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편안하지만 그렇다고 맘놓고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하듯 그의 영화에는 영화감독들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지식인 층이라고 생각하기에 마련이고 홍 감독은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관객에게 비틀기를 시도한다.
또 다시 그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홍 감독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 주위의 인물들의 실생활일지도 모른다.
전반전... 인디영화를 만드는 구경남은 제천에 와 있다.
놀러온 것은 아니고 제천 영화제의 경쟁작 심사를 보러왔다.
까칠한 영화제 프로그래머 현희를 만나면서 일단 그의 꼬이는 인생이 시작된다.
심사보다는 동료 심사위원이나 배우들과 술에 쩔어있고 후배인지 웬수인지 모르는 상용을 만나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다. 졸면서 영화를 봐야하니 심사가 잘될 수가 없다.
마지막에 결국 심사를 포기하고 출품작을 DVD로 감상하고 서면심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할려고 하지만 마지막까지 현희는 경남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혜어진다.
후반전... 경남은 제주도에 와 있다.
역시 놀러간 것은 아니다. 제주도의 영상센터에서 자신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후 간단한 강의를 하는 것이 이 날 목적인데 까칠한 팬을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선배로 깍듯이 모시던 양천수 화백의 아내가 자신의 젊었을 적 대학 후배이던 고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말 오랜만의 만남... 찐한 만남은 결국 역시 이상한 결과를 초래하고 경남은 제천에 이어 제주에서까지 물의 아닌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대부분이 저예산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출연진을 보고 우리는 놀라게 된다.
상업영화로 착각하겠다는 것이다. 인디판 '오션스 일레븐'을 보는 기분이셨을지도...
매인 주인공인 김태우를 시작으로 고현정, 엄지원, 하정우, 공형진, 유준상, 정유미 까지...
상업영화에서, 저예산 영화에서 주로 만나게 되던 분들이 모두 모여 있다.
물론 이런 출연이 가능하게 된 것은 게런티를 받지 않거나 혹은 낮게 받은 출연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전략은 이렇게 성공하고 있었다.
영화는 주인공 구경남의 나레이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제천과 제주 여행기가 되시겠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하여 출장을 한 자리가 졸지에 술자리가 되어버렸고 애정관계를 나타내는 자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지만 심한 노출이나 욕설도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성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수위 조절이 높아 이런 등급을 받지 않았나 싶다.
얼마전 개봉된 '미쓰 홍당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섹스와 관련된 장면이 없었음에도 이 영화의 수위가 높았던 것은 섹스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제천에서 만난 부상용은 절친한 후배이자 영화를 같이 만들었던 동료이다.
하지만 그를 처음 만나자 마자 바람둥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 부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남은 상용의 부인을 만나게 되고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약간 그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잠결에 그녀의 울음을 들었고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왔지만 상용이 숨이 쉬지 않는다면서 슬퍼하며 울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119를 불러야 하는 상황인데 두 사람은 애처롭게 서로를 바라보며 애정을 나누고 있다.
잠시후 그 이유가 공개된다. 이유인 즉슨 그것은 경남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영화를 관람하신 분이라면 이 장면이 꿈이었는가 진짜로 사랑을 나누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답도 금방 드러난다. 경남이 영화제 본부로 이동하는 자리에 버젓이 상용이 그를 배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숙소에서 상용이 경남에게 남긴 편지는 그를 비하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실망했고, 다시는 찾아오지도 말라는 글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나눔은 진짜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상용의 부인은 뒤로 호박씨(?)를 깠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진짜 꿈일지도?
이런 헛갈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은 엄청나게 등장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홍상수 감독의 대표작인 '오! 수정' 처럼 뭐가 먼저였는지 헛갈리게 만든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 다시 재연이 된다. 선배였던 천수가 경남에게 '경남은 미술을 할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할 사람'이라고 칭찬을 한 곳이 운동장이었는가, 아니면 학생회관이었는가라는 기억의 차이로 인한 논쟁장면이다.
별 것 아닌 팔씨름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대결 장면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이다.
홍상수 감독은 관객들에게 자꾸만 퀴즈 아닌 퀴즈를 내고 있는데 사실 이 퀴즈는 전혀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이 착각현상을 상황에 집어넣으므로 인해 사람간의 친밀감이 한 순간에 깨질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술에 취해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오해나 착각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이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홍상수 감독의 생활 밀착형 개그(혹은 퀴즈)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경남의 주위 사람들도 하나같이 멀쩡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현희는 책임감은 있지만 어딘가에 까칠함이 보이며 변덕도 있는 것 같다.
애로 배우출신의 정희는 직업병처럼 실제로도 다른 이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한다.
상용은 다혈질에 주체할 수 없는 욕설과 분노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고 있으며, 제주도의 고 국장 역시 한 성질하고 있다.
고순은 아직도 진정한 사랑에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답을 못찾고 헤매고 있으며, 고순, 천수 부부의 이웃집에 사는 조씨는 마치 '분장실의 강선생님'처럼 천수에게 충성을 다하고 눈물도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눈물인지, 악어의 눈물인지는 도통 알 수 없다.
그러니깐 결론적으로 말하면 경남은 어쩌면 본인 혼자 정상인데 이상한 마을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 이상한 동네에 불시착한 경남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전반에 영화제 이야기로 후반에는 제주도 특강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는 이 작품은 전반에는 현희와 상용과의 일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후반에는 첫사랑일지도 모르는 고순에 관한 이야기가 후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전반보다는 후반에 눈길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그 이야기의 역할을 맡은 고현정의 모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횟집에서 천수와 경남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와 경남에게 보낸 편지에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그러나 횟집에서는 지금의 남편 천수를 포함한 세번의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경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것이 추가가 된다. 바로 당사자인 경남이다. 경남의 프로포즈 이후부터가 고순이 이야기하는 그녀의 첫번째 사랑 이이야기였던 것이다. (물론 남편에게는 그것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마치 홍상수 감독의 전작의 하나인 '해변의 여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 이유가 뭘까? 물론 상황이 100%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바닷가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서 고현정의 전작인 '해변의 여인' 속의 문수과 동일인물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것 또한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에 억지로 본인이 끼워맞춘 경향이 있지만 웬지모를 유사함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배웠다는 사람들이 사실은 알고보면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무능한 인간들이자 인간말종에 찌질이, 루저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혹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어쩌면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 우리도 어쩌면 인간 말종에 찌질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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