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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나쁘거나'를 코아 아트홀에서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베니건스와 어학원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좁아터진 좌석이라도 이곳 만큼 예술영화를 볼 수 있었던 곳도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예전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재 지금은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아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본 기분이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바로 그것이다.
4월 8일 서울극장에서 만난 '똥파리' 시사회이다.
그는 깡패이다.
용역깡패로 시위현장을 진압하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폭력도 서슴없이 한다.
그는 해결사이다.
떼인돈 받아내는, 그래서 아이들이 보건, 여자들이 보건 간에 사정없이 폭력을 행사한 뒤 돈을 갈취한다.
그는 양아치이다.
하루 일상에서 대부분이 욕설이고 싸움박질이며 늘 분노로 가득차 있다.
그의 이름은 상훈... 어느 날 만만치 않은 소녀를 만났다.
고 3 소녀 연희는 월남전 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아버지와 그리고 양아치 동생과 살고 있다.
어쩌면 막장 인생에 그녀 역시 홀로 버려진 사람이다. 상훈 처럼...
상훈도 희망은 없다. 사고로 잃은 여동생과 어머니는 알고보면 술 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훈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또 원망한다.
하지만 연희를 보면서 희망이 생겼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새엄마의 딸, 그러니깐 또 다른 누나 현서를 보며 희망을 얻고 삼촌이라고 불러대는 조카 형인을 보면서 희망을 얻는다. 아버지는 미워도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니깐...
연희의 남동생 영재가 상훈의 흥신소에 찾아오면서 그들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그게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운명이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욕으로 시작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열심히 구타를 하고 있고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나타난 상훈은 그 남자를 마구 때리고 있고 심하게 구타를 당했던 여인에게 뺨을 때린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고 사냐고 말이다.
첫장면의 싸늘한 장면 이후 만식과 상훈이 운영하는 정체불명의 흥신소가 등장한다.
만식도 똑같은 건달이지만 용역 깡패와 떼인돈을 받아내고 얻은 일당들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어딘가 순박한 건달이다. 그러나 두 건달들의 대화에는 욕이 많다. 그 욕이 너무 일상적인 그들의 욕설이라서 영화를 계속 보면서 그게 당연하다는 느낌마져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건달이었다. 건달이었기에 없는자들의 돈을 뜯어내는 쓰레기 같은 존재들이다.
상훈에게 처음으로 거침없이 덤비던 소녀 연희도 겁이 없다.
양아치 같은 동생에게, 그리고 분열증세에 시달리는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호되게 당하던터라 겁날 것이 없다. 이미 공부는 물건너 갔고 알바라도 해서라도 밀린 월세와 집안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은 그래서 서로를 의지하기에 충분하다.
왜 첫 도입부에 내가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두 이야기에 건달이라는 소재라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이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욕설과 싸움장면이 은근히 많다는 것 이외에도 류승완 감독도, 양익준 감독도 모두 시나리오와 출연, 연출을 겸했다는 점이다.
사실 양익준 감독은 독립 영화나 작은 영화에서 간간히 모습을 비추던 조연급 연기자이자, 독립영화에서 알게 모르게 관객과 마주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류승범의 '품행제로'에도 나왔고 강동원과 이나영이 함께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도 나온 배우이다.
그런데 그가 만든 첫 장편영화치고는 너무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았던 사람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깐...
이 영화는 거의 분열 직전이 두 집안이 나오고 그 곳을 대표하는 두 남녀가 서 있다.
그런데 이들의 분열된 가족들은 영화의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재미있게도 하나의 가족으로 형성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작품이 그렇다고 해피엔딩은 아니다. 이는 마치 '그랜 토리노'의 고집쟁이 영감처럼 상훈 역시 장렬하게 희생(?)을 함으로써 이 각기 다른 두 집안은 또 다른 공동체가 되고 또 다른 가족으로 형성된다.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하나의 가족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안슬기 감독의 '다섯은 너무 많아'가 떠올랐다.
하지만 안슬기 감독의 '다섯은 너무 많아'처럼 핏줄하나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만들어내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도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 영화는 희생을 통해 또 다른 가족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그들 각자 가족들이 극적인 화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상훈은 그렇게 죽이고 싶어하던 아버지의 자살을 막으면서 결국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지만 연희의 동생인 영재는 가족과의 화해를 포기하고 상훈이 갔던 그 길을 똑같이 가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포장마차 노점 생활을 하다가 용역 깡패에게 희생된 어머니를 생각에 힘들어하던 연희에게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상훈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패륜아스러운 상훈의 초반 행동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아무리 폭력적인 장면이 적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자 관람불가를 받아야 마땅한 등급이 분명하다. (사회에 지탄을 받을 행위들이다 분명...)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상훈의 행동은 불가피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을 죽인 장본인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밀양'에서 용서했다는 것과 용서를 하지 않았음에도 신에게 용서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될지도...
상훈 역을 맡은 양익준의 실감나는 건달 역할도 좋았지만, 당찬 소녀 역을 맡은 배우 김꽃비도 주목할 배우이다.
혹시 낮익은 이름이라고? 컬트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혹시 이 영화를 기억하실지도...
(물론 졸지에 컬트영화가 되어버린 것이 아쉽긴 하지만...)
전계수 감독의 뮤지컬 영화 '삼거리 극장'에서 소녀 소단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맞다... 바로 그녀다!
똑~ 부러지는 연기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앞으로도 보여줄 그녀의 활약상을 기대해 보시라.
(아, 그리고 귀찮을텐데 친절히 답해주고 사진도 찍게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그런데 사진은 망쳤다 T_T )
아울러 조카 형인 역으로 등장한 아역배우 김희수 군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따가 무대인사 이야기를 좀 하겠지만 역시 아역배우들은 무대인사에도 순발력을 잘 발휘한다.
이 당찬 꼬마가 비록 데뷔작이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이지만 앞으로 상업이나 인디 모두에서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이외에도 오지혜, 최용민 씨 처럼 드라마나 영화에서 감초 연기로 인정받은 배우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놓치지 말고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요즘 세상 희망이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 영화속의 이야기는 희망없는 자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모습에서 희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1 세기 시대로 올라온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다시 이 힘든 대한민국에 상륙하고 있었다.
숨겨진 이야기...
이 날에는 짧지만 강한 무대 인사가 상영 이후 있었다.
김희수 군은 '저는 미성년자라서 이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가 좋다고 그러거든요. 많이 봐주세요!' 라고 똘똘하게 관객들을 향해 이야기했으며 김꽃비 씨는 영화 공식 상영이전 벌어지는 주요 행사를 줄줄히 알려주기 시작한다.
일일 포차와 인디 밴드들이 모인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인디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인지도 때문인지 몰라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영화 개봉전 이어질 에정이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똥파리'의 공식 블로그로 가보시길...
사진과 더불어 김꽃비 씨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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