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계몽영화' 격동의 수레바퀴, 제대로 깔려버린 3 대 이야기...

송씨네 2010. 9. 1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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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예정작입니다.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예산 영화 혹은 독립영화가 듣는 소리가 있죠. 

재미 없다, 싼티가 난다, 너무 가르킬려고만 한다.

그런점에서 이들 영화들은 상당히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고 제목만으로 영화 내용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죠. 

지금 소개할 영화는 어떻게 보면 제목만으로는 고리타분해 재미없을 것처럼 보이고 거기에 저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핸디캡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 이 작품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입니다.





한 남자가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이 남자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할 판입니다.

가족들이 모입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학송... 정 씨 집안의 2대 아들입니다. 

왕년에 잘나가는 나일론 주식회사에서 근무했고 교사인 유정을 만나 결혼에 골인한 커플입니다. 그리고 로맨틱하게 분홍 보자기에 라면과 티파니 반지가 놓여진 프로포즈도 했지요.

"라면 위에 티파니(반지)가 있네요!"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하고 행복했었던 같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들어선 학송은 술로 날을 보내는 날이 많아집니다. 학송의 딸이자 3 대에 속하는 태선은 아버지의 희생량이 되어버립니다.

학송은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앞둔 그는 이상하게도 아버지를 두려워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1902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만든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길만(1 대)...

창시개명까지 하고 일본 앞잡이 짓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돈을 착취하고 그리고 독립군 친구와의 우정에서 갈등을 해버리죠.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3 대는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지만 학송의 죽음으로 가족들은 각자 가족의 가족사를 생각하게 되지요. 이제 결혼하고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태선은 기러기 아빠로 불리는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지도 오래이고 남편 성호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입니다.

그 사이 두 사람의 어린 아들인 혜준은 아무것도 모르고 철모르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그렇게 정 씨 집안의 사람들은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위] 단편 '전쟁영화' (2005) / [아래] 장편 '계몽영화'



영화를 유심히 보신 분이라면, 그리고 단편영화 좀 보신 분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실껍니다. '이상하다, 이거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맞습니다. 데자뷰는 아니고요.

이 작품은 2005 년에 만들어진 단편 '전쟁영화'의 모티브로 출발한 영화입니다.

3 대 중의 2 대 식구로 등장하는 학송과 유정의 연애시절 이야기로 등장한 부분이죠.

더구나 단편버전에서 담아낸 '전쟁영화'가 장편으로 넘어가면서 일부 대사가 약간 변하거나 등장인물이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사나이는 구두닦이 사내로 바뀌어 등장하죠. 그러나 유정에게 환심을 사기위한 학송의 구애는 원작 '전쟁영화'와 장편 '계몽영화' 모두 동일하죠.

이렇게 촌스럽게 구애하고 결혼한 커플이 과연 이 앞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고 그 후 두 커플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장편 '계몽영화'의 임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상 이 영화는 2 대 인물인 학송이 삶을 이야기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앞전의 학송의 1 대, 그러니깐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소개되었고 3 대인 딸 태선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이 작품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호락호락 이들의 삶을 평범한 삶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길만은 일제 시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더구나 친구의 우정을 배신하는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집안은 부유해졌지만 전쟁의 후유증으로 학송은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소리만 들어도 겁을 냅니다. 부유해진 집안은 땅투기와 다른 일로 기울게 되고 학송이 술로 날을 지세우는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로맨틱한 삶에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문리버를 좋아했고, 젊은 시절 카라얀의 음악에 반해버린 그이지만 나이들면서 그것은 광기로 변해버리죠. 윤택한 삶이 사실상 끝나버리고 이들의 고뇌는 어쩌면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버린 3 대의 이야기입니다.

1 대는 일제 시대의 앞잡이의 삶에, 2 대는 기울어진 삶과 사업실패가, 3  대로 넘어어와서는 최루탄과 아버지 사업실패에 대한 무거운 짐과 화풀이 대상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4 대는 기러기 아빠 덕분에 윤택하게 살고 있는 아주 어린 아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것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그에 등장한 소품들이 이 영화에서 많은 이야기꺼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이 영화는 단순히 보는 재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남의 가족들의 삶을 대신 들여다보면서 우리들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되돌아보는 작품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이 작품의 아기자기한 재미는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소품입니다.

일반 시사가 있던 날, 관객들을 상대로 분홍 보자기를 나눠준 행사가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이 분홍 보자기가 무엇을 의미할지는 대충 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학송이 유정에게 프로포즈 하기위해 선물한 라면과 바로 그 문제의 티파니 반지였죠.

1960 년대 이후는 어머니, 아버지 세대라면 잘 아시겠지만 라면이 귀한 음식으로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지금 원자재값 인상으로 지금 라면조차도 졸지에 바싼음식이 되어버렸죠.

관객에게는 이 티파니 반지 대신 옛날 포장지가 그려진 라면과 이 작품의 원작인 '전쟁영화' DVD가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2005 년 원작을 비교해보시라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기념품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 분홍 보자기는 최루탄으로 몸살을 앓던 신군부시절에 다시한번 등장합니다. 이제는 거기에는 싸구려 라면과 값비싼 반지는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다만 잘보이기 위해 로비용으로 바치는 돈다발이 그 분홍 보자기를 대신한 것이죠.

예상했던 로비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학송은 술에 취해 들어오고 어린 태선은 생리 때문에 미쳐 녹화하지 않는 카라안 내한 연주회 실황 때문에 아버지인 학송에게 구타를 당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다릅니다. 정작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했을 때 그 때 그 사건을 아버지가 사과를 해주길 원했던 대목에서는 태선도 아버지 학송만큼이나 우울한 한 시대의 피해자가 아니었나 싶어집니다.


앞의 분홍 보자기가 사랑을 이루어준 매개체였다면 후에 등장한 분홍 보자기는 살기위한 비겁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고생한 사람은 같은 작품을 두 번 연기했던 학송, 유정 커플의 정승길, 김지인 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5 년전의 그 기억을 떠올려서 감정 실어서 다시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하죠.

모든 것이 변하였고 단편에서 장편으로 바뀐 상황에서 그들의 연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더구나 5 년전 인터뷰에서 김지인 씨의 경우 유정의 옛날 사람 말투가 너무 입에 붙지 않아 NG를 냈었다는 대목도 눈에 띄더군요.

역사적 고증이나 대사, 소품까지 매우 큰 신경을 쓴 연출진의 고생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수래바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수래바퀴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말로 웃기는 대목이 하나 있더군요. 영화 대사에...

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대목 말입니다.

이거 2005년에 단편으로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대사들 중 하나이고요.

하지만 장관 따님께서 업적을 마련하신 사건처럼 이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똥돼지라고 불리우는 고위층을 부러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거리에 주저앉고 심지어는 타락해버린 사람들...

1931 년 일제강점기, 1965 년 한국전쟁, 1983 년 신군부시대... 그리고 2010년...

도대체 바뀐게 뭐가 있는거죠? 오히려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계몽영화'의 박동훈 감독




영화에 등장한 분홍 보자기를 관객에게 나눠줄 기념품으로 그대로 재연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