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하녀'(2010)-임상수 감독, 여전히 관객에게 불친절한 까닭은?

송씨네 2010. 5. 12. 00:32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만 보시면 결코 유쾌하지 않을 영화의 많은 줄거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리메이크 작이 나오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죠. 원작을 잘 살렸느냐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원작을 능가할 때도 있고 원작만큼 못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원작과 관계없이 그 모든 상식을 전복시키기도 하죠.

그런점에서 김기영 감독(1922~1998)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던 2010 년판의 '하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죠.

남의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인이 낙태를 하고 그 이후 여자가 그 집안에 복수를 한다는 내용은 지금은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1960 년에는 당시 파격적인 소재였을지도 모를일입니다.

항상 작품마다 평론가와 관객들의 찬반양론의 중심에 서던 임상수 감독이 또 한번 일을 냈습니다. 2010 년에 만나는 영화 '하녀'입니다.



한 여성이 자살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그 여인의 자살은 그냥 그런 사건 사고로 기억되어버리고 맙니다.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은이 역시 그냥 작은 사고에 불구경 하듯 구경하러 온 구경꾼이나 다름없지요. 그렇게 살아가던 은이에게 한 여성이 찾아옵니다. 

병식이라는 중년의 여인은 한 저택의 하녀직을 제안하게 된 것이죠.

이혼녀이지만 유아교육과를 나온 덕분에 은이는 대저택의 하녀 겸 이 집의 딸인 나미의 유모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집의 주인인 해라는 쌍둥이를 임신할 예정이며 그녀의 남편 훈은 잘나가는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뭘하는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부자는 부자라는 얘기죠.

두 부부의 별장에 은이가 따라가고 거기서 훈과 은이의 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대저택에서도 이런 행위는 계속되고 병식은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해라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해라의 모친은 은이가 임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해라 모친은 그녀를 제거할 생각으로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병식은 은이에게 안타까운 감정도 있으면서도 훈과 은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보이지요.

어수선한 상황에서 재미있게도 은이는 자신이 계단에서 떨어질 뻔한 사건이 로봇 청소기로 인하여 해라 모친이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라의 어린 딸인 나미에게 듣게 됩니다.

이제 그녀에게는 분노만이 남았습니다. 

백지장 같이 바보같던 그녀에게 분노만이 남아 있습니다.







고 김기영 감독의 이른바 '녀(女) 3 부작'은 당시의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실제 1 편 격인 '하녀'의 경우 주인공이자 악녀 역을 했었던 이은심 씨의 경우 너무 실감나게 연기를 한 덕분에 실제로도 많은 논란을 받았고 더 이상 연기를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시대상이 이렇게 어둡고 악녀에 대하여서도 사회적 지탄을 받던 상황에서 과연 임상수 감독은 2010 년에 이 작품을 어떻게 끌어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실껍니다. 

쥐가 등장하는 등의 당시에는 파격적인 장면이 등장했던지라 리메이크 작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등장하느냐는 이야기가 주된 궁금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작품에서는 쥐는 나오지 않습니다. (허무하다고요? 현대화된 대저택에서 쥐가 나온다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쥐가 나오지 않는 대신에 이 영화의 앤딩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결말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금하셔도 직접 영화는 극장에서 보시라고 일단 제 입은 함구할 생각입니다.




1960 년대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계급사회가 있었고 경제발전 이후 하녀라는 이름보다는 파출부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이 생겨났지만 기억속에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지붕뚫고 하이킥' 같은 시트콤에서 또 다른 현대판 식모를 등장시키긴 했지만 지금의 식모 혹은 파출부라고 불리우는 여성들은 가난도 가난이지만 중산층에서 경제불황으로 급격이 추락한 사람들의 또다른 이름이라고도 생각이 되어집니다. 

은이는 나름 아파트도 있지만 고시촌에서 동료와 같이 살아갑니다. 이혼녀라는 주홍글씨처럼 낙인도 찍혀있는 상태이지만 상당히 해맑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거 참 이상하죠? (또 다른 궁금증이 왜 전도연 씨가 백치녀로 등장했느냐는 것이죠.)

순수한 은이는 섹스에 대해서도 아무런 저항이나 반항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남의 아이를 임신했음에도 별로 놀라지 않죠. 그러나 병식이나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임신사실을 강조하고 이런 저런 비밀들을 들춰내고 결정적으로 낙태를 당하면서 그녀는 분노의 복수를 하게 되죠. (유혹으로 인해 한 남자의 아기를 갖았고 결국에는 그 가정을 파멸시킨 1960 년 원작과는 분명 다르긴 다르다는 이야기죠. 복수의 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겁니다.)



어쩌면 제가 솔직히 실망한 것이 은이를 백치로 그린 것도 그것이지만 21 세기를 달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당당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소극적에 바보같은 여인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시대적 착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 아쉬운 것은 병식이라는 인물은 과연 누구의 편인가라는 의문점이죠. 겉으로는 은이의 편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해라의 어머니와 모종의 거래를 했던 것이죠. 심지어는 은이의 죽음에도 어느정도 관여를 한 것이고요. 하지만 후반 들어서면서 이들 저택의 식구들에 분노를 느끼고 대저택을 떠나게 됩니다. 물론 그녀는 '아.더.메.치'한 상황(영화 보시면 이해가시는 대사입니다.)에서도 꾸욱 그 모든 것을 참아냈지만 그렇더라면 오히려 은이를 응원해주거나 은이를 도와주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녀를 돕는척 하면서 사실 자신의 실속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라는 것이죠. (물론 윤여정 선생님이 그 역할을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어려운 역할이라서 아무리 실력있는 배우라도 이건 힘들다는 이야기죠.)







배우들은 분명 열연을 펼친 것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전도연 씨의 독무대인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전도연 씨만의 독무대라기 보다는 윤여정 선생님과의 공동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윤여정 선생님이 비록 약간 난해한 역할을 맡긴 하셨지만 상당히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죠.

더구나 윤여정 선생님은 '하녀'에 이어 '녀(女)'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화녀'와 '충녀'로 고 김기영 감독님에게 눈도장을 찍혔고 명연기를 펼쳐 당시 최고의 스타로 발돋음하기도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런점에서 임상수 감독이 윤여정 선생님을 재기용 했다는 것은 많은 상징성을 부여받았던 점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신(新)/구(舊)의 세대교체를 조용히 실현시켰다는 거이죠. 이는 마치 '스타트렉' 시리즈의 스팍 역을 맡은 잭커리 퀸토와 레너드 리모이가 같이 동반 등장한 것과 같은 의미죠.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불친철하다 못해 상당히 불쾌한 앤딩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얼마전 소개한 홍상수 감독이 불친절하긴 해도 그래도 유쾌하게 관객과 소통을 하는 감독이라면 임상수 감독은 심각한 이야기에 어이없는 웃음을 집어넣지만 그렇다고 유쾌하게 웃을수만도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괴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의 이런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 '그때 그 사람들'에서 보여준 심각한 상황에서의 여러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처럼 이 영화에서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블랙 코미디 같은 장면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스포일러로 끝까지 공개하기 힘든 마지막 장면에서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사정없이 비튼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관객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충격을 먹지 않을까 싶어지네요. 

쥐 떼가 몰려온 오리지날 작품보다도 더 충격적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