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옥희의 영화', 홍상수의 위풍당당 시네마!

송씨네 2010. 9. 26. 03:20






41708



'하하하'로 두 남자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홍상수 감독...

이 작품이 잊허지기도 전에 홍상수 감독은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몇 개월 만에 뚝딱... 그러다보면 작품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죠.

대충 만들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기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위풍당당'(?)하게 새 작품을 들고 나왔으니 그 이름하여 '옥희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위풍당당'이란 말을 붙었냐고요?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보죠!




#1. 30 대의 진구는 독립영화 감독이자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합니다.

살림살이는 그저 그렇고 마누라의 잔소리가 많다는 것이 좀 흠이죠..

마누라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섰는데 일진이 좋지 않습니다.

자신의 제자로 보이는 여학생에게는 작품에 대한 지적질인데 제자 또한 진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서는데 이번에는 한 여인이 무작정 사진기를 들고 진구를 찍어대고 있습니다. 진구는 화를 내지만 역으로 그녀를 찍는 조건으로 더불어 자신의 사진도 같이 지워버리죠.

한편 자신의 스승이었던 송 교수의 비리의혹을 동료 교수에게 들은 진구는 회식장에서 대놓고 송 교수에게 비리사실 여부를 되묻습니다. 당연히 송 교수, 기분 좋을리 없죠. 술에 만땅 취한 진구는 극장에서의 감독과의 대화에서 무례하게 질문하는 여인과 실갱이를 벌입니다.


#2. 진구의 몇 년 전 이야기... 

그는 대학생이고 송교수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좋은 작품이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면서 진구는 겉으로는 아닌척 하면서 속으로 좋기만 합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낙방을 해버리고 말죠.

그러는 사이 진구는 같은 학교 여학생인 옥희에게 계속 프로포즈를 하지만 옥희는 그런 진구의 프로포즈를 거절합니다. 아니, 튕기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키스, 키스, 키스... 그리고 그들은 섹스로 이어지지만 옥희 뒤로 다가오는 송교수의 관계는 애매하기만 합니다.


#3. 학과장 송 교수의 과거 이야기... 

백년만의 폭설로 겨울 계절학기에 학생들이 오지 않습니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가 없죠. 시간강사라서 때려치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로 맘먹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옥희와 진구...

그리고 솔직하고도 이상한 질문들로 주거니 받거니를 반복합니다.

술에 취한 송 교수는 낙지를 먹고 체하고 결국에는 눈쌓인 바닥에 낙지를 토해냅니다.


#4. 옥희가 진구와 송 교수를 만난 이야기... 

옥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듭니다. 눈 쌓인 아차산 입구에서 시작하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같은 듯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두 옥희가 있었고요. 젊은 남자 이야기, 나이든 남자 이야기는 그렇게 완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에 소개된 줄거리는 각자 소 재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죠.

삽십대의 진구의 이야기는 '주문을 외울 날'이라는 제목으로, 과거 이십대의 진구와 옥희의 사랑 이야기에는 '키스 왕'이라는 제목이, 오십을 바라보는 송교수의 이야기는 '폭설 후'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으며 마지막 네 번째 진구와 송 교수 사이에 끼여 있는 옥희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동명 제목이기도 한 '옥희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4 개의 제목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늘 그렇듯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 수정'때도 그랬고 '하하하'도 그랬었죠. 

'옥희의 영화'는 세 사람의 다른 관점에서 보는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바라본 시기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기존의 앞의 영화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여성들은 기가 살고 약간의 다혈질도 보이며, 반대로 남성들은 어딘가 모르게 기가 죽어 있는 모습입니다. 홍상수 감독들 속에 여성들은 대부분이 여전사는 아니더라도 강한 모습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생각한다면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셨듯이 이 영화는 옴니버스임에도 네 가지 이야기가 이어질 듯, 말 듯 모양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문을 외울 날'에 등장한 시크한 여성 관객을 보고 혹시나 '키스 왕'에서 과거 진구의 이야기가 등장할테니 그 여성이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보지만 그 기대 역시 무참히 깨버리며 30 대에서 20 대로 내려가는 시점에서 아주 오래전 진구의 모습을 생각했겠지만 영화제가 열린 년도를 나타내는 포스터가 2009 년임을 생각하면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네 가지 이야기의 과거에 대한 편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이에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인 '옥희의 영화'에서  진구와 송 교수사이에 얼떨결에 양다리를 걸친 옥희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소개되는 것이죠.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이 네 가지 이야기를 모두 별도의 다른 이야기로 명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앞의 세 가지 이야기에서 진구와, 옥희, 송 교수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네 번째 '옥희의 영화'에서는 젊은 남자와 나이든 남자로 규정짓는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는 것이죠.


