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사각지대 속 방관자 만드는 불친절한 사회...

송씨네 2010. 9. 6. 03:01







※강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분명히 경고드렸습니다. ^^;


요즘 한국영화의 화두는 악마들입니다.

이 중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싸이코패스들도 있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미치지 않은 사람들의 미친 복수라는 것이죠. 악마의 근성을 갖지 않은 사람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영화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아저씨'가 그랬고 '악마를 보았다'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 악마가 되어버린 여인이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제자였던 장철수 감독이 장편으로 첫 데뷔한 작품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그야말로 한 여자가 왜 악마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첫데뷔 작품치고는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세서 몇 개 밖에 없던 상영관이 배로 늘어나는 사상초유의 상황을 겪고 있는 이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입니다.



서울... 북적이고 사람들의 마음들은 매말라 버린지 오래입니다.

한 신용금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해원은 사람과 마주치는 것도 좋아하지 않은 여인입니다.

어느 손님과 실갱이를 벌인 상태에서 갑자기 화장실에 갖히고 그것이 후배의 모략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그 후배의 뺨을 세게 내리치죠. 그러나 알고보니 화장실 청소부의 실수였던 것이죠.

졸지에 나쁜년이 되어버린 해원은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평온한 바닷가 섬마을 무도로 온 해원은 어릴적 단짝친구인 복남을 만납니다.

차도녀인 해원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촌사람인 복남의 차이...

마을은 조용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합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복남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허구원날 복남을 때리고 복남의 남편인 만종의 동생인 철종은 은근히 여성들에 집착합니다. 만종의 시고모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오히려 복남만 무시하고 있고요.

몇 없는 마을의 어르신들도 그녀의 편은 아니었습니다.

복남의 딸 연희와 가출을 결심한 날... 

그러나 만종의 식구들에게 발각되고 아니라 다를까 또 구타를 당합니다.

그러다가 그 구타를 말리던 도중 연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을은 여전히 방관하고 침묵은 더해갑니다. 믿었던 해원마져도 침묵하자 복남의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그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한 여성의 복수극 정도로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영화에서 복수극은 그 다음입니다. 사실 복수라는 이야기보다도 더 중요한 이야기가 여기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바로 방관하고 무시하는 방관자들이 그것입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라는 면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끼'와 닮아 있지만 이 작품은 방관보다는 무시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앞의 작품과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무시는 연희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더 복남을 분노로 가득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마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살인마처럼 전기톱 대신 낫을 들고 다니며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이죠. 그런데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잔인하다고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복남의 살인에 대해 정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악마로 변하였음에도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만든데에는 복남과 연희를 제외한 만종의 가족들로 인해 생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폭력을 정당화 하며 가부장적 사회에 마쵸가 되어버린 만종의 모습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지요.

그리고 거기에 모든 복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만종의 시고모에게서도 그 문제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들도 그녀를 아껴주는 척하지만 결국에는 만종 식구들의 편에 서게 되고 결국 복남의 편은 아무도 없게 되지요.


거기에 믿었던 해원마져 방관하면서 복남의 분노는 더욱 커지게 되는데요.

하지만 해원의 방관은 이미 도시의 삶에서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 여인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결국 목격자 진술을 거부하죠.

잘못 진술했다가 폭행한 건장한 남자들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르니깐요.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방관자가 되었고 결국 무도로 휴식을 취하려던 해원은 도시의 삶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또 한번의 방관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해원은 과거에도 방관을 한 적이 있었죠. 어렸을 적 복남과 해원을 공격한 남자아이들이 있었고 이에 맞써 싸우던 복남을 뒤로하고 어린 해원은 도망을 치게 됩니다.

두려움에 대한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죠.

세 번의 상황이 생겼고 해원은 세 번 모두 거절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복남의 삶이 안타깝긴 하지만 해원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을 관객들은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방관자들에 대한 복수는 결국 복남을 이해시키는 이유가 되었지만 그러나 무섭고 잔인한 것은 사실입니다.

플라스틱 낫이 부러지도록 열심히 열연한 서영희 씨는 전작 '추격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불운한 여성으로 보여지지만 시트콤 '그 분이 오셨다'나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의 코믹한 이미지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다양한 연기경험을 쌓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웃겨 보이지 않고 그녀의 작품들이 진지하게 하가오는 이유도 어디서 연기변신을 해야하는지 그녀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추격자'에서 4885에게 당한 불운의 여자에서 이제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서영희 씨의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서영희 씨와 더불어 또 한 명의 여성이 있지요. 바로 지성원 씨 인데요.

드라마에서 주로 단역으로 등장했던 그녀는 첫 자신의 영화에서 첫 여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물론 그녀는 영화 '하모니'에서 단역으로 등장하기도 했죠.)

첫 주연 영화는 항상 부담도 많이 되고 관객들의 냉정한 연기력 검증도 받아야 하는 수난을 겪어야 하는데 지성원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드라마에서 활약을 돋보였던지라 연기력 만큼은 뛰어난 여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살벌한 장면도 많았음에도 담담하게 연기한 모습들이 인상적입니다.


서영희 씨나 지성원 씨 같이 악바리 근성의 여성들도 있다면 노장이 보여주는 연기 노하우를 잘 보여준 배우도 있지요. 바로 백수련 선생님이죠. 복남의 시고모로 등장한 그녀는 재미있게도 전작 '아저씨'에서도 인신매매단을 돕는 불법도박장 & 만화가게 주인인 이른바 '개미굴 노파' 역을 깔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두 편 모두 악역이지만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같은 농촌드라마에서 푸근한 인상으로 사랑받았던 분이셨다는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온 느낌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활약했던 장철수 감독은 이 작품으로 부천영화제를 비롯한 주요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았고 특히 칸에서 주목한 영화로 사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간에서는 너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서 과연 성공할까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예산으로 만들었음에도 잘짜여진 시나리오 덕분에 오히려 칭찬을 받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적은 상영관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100 여개의 상영관으로 확대되는 것을 검토할 정도로 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조금 다른 예이지만) 다큐맨터리였던 '워낭소리'가 몇 개의 상영관에서 전국상영관으로 확대되고 박스오피스에 결국은 1 위까지 올라간 경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라고 할 지라도 잘짜여진 시나리오라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이죠. 그런점에서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장철수 감독의 경우는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처음에 악마가 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방관하는 자가 많아질 수록 분노에 휩싸인 천사가 악마로 돌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용기를 갖는다는 것, 방관자에서 감시자가 되는 것...  어쩌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방관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