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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워낭소리' -소와 인간의 교감, 이것이 진정한 명품 다큐!

송씨네 2009. 1. 16.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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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들으시는 곡은 '워낭소리' OST 중 'Missing', '공생'이라는 곡입니다.

실제 다음이나 네이버, 싸이월드 등의 포탈에 음원이 올라와 있는 곡들 중 하나입니다.

 

워낭 :  마소(우마)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는가?

홀로 독신으로 살면서, 백수로 지내면서 요즘들어 죽음에 대해 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얼마전 고모부께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신 적이 있었다.

예고된 죽음이지만 그 죽음의 당사자는 과연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는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어떤 때는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 날 극장을 찾았다.

기자 시사로 가볼려고 했던 영화지만 놓쳐버리고 만 시사...

이충렬 감독과 '우리학교'의 고영재 프로듀서가 참여한 다큐 '워낭소리'이다.

1월 15일 저녁 8시 20분... 중앙시네마...

(이 영화는 많은 곳에서 상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빨리 보시길 권한다. 일 주일 만에 대폭 상영장이 축소된 '미안하다 독도야'의 경우처럼 말이다. 본인은 이 영화를 놓친 경험이 있어서...)

신림동 순대타운처럼 인디영화 관련 극장이 모여있는 장소...

원래 이 시간이라면 사람도 없고 나 홀로 영화를 볼 시간이다.

그런데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빈자리라면 앞에 있는 몇 자리 정도...

상업영화 뺨치는 좌석 점유율... 왜 이 영화가 화제가 되었을까?

 

 

 

 

어느 인적 드문 산골에는 한 노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에게 식구라고는 개 한마리와 늙은 소 하나가 전부이다.

이름도 없는 이 소는 마흔이 넘는 나이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정말 벌써 죽고도 남을 나이이지만 이 녀석은 노부부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쟁기질을 할 때도, 수확을 할 때도 이 녀석은 이 부부에게 꼭 필요한 녀석이다.

하지만 수의사가 말한다. 소가 노쇠하여서 이제 길어봤자 1년 밖에 못산다는 이야기이다.

노인은 허탈한 웃음을 지은다. 하지만 그녀석이 없으면 일이 안된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데도 소를 끌고 간다. 소도 비틀, 노인도 비틀...

새로 소를 한 마리 더 구입했다. 암소 한 마리는 새끼까지 몸에 배고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사이 늙은 소를 밀어내고 그 녀석이 외양간의 최강자가 되어버렸다.

송아지가 태어났지만 그 어미의 그 자식 아니랄까봐 자기 세상 뭐냥 날뛰기만 한다.

결국 몸 편치 않은 할아버지만 더 다치기만 하고 할머니도 속상하긴 마찬가지...

아이구...를 연발하면서 할머니는 자신 보다 소를 더 챙기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명절이 다가오고 9 남매 자식들은 하나같이 늙은 소도 팔라고 한다.

할아버지를 다치게 한 그 말썽쟁이 송아지도 안판다고 난리를 치던 분이 애지중지 하던 40 년지기 소를 팔겠다고 할 수만은 없는 노릇...

노인과 소... 이들의 관계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집으로...'를 좋아하신 분이라면 이 영화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노인이 늙어갈 수록 소 역시 늙어갔고 노인이 힘들어 숨을 헐떡일 때면 소도 헐떡거리면서 침을 흘리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인간극장'처럼 노인과 소의 삶을 조용하게 이야기하였다.

이는 작년 개봉하여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던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2006)와 닮아 있다.

동물이 주인공이었다는 공통점과 나레이션 없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더욱더 느릿느릿 늙은 소처럼 숨을 천천히 고르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의 소리도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가 아닌 자연에서의 소리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애지중지 하는 고물 라디오와 소의 울음소리,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인 워낭소리가 전부이다.

라디오도 고장을 일으키고, 노인의 두 다리도 점점 힘에 붙인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중요한 존재였다.

물론 지금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성능좋은 농기계들이 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에게 소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인의 파트너였던 소의 경우는 다르다. 30 여년의 기간을 식구처럼 지냈으니 이 녀석을 잃는다는 것은 가족을 잃는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티격태격 싸움이 일어나는 주 원인은 사실 소이지만 소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영화속 9남매 자식들을 쉽게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살아갈 수 있었고 우리세대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니깐...