다름에 대한 비교 분석도 마지막 이야기인 '옥희의 영화'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 납니다. 아차산을 오르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젊어서 공감할 수 있는 모습과 나이들어서 공감할 수 있는 점을 보여주면서 그것에 대한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아차산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12월 31일과 그리고 1 년이 지난 1월 1일에 옥희는 진구(젊은 남자)와 송 교수(나이든 남자)를 만났다는 것인데 사실상 영화에서도 보여지듯 1월 1일에 만나자는 나이든 남자와의 약속 때문에라도 아차산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아마도 '설마 나타나겠어?'라는 심정으로 젊은 남자와 다시 아차산을 찾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죠.

결국 나이든 남자가 아차산에 나타나지만 예상외로 두 사람이 정면 충돌하고 치고 박고 싸우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 영화는 더 스케일이 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홍상수 감독 스타일로는 그런 장황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순서 상으로도 진구가 결혼하고 나서의 이야기를 담은 '주문을 외울 날'이 앞에 가야 하지만 왜 그들이 남남이 되고 돈에 급급한 사람들이 되었는가를 나타내기 위한 전초전으로 오히려 최근의 이야기를 먼저 앞에 붙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박하사탕'처럼 역순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500일의 썸머처럼' 불규칙적으로 움직인것도 아니니깐요. 그러니깐 맨 뒤의 애피소드인 '옥희의 영화'는 왜 그들이 이렇게 변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애피소드가 아닐까 싶어집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죠.

조잡하기 짝이 없는 오프닝 자막들이라는 겁니다.

옛날 흑백시절 드라마나 영화에서 봄직한 촌스러운 자막과 화면으로 오프닝을 알린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4 편의 옴니버스로 나뉜 이 작품에서는 이런 영사사고스러운 장면들이 네 번이나 연출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당당하게 이들 주인공들의 상황을 이야기하듯 '위풍당당 행진곡'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십대의 진구는 옥희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이. 송 교수는 이 거지같은(?) 시간강사를 이제 그만할 수 있다는 기쁨에 '위풍당당 행진곡'이 나온 것이 아닐까 싶고요, 옥희의 경우 자신들에게 데쉬한 이 찌찔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어붙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쾌감 때문에 '위풍당당 행진곡'이 흘러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 누구에게나 '위풍당당 행진곡'처럼 자신만의 유쾌한 혹은 슬픈 이야기가 매인테마(BGM)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것이 여기서는 '위풍당당 행진곡'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따뜻함과 까칠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선균 씨의 모습과 인디와 상업 모두 사랑받고 있는 정유미 씨,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정치활동과 영화활동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문성근 씨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모습이 이 영화를 유쾌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나저러나 홍상수 감독님... 정말 궁금하네요.

한 작품과 또 한 작품의 그 사이의 텀이 짧을 경우 작품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데 '하하하'도 그렇고 '옥희의 영화'까지 이렇게 거침없이 쏟아내시는 원동력이 궁금해지네요.

트위터의 어떤 유저의 이야기처럼 홍 감독님의 가방이 궁금해지네요.

영화 속 진구처럼 얼큰하게 취할 수 있는 소주 한 병과 안주꺼리를 준비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여유있게 '레디 고'를 외치고 계신지도... 


PS. 이미 이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야한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청소년이 자신의 영화를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군요. 그런 것으로 봐서 홍 감독의 자체적인 검열의 결과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