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영화 '더 리더...' 남자, 어른이 되다!

송씨네 2009. 3. 29. 21:12

 

 

아카데미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 소설이 원작인 작품들도 국내에서 계속 개봉되고 있다.

케이트 윈슬렛에게 아카데미를 선사해준 그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 이다.

 

 

 

때는 1958년 서독...

비가 심하게 내리는 어느 날 한 소년이 구토를 하고 있다.

안타깝게 여긴 한 여인이 이 소년을 보살펴준다.

열병이 다 나은 상태... 그렇게 한나와 소년 마이클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남몰래 흠모하던 마이클은 용기를 내었고 한나는 그를 이해해주었다.

사랑은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심한 나이차가 그들의 방해 요소가 될 수 없었다.

전차 안내양인 한나와 마이클은 그렇게 계속 만나기 시작햇으며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나가 승진통보를 받은 이유 그녀는 아무말 없이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고 마이클에게도 어떠한 이별통지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다.  마이클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정에서 방청을 하고 있는 중...

그러던 와중에 유태인 학살의 용의자들이 재판을 받게 되고 그 속에서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교회에서 대량 학살된 유태인들의 죽음을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녀는 나약해 보였다.

무기징역을 받은 한나... 마이클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고 있었다.

마치 아우슈비츠1 감옥의 끝없이 쌓여있는 신발들로 채워진 벽처럼 말이다.

 

 

 

 

 

초반 부분에서 생기는 의문점은 과연 한나와 마이클의 사랑이 과연 진실한 것인가라는 것과 정당한 사랑인가라는 의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식으로 따지면 두 사람의 사랑은 원조교제에 가까운 사랑이다.

단지 어린 여성에서 어린 남성으로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격렬한 섹스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후반 그 의문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그들의 만남이 물론 육체적인 사랑도 있었지만 정신적인 사랑, 그리고 그것이 우정도 될 수 있고 사랑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마이클이 한나에게 읽어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성장하면서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한 명은 죄인이, 또 한 명은 가슴아프게 그녀를 바라봐야 하는 예비 법조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더 리더'의 중요한 포인트는 이 초반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반로 향하는 이야기들이다.

무기징역을 받은 한나를 바라보는 마이클은 한나를 위헤 그녀를 위한 오디오 북을 만들기에 이른다.

과거 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책을 읽어주었다면 이후는 목소리를 통해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한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글을 배우는 연습을 하게 된다.

 

 

한나가 왜 마이클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유대인들에게 책 읽기를 요청했는지는 후반에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그녀가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동료들이 시키는 것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으며 그것이 자신의 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유태인을 학살한 장본인인 그녀는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들을 학살시킨 꼭두각시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법정에서 필적대조를 포기한 이유 역시 자신의 문맹에 대한 비밀을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서 출발한 이 영화가 이후 사랑보다는 우정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하는데 이제는 그 아픔을 지워버리고 싶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철 모르던 시절에 사랑을 나눈 소년은 어른이 되면서 사랑의 아픔을 맛보았고 그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부질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 리더'는 나이를 초월한 러브 스토리이지만 한 편으로는 한 소년의 파란만장한 성장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레나'가 떠올랐다.

'더 리더'가 제 2차 세계 대전의 독일의 상황을 이야기하듯 이 작품도 무솔리니 정권의 이탈리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과부가 될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여인 말레나와 그런 그녀를 짝사랑하는 반바지 소년 레나토의 순애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가 앞의 '더 리더'와 다른 점이라면 '말레나'에 등장하는 두 사람 모두 사랑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레나토는 사랑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창녀 취급을 받던 말레나 역시 알고 보니 남편을 위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숨긴 상태에서 어려운 삶을 꾸려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어쨌든 사랑에 대해 매우 어설픈 소년들은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일등공신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케이트 윈슬렛이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30대 초반부터 60대의 할머니까지 모두 연기해야 하는 상당히 버거운 일들이었지만 훌륭히 해냈다고 보여진다. 아카데미에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이 작품 '더 리더' 두 작품을 동시에 후보에 올린 저력은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 모두 소설이 원작이도 케이트는 두 작품 모두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물론 케이트 윈슬렛도 고생을 했지만 그 만큼 더 고생한 것은 중년의 마이클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 보다는 소년 마이클을 연기한 데이빗 크로스가 아닐까 싶다. 법적으로 미성년자가 섹스 연기를 할 수 없기에 18 세 까지 기다리면서 이 영화를 준비했다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때가 묻지 않은 나이임에도 열과 성의를 다해 과감한 노출신을 케이트 윈슬렛과 했다는 것은 대단한 열정이라고 보여진다.

 

 

 

원작 소설들이 시중에 나와있는 가운데 영화와 소설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다보니 원작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런 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싱크로율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한 잡지에서 평가한 바로는 최근 개봉작 중에서는 그래도 많이 원작과 흡사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원작에만 기대다보면 감독만의 재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코믹스(만화)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 예가 최근 개봉된 작품 '왓치맨'이다.

얼마나 원작팬과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새로운 독차층을 모두 충족시킬 것이냐가 최고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만들던지 간에 욕을 먹는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간에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내려준 '더 리더' 역시 주목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진다.

 

 

 

 

 

 

  1. 정확히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Kraków) 지방에 있는 화학 공업 도시이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곳은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의 의미로도 사용된다.젊은 여성들이 이 곳에서 대량학살되었는데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독가스 학살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태인 대학살을 '홀로코스트'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