을 하지 않는한 단편을 홀로 영화에서 만나는 것은 힘들다. 공중파에서는 KBS가 시도했었고 처음 단편을 공중파로 방송했던 EBS는 지금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실사 영화가 이렇게 힘든데 애니메이션이라고 쉬울리가 있겠는가?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라면 묶는게 가능하지만 지금 이야기할 세 편의 작품은 비슷한 소재도 아니요, 관련성도 없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중인 '인디애니박스'(아마도 시리즈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겠지만...)는 그런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티드
세 작품 중 그 첫문을 여는 작품은 김윤기 감독의 '원티드'이다.
한 노파가 바람과 비를 몰고 다니고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된다.
사람들은 수소문을 하여 그 노파를 찾을려고 하지만 찾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번 그 노파에게 처절하게 당하고야 만다.
이 작품은 엉뚱하게도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웬 노파가 나타나고 비바람에 사람들이 당하는 이야기이니...
무슨 이유로 이 작품은 1987년을 언급했는지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 했었다.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
사실 그 노파는 태풍 '셀마'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간접적으로 표현한 셀마는 이 작품의 뒤에서는 그녀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찾아왔다는 대목에서 태풍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태풍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고 가장 황당한 상황은 바로 정치인이 등장한 장면이다.
마치 현재의 상황을 보고 있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정치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구호물품을 배에 싣고 수재민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정치인은 수재민들이 타고 있는 조그마한 배에 구호품 상자를 마구 전달한다. 배가 가라앉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상자를 전달하는데 정작 수재민들에게 도착된 구호품은 다름아닌 곰인형...
그러나 모두 곰인형이 든 상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한다. 그나마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다시 나타난 정치인은 삽질(그야말로 진정한 '삽질')을 하면서 생색내기가 아닌 진짜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작품 속의 상황이 지금과 다를바가 없다고 느껴진 이유는 현재 광화문과 서울광장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을 통해 보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생색내기로 정책을 펼치는 정치인들에 일단 국민들은 믿어보지만 국민들은 한 순간에 바보가 된다.
다시 해보겠다고 사과하고 나선 정치인은 그러나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밀려나게 된다.
거기에 '삽질'을 하고 있는 상황은 정말 지금 상황과 똑같다. (마치 누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1987년 태풍 셀마가 남긴 것은 결국에는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마치 지금의 상황처럼 말이다.
('원티드'에 대한 작품 스포일러는 여기까지!)
#무림 일검의 사생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마 지금 소개할 두번째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장형윤 감독의 '무림 일검의 사생활'은 웃기는 상황에 심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압권이다.
오래전 최고의 검객으로 이름을 날리던 진영영은 수 백년 후 다시 환생을 하여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검객이 아닌 커피 자판기로 환생하여 일정시간을 마치 신데렐라가 요술로 귀족이 된 것처럼 사람으로 변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를 노리는 사람들은 장난감 얼룩말로, 북극곰 인형으로 환생한 모습으로 그와 싸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알바와 대학생활로 지칠대로 지친 혜미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난생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 줄거리만 이야기하면 상당히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만든 제작사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어느정도 수궁할지도 모른다.
얼마전 씨네 21에서 소개했던 창작집단인 '지금이 아니면 안돼' (진짜 이름이 그렇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라는 곳을 소개하면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았는데 몇 년전 보았던 '아빠가 필요해'(2005)라는 작품이 떠오르게 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작가로 등장한 늑대는 열심히 글을 집필하고 있고 그러던 와중에 한 소녀가 왔고 그 소녀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된다. 이 엉뚱한 동거는 진짜 동물인 토끼와 거북이가 등장하면서 더 황당한 상황을 연출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장형윤 감독들의 스타일을 잘 들여다보면 미야자키 히야오 감독이 만든 지브리 스튜디오(이하 '지브리')를 연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웃집 토토로'처럼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엉뚱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엉뚱한 상황속에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는 점이다. 무림의 고수가 자판기가 되어 살아간다는 이 동화적이고 엉뚱한 상황도 지브리 식 스타일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브리는 지브리고, 장형윤 사단의 '지금이 아니면 안돼'는 그들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는 몇 년전 이성강 감독의 '천년여우 여우비'(2006)가 보여준 뼈저린 실패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단백질
마지막에 소개된 작품 연상호 감독의 '사랑은 단백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작품이다. 세 명의 젊은이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직업은 소개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애니메이션이나 이와 관련된 작품들을 만드는 사람들로 추측이 된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은 돼지저금통을 깨 통닭을 시켜먹기로 한다.
그러나 족발집에서 배달 나온 듯한 족발집 주인 '돼지'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놀라게 되는데 더 가관인 것은 이들 뒤로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닌 닭이었다. 수탉... 중년으로 보이는 수탉이다.
그는 배달 온 통닭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병아리 시절부터 열심히 키운 자식과도 같은 녀석인데 하루 순간에 사람들 입으로 가야하니 원통하고 슬픈 일... 세 청년은 고민에 휩싸이고 결국 결론을 내리지만 결론은 역시 먹는게 남는 것...
이 작품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까 난감한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치킨에게는 사연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팜플렛 내용처럼 이 작품은 우리의 인생살이를 약간은 과장된 블랙코미디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죽어가는 '닭돌이'의 모습을 뒤로 하고 갑자기 거리의 풍경으로 장면이 바뀌는데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먹는 젊은 여성들과 아무런 느낌없이 거리를 거닐고 다니는 사람들과 묘한 표정을 하고 있는 딸과 그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통닭을 끝까지 거부한 세 청년 중의 한 명은 병아리 인형 앞에 안타까움을 나타내지만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다시 길을 나서게 된다.
세 청년에게 희생당한 돼지 저금통의 눈물겨운 모습(?)을 비롯해 엉뚱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 이 작품은 '닭돌이'의 유골을 하늘로 날림으로써 끝을 맺지만 한 생명이 닭으로 태어나건 혹은 인간으로 태어나건 간에 그 삶 속에서는 다양한 모습들이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들 작품중의 '무림일검의 사생활'은 다행히도 올해 부천영화제에서도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디스페이스의 상영시스템은 장기상영이다.
그러나 최신작을 격일로 상영한 뒤 몇 주 후에는 다른 전 상영작과 교차상영으로 상영방식이 바뀐다.
그 전에 이 작품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시간이 있으시다면 부천에서도 이 작품을 감상해보신다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 외의 두 작품 '원티드'와 '사랑은 단백질'도 범상치 않은 작품이니 이들 작품에도 관심을 갖아주시길 바란다.
★이 리뷰는 '인디스페이스'와 함께 합니다. (http://www.indiespa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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