 

할아버지의 모습은 한국을 대표하는 가부장적인 모습의 인물이다.

또한 세상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옛 것을 고집한다.

기계를 놔두고 여전히 소를 끄는 것도 그렇고 할머니가 계속 농약을 안쓰냐면서 투덜대는 대목은 관객들이 웃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장면이지만 한 편으로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픈 할아버지의 고집을 볼 수 있는 장면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할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면서 지친 늙은 소를 이끌고 읍내 도시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필이면 비가 왔었고 '미친소는 물러가라!'라는 시위가 들려왔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였다.

늙은 소는 '미친 소'라는 말에 잠시 멈추고 머뭇거린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나 보다.

'늙은 소'가 아니라 '미친 소'였는데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이야기가 두 번 정도 등장한다.

한 번은 바로 시위 장면이고, 또 하나는 고삐 풀린(?) 송아지를 높은 값에 흥정하려다가 실패한 노인과 소파는 소장사 관게자의 언쟁에서이다. 고물 라디오에서는 한미 FTA 때문에 농민들이 힘들어하고 있으며 소값은 하락세이다 보니 소를 파는 농가가 더 많아졌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자꾸만 이 대목에서 지금 이 나라를 맡고 계시는 나라 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 그럴까? 이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필수 관람이다.) 

 

 

 

 

선댄스와 부산에서 각각 초청된 이 작품은 이충렬 감독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충렬 감독은 외주 제작사 PD였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이야기로 여러 방송국에 이 작품을 노크 했지만 쉽지 않았다.

TV용으로 가는 대신 다큐용 영화로 방향을 순회한 것은 어쩌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인간극장을 비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인간극장' 과 같은 다큐는 초반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우리들 서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조작 의혹과 더불어 일반인보다는 좀 더 튀는 사람들이라던가 심지어는 연예인들의 일상까지 따라가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면서 더 이상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기 보다는 외면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더구나 30 분짜리 방송을 주 5회에 나누어 방송하다보니 방송 분량이 많아져야 하고 따라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까지 오고야 만다.

어떻게 보면 이충렬 감독의 이 작품의 러닝타임인 78분이 다큐를 만들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으면 한 시간, 많아도 1시간 30분(90분)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 한 마리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들면 연약하고 힘들어지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을 준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죽음은 갑자기 다가오기도 하고, 몇 년 밖에 못산다고 시한부 판정을 내려도 더 빨리 죽을 수도, 더 늦게 죽을 수도 있다.

앞에 이야기했던 고모부는 노환으로 몇 개월을 못사실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자식들의 도움으로 1년이 더 넘게 사실 수가 있었다.

죽음에 당당히 맞서라는 말은 이 이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기적은 있고 그 기적 또한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된다.

 

아마 세상을 떠나기 전 늙은 소는 노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주인님, 힘드셨죠? 저도 힘드네요...

그래도 40년을 주인님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어요.

부디 건강하시고 제 옆에 있던 젊은 암소는 그만 나무라시고요.

그 녀석도 늙으면 아마 제 심정을 이해할꺼에요.

주인님에게 드릴 것이라고는 땔감 몇 개 뿐입니다.

그래도 올 겨울은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는 편안히 눈 감을 수 있겠내요.

정말 고마웠어요... 행복하세요... 안녕...

 

 

이상하게 요즘 눈물이 난다.

아니, 울것 같다. 올해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눈물나는 영화는 전반기에는 찾기 힘들 것 같다.

순애보라고 떠들고 다니는 멜로 영화들보다도 더 슬픈 이야기가 아닐까?

하늘에서는 아픔없이 행복하게 뛰어놀길 늙은 소에게 기원해본다.

(그건 그렇고 당분간 소고기는 못먹을 것 같다.  아마도 그 늙은 소 생각이 나서...)

 

 

 

 

이 이야기도 읽어보세요

 ※고영재 프로듀서 &  이충렬 감독 인터뷰 http://blog.daum.net/songcine81/13741713

 ※'워낭소리'와 '미안하다 독도야'... 두 영화의 명암  http://blog.daum.net/songcine81/1374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