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영화 '바람'-고교시절의 기억, 추억이거나 혹은 악몽이거나...

송씨네 2009. 12. 12. 02:20

 

 

여러분은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기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나요? 아니면 싸움꾼이었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맞고 다니는 왕따였나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을 어둡게 보냈습니다.

괴롭히는 아이들 때문에 늘 학교 다니기가 싫었던 적도 있었으니깐요.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는 그 시절...

이성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영화 '바람' 입니다.

 

 

 

[[이 영화는...]]

 

정국... 혹은 짱구라고 불리우는 녀석이 있었죠.

그는 학교 짱은 아니라도 그래도 인정받고 싶었던 소년이었습니다.

엄격한 아버지와 그만큼 무서운 형, 그리고 착하지만 늘 무시하는 누나까지...

그러니 얌전하게 살 수 밖에 없을텐데 그는 실업계의 고등학교에서 말썽만 일으키기만 합니다.

부산에서는 구설수로 유명한 실업계 학교에 입학한 정국은 첫날 선도부의 기에 눌리게 되지만 사실 무서운 것은 선도부나 복학생들이 아닙니다.

불량써클에 '몬스터'를 동경하던 그는 이 써클에 가입하지만 불법써클의 단속에 걸려 결국에는 구치소까지 들어가고 교무실을 밥먹듯이 들어가던 그에게는 이런 일이 일상이기만 합니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자신의 권위는 올라가지만 그럴 수록 마음한켠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죠.

선배에게 굽씬거리고 후배 관리하고,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고, 그리고 대학을 가려는 그쯤...

아버지는 노쇠하고 형은 군대에 있고 정국은 더욱 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은 전반적으로 '말죽거리 잔혹사'와 '친구'를 합친 기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초반에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서 이 영화가 논란꺼리가 될만한 영화라는 생각에 저도 어쩔 수 없이 공감하게 됩니다만 초반과 달리 후반에는 그런 것을 비웃듯이 가족에 의미를 더욱 더 강조하기 시작하죠.

불안한 앞날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면에서 이 작품은 '말죽거리 잔혹사'에 더 가깝습니다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부족한 장면들을 많이 보강했다고 해도 틀린 점은 아니라고 봅니다. 앞에 말씀드린 가족애가 강조된 점이 그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로맨스는 상당히  분량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마치 조직사회처럼 폭력조직이 학교에 즐비하고 환영식은 자장면에 촌스럽기 그지 없는 조직의 주제가나 부르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죠.

 

영화 속 정국은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폼생폼사'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1인자도 아니고, 2인자도 아닙니다. 부모와 선도부와 선배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는 것이죠. 저는 이런 친구들을 그냥 양아치라고 부릅니다.  침 좀 뱉고 메이커 가방와 남방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너구리 굴을 연상시키는 담배들만 줄창 피워대는 정말 흔해 빠진 양아치들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정말로 정신차리고 삶을 뉘우치고 새 삶을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주연배우인 정우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영화 속 정국처럼 삼류 양아치는 아니었어도 아버지를 여의고 방랑했던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고교시절 방랑한 생활을 했지만 그런 그들이 모두 깡패가 된 것은 아니라고 말이죠.

대학을 간 사람도 있고 장사를 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순간적인 실수는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대부분이 그런 큰 영향을 끼칠 정도의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폭력을 미화 했다는 것은 아니죠. 그렇게 해서는 안될테고요.

다만 어두운 고교 시절은 하나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겠지요. 

 

 

 

 

 

'바람'은 폭력을 정당화 한 작품은 아니지만 폭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미학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류승완 감독이나 양익준 감독처럼 저는 이성한 감독의 작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저예산 액션 영화인 '스페어'로 인정을 받은 그가 이번에도 액션에 비중을 두지 않았나 싶지만 의외로 강한 액션은 아닌 거의 굴욕에 가까운 싸움들이 대부분이며 시장 한복판에서도 다른 학교 다른 조직간의 싸움이 일어날 장면에서도 그것이 말싸움에서 몸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도 빗나가게 됩니다. 굳이 폭력적인 장면을 쓰지 않아도 조직의 규모나 그들의 일상이 충분히 표현이 될테니깐요..

 

그의 영화에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국악을 사용한 음악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스페어' 때도 마찬가지이며 이 작품에서도 그것이 이어집니다.

국악이 아닌 다른 음악이 사용된 장면은 정국을 비롯한 삼총사가 자신의 집처럼 드나들던 다방스러운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들이 전부라는 것이죠.

복고적인 느낌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시장에서의 패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장면에서도 모 통신사의 브렌드가 보이긴 했지만 이 영화의 배경은 전반적으로 1990 년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출기(삐삐)와 더불어 '우리집~' 하면 전화가 걸리는 초창기 핸드폰을 묘사한 장면들이 바로 그것이죠. 대부분이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고교 이야기를 우리가 주로 봐왔다면 1990 년대의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처럼 보이집니다.

 

이 작품은 물론 주인공인 정우 씨가 인상적(복근이 장난이 아닌것 같더군요.) 이긴 하지만 단 몇 분이지만 주목을 받은 배우가 있죠. 바로 황정음 씨 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그녀의 출연분량은 생각했던 것 만큼은 적습니다. 차라리 카메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죠. 최근 시트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영화로 만나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긴 합니다.

 

 

 

사실 이런 작품은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폭력을 정당화 하는 이야기라는 오해를 받기 충분합니다.

아니, 그게 오해가 아닌 진짜 일수도 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내느냐가 최대의 관건이죠.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후반에는 정신을 차린 정국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간경화로 배가 불어오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죄책감이 들던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에게 잘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영화에 등장한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 우유는 삐삐와 더불어 복고적인 아이템이 되지만 목욕후 먹는 바나나 우유가 아버지와 자식의 정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근데 이 바나나우유... 이거 PPL인 것 같은데 제가 확인을 제대로 못했네요.)

 

폭력은 아름다운 것일까요? 사랑은 아름다운 것일까요?

우리에게 정은 있었던 것일까요? 이런 저런 질문이 많아지는 영화 '바람'입니다.

 

 

 

 

PS. 이 영화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대한 논란은 의외로 뜨거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폭력적인 장면은 많지만 심하게 자극적이지는 않은 편입니다. 그러나 항상 영상물 등급위원회가 이야기하는 모방의 우려 때문에 이런 등급이 내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영화사는 광고를 통해 이 작품이 이 등급을 받은 것에 상당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의견도 심하게 갈리는 편이라서 이 작품의 등급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앞에 소개한 '말죽거리 잔혹사'의 개봉당시 관람등급은 15세 관람가 입니다.

폭력에 대한 장면들은 '말죽거리 잔혹사'와 '바람'과 비슷한 편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해당 영화사나 일부 팬들이 이 작품의 등급이 정당하지 않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