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영화에서 코미디 영화의 지존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두말 할 것 없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외칩니다. 바로 박중훈 씨 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그의 영화들의 필모그레피에서 코미디 영화가 많이 줄어들거나 있더라도 과거의 흥행수표로 일컬어지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중훈 씨의 시대는 지났는가라고 묻게 되실 껍니다. 이는 과거 흥행보증 수표로 불리우던 한석규 씨의 상황과 비슷하죠. 그런점에서 오늘은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요?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직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오늘 소개할 영화는 박중훈 씨와 정유미 씨가 만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입니다.
그 남자는 옆집에 삽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인이 이사를 오게 되지요.
그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에 욕을 하던 그 사람은 그 여인의 이삿집을 나를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지죠.
세진은 지방에서 역무원인 아버지를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방대 나온 것이 흠이긴 하지만 일하나는 정말 똑뿌러지게 잘 하죠.
하지만 첫 직장이 몇 개월만에 부도가 나고 그녀는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할 판입니다.
낡은 지하방으로 온 그녀는 옆집 남자를 만나게 되죠. 그의 이름은 동철...
일반적인 동네 양아치가 아니라 정말로 깡패입니다. 조직에서 그럭저럭 높지도 낮지도 앚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죠. 룸살롱의 물관리나 수금을 하는 것이 주로 그가 하는 일이지만 가오(멋)가 없다면서 폼생폼사로 살아가고 싶어하죠.
그러던 그가 세진을 만나면서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새 직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녀가 실의에 빠질 때마다 나름 위로가 되주기도 하고, 거기에 얼떨결에 남친 노릇도 하러 세진의 고향까지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조직의 일과는 멀어지고 조직에서도 그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형사 출신이던 박반장이라는 사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그가 보살피는 합기도장을 급습해서 혼을 내주고 오기도 했죠. 그러나 그럴 수록 동철의 조직도 위태로워지기만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이 작품을 보고 딱 생각난 영화가 있더군요.
양익준 감독이 주연과 연출을 맡았던 작품 '똥파리' 였습니다.
이 작품과도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평범한 여인과 건달인 남자.
여자는 힘든 위기를 많이 겪고 건달역시 힘든 일이 많지만 사랑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은근히 욕도 많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똥파리'에 비해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조금 더 부드러우며 이야기면에서도 더 다각적으로 깊이있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른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줄곧 등장하는 것은 세진의 모습입니다.
온갖 좋지 않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방대 출신이며 부도난 회사에서 3 개월 일한 것 외에는 경력도 없습니다. 토익성적도 우수하고 나름대로 장학금도 받았지만 이력서를 보낸 회사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노래나 불러보라고 시키고 아니면 지방대라는 이유로 면접 인터뷰에서 바로 다른 사람으로 패스되며서 인터뷰 기회도 놓칩니다. 서럽고 더럽기만 합니다. 요즘 이야기하는 88 만원 세대의 고통인 것이죠.
그녀가 사는 방도 분명 자신의 돈으로 산 것보다는 전세나 월세로 사는 집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밥을 못먹어 근처 분식집에서 때우는 라면이 주식이거나 혹은 영양제로만 식사대용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결국 응급실로 실려가기까지 하니 정말로 서글프고 서글플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감 있는 이야기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동감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저조차도 단지 남자일 뿐이지 세진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세집에서 살고 변변한 직장하나 못잡고 겨우겨우 작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면 세진이나 저의 모습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느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야기면에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영화속에 두 번 정도 등장하는 손담비 씨의 '토요일 밤에'라는 노래죠.
세진이 이사를 하는 와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이 노래가 그녀의 운명에 의외의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그냥 흘러들을만한 노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래만큼이나 흥겹지는 못하고 노래 가사처럼 '찢어진 가슴에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세진의 한탄인지도 모르겠네요.
동철과 박반장의 격투 장면도 인상적인데요, 박중훈 씨는 처음에는 이 장면 촬영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빨강색 페인트가 왔다갔다는 상태에서 칼부림과 더불어 페인트 색과 비슷한 피가 같이 등장할텐데 너무 자극적이지 않냐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의외로 이 장면은 피로 인해 자극적인 장면을 오히려 페인트로 막아내는 의외의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덜 자극적인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중훈 씨의 과거 작품을 보면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웃음을 유발시키는 이야기도 많았고 그것이 박중훈 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짐 케리도, 주성치도 나이를 먹으면서 그 코미디 연기가 단지 무조건 웃기는 것이 아니라 희노애락이 담긴 웃음을 주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의 박중훈 씨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도한 웃음 남발이 아니라 적절히 웃음을 줄 때는 주고 긴장과 드라마 요소가 등장하면 알아서 빠져주는 관록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박중훈 씨의 시대가 끝났다고 섣불리 말하는 것은 힘들다고 이야기드리는 것입니다.
박중훈 씨 만큼이나 88 만원 세대를 대변해주는 모습을 보여준 정유미 씨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정유미 씨도 최강희 씨나 배두나 씨 처럼 아름다움과 더불어 사차원적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그녀가 이 영화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고 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럽고 힘든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려는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희망을 가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성접대로 회사에 들어갈 수도 있고 열심히 되지도 않는 노래를 불러가면서라도 회사 비유를 맞춰서 입사를 할 수도 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죠. 소심하지만 한 편으로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가 그랬듯 역시 다른 결말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박중훈 씨가 등장한 대부분의 조폭이나 건달들이 등장한 영화치고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갑자기 관객들을 놀라게 만든 엔딩장면은 오히려 이 영화가 그래서 비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88 만원 세대는 비극의 세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날도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진과 동철이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렇게 슬퍼할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또다른 희망이나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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