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영화 '시'-노년의 그녀, 용서를 위한 그녀의 시...

송씨네 2010. 5. 16. 20:42

 

 

 

 

지난 몇 주간은 재미있게도 이른바 불편한 감독 삼인방의 영화들이 하나, 둘 개봉을 했습니다. 임상수, 홍상수 감독에 이어 역시 문제적 감독이자 또 하나의 작가주의 감독인 바로 이창동 감독이죠. 노무현 정권 시절 문화부 장관이후 그는 영화를 만드는 감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밀양’을 선보였고 전도연 씨는 이 작품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요. 그런점에서 그의 이번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시’ 달랑 외자에 더구나 왕년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주름잡던 윤정희 선생님을 재기용 했으니 이런 저런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난주 소개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 보다는 잔잔할지는 몰라도 의외의 쇼킹함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스포일러도 그렇고 이야기꺼리도 많은 작품이라는 얘기죠.
노년의 할머니, 시를 배우다... 영화 ‘시’입니다.

 

 

 

 


미자는 손자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예순을 넘긴 할머니입니다.
손자 욱이는 좀 사고뭉치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밥을 꼬박 챙겨먹고 챙겨줄때 미자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녀는 돈많은 거동 불편한 한 남자를 수발하는 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중생이 강가에 투신 자살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미자는 병원에서 목놓아 우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칩니다. 하지만 몇 일 후 이 여고생이 손자 욱이를 비롯한 여섯 아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다섯명의 아이들의 아버지들이 긴급히 모이게 되고 미자는 얼떨결에 그 곳에 합류하면서 여고생 투신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죠.
미자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투신사고 소식 후 모인 다섯명의 학부모의 이야기는 귀 담아 듣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귀 담아 듣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것을 잊으려고 시를 지으려는 것에 몰입하려는지도 모릅니다.
돈은 필요한데 이혼한 딸에게는 손내밀기 싫던 미자는 최후의 수단을 찾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사고로 잃은 여중생의 딸의 학부모(아까 말한 그 여인)을 찾으러 나섭니다. 하지만 세상에 모든 만물이 아름답게 보일려던 그녀에게 이 삶은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집니다.

 

 

 

 


‘시’는 스포일러가 필요한 영화다라는 이야기가 올라왔더군요. 영화평론가 심영섭 님이 트위터로 올리신 글로 기억됩니다. 그 정도로 내용의 줄거리를 설명하지 않고는 평론이나 리뷰가 불가능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더구나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깐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줄거리는 이렇고 그렇게 어렵지 않아보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지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필요한 까닭은 어쩌면 지금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자는 주위에서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할머니라는 생각도 드실 껍니다.
힘든 삶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나름대로 멋을 부릴줄 아는 할머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주책이라고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할머니이건 할아버지이건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 단지 숨길 뿐이지 자신이 하고픈 일을 알게 모르게 하고 싶어할지도 모를일입니다. 적어도 욱이와 관련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미자는 편안하게 시를 배우면서 남은 여생을 살았을지도 모를일이죠.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손자 욱이에게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 생기고 더구나 미자 자신에게도 치매 초기증상이 발생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단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시를 배우고 있습니다. 시는 뭔가를 계속 머릿속에서 창작해내야 하고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치매라는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더 황당한 것은 제가 의사라면 큰 병원에서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 미자가 의사에게 시를 배우고 있다고 이야기했더라면 저는 오히려 그녀에게 칭찬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기억력을 높이는 것은 이런 창작 활동이 최고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의사는 되려 면박을 주고 있으니 말이죠.)
돈은 없고 손자가 사고친 사건에 대해 보상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과 직면하면서 미자는 당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시를 지으려는 노력또한 잊지 않지요. 시상을 계속 찾으며 적고 있고 시낭송 발표회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으니깐요. 어쩌면 시라는 창작활동은 미자에게 최고의 안락처이자 탈출구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미자가 돌보는 노인입니다.
그 동네의 유지라고 해야할 정도로 잘 사는 부잣집 노인은 중풍에 걸렸는지 거동이 불편합니다. 말은 할 수 있으나 여전히 부자연스럽죠. 미자는 몇 일에 한 번 그를 목욕시켜주고 병수발을 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역시 남자... 미자에게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 되죠. 하지만 이 일이 오히려 미자에게 돈을 마련하고자 하는데에 이상하게도 도움을 주는 일이 되고 맙니다. 노인을 협박해서 돈을 받아내는 것이었지요. (미자가 노인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글로 협박(!)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외로 재미있는 장면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아시다시피 전작 ‘밀양’에서 용서라는 테마를 이야기 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유괴범에게 용서를 해야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그 유괴범은 신에게 용서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분노케 만들죠. 이번에는 오히려 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상황에서 미자는 그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물론 미자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만 말이죠.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피해자의 어머니는 담담하게 해결을 하려고 하죠.)

용서의 주체가 바뀐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창동 감독은 ‘시’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밀양’에서 개신교가 등장했다면 이번에는 카톨릭이 등장하면서 종교적인 용서를 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강조하기도 했고요. 물론 여전한 의문은 정말로 그 사람을(그 피의자의 가족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저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그 상황이라면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앞에서 이야기드렸듯이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서 전도연이라는 히든카드를 사용한데 이어 이번에도 특별한 히든 카드를 사용합니다. 바로 윤정희 선생님이죠. 문희(1947~ ), 남정임(1945~1992) 선생님 등과 마찬가지로 과거 60~70년대의 한국영화계를 주름잡던 이른바 트로이카로 불리우던 인물들 중의 하나로 윤정희 선생님은 한국영화사에서는 중요한 여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윤정희 선생님을 기용했다는 것은 얼마전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 윤여정 선생님을 기용한 것 만큼이나 놀랄일이라는 것입니다. 이후 한국영화계는 2대 트로이카. 3대 트로이카... 시대를 거치긴 했지만 과거의 이 세 분의 배우분들 만큼의 주목성을 끌지는 못하였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윤정희 선생님의 재등장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등장인물들도 보이죠. 섬진강 시인 김용택 님은 실명 출연은 아니지만 극중에서도 시인으로 등장하여 잔잔한 재미를 주셨고 최문순 국회의원은 어디에 등장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잠시 출연하여 역시 찾는 재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최근 막장드라마(?)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안내상 님은 주인공의 갈등을 조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약간의 조율을 시키는 인물로 등장하고 간간히 얼굴을 비추시는 김희라 선생님의 모습도 반갑기만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이 남습니다.
욱이는 결국 그 시와 더불어 음난패설을 좋아하는 박 형사(김종구 님)에게 붙잡히게 됩니다만 어떻게 되었는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문화강좌에서도 시만 홀로 남긴 상태에 마지막 특강에서도 자취를 감추죠.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보여지지 않지만 죽은 여중생과 미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흘러나오면서 미자가 지었던 시가 공개됩니다. 물론 그 결말을 보고 그녀의 선택이 그것이었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흐느는 강가의 모습만을 남겼다고 해서 미자의 선택이 과연 그것이었는가라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열린 결말일 수도 있고 관객들을 향해 트릭을 주었을지도 모를일이죠.

 

영화 ‘시’는 이 짧은 제목으로는 우습게 볼 작품은 아닙니다.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서 확실히 끄집어내야 이해가 가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시와 노년의 삶, 그리고 죽음 등의 이야기가 정신없지만 이창동 감독 방식으로 그려내서 그런지 정리가 잘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시’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영화속에 등장한 시들의 전문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아쉽게도 미자가 지었던 자작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영화의 감동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영화속에 등장한 시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