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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지브리의 여전한 테마, 소통과 교감!

송씨네 2010. 9.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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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많은 고민을 합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고 그 과정 속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합니다.

매우 작은 키의 10Cm 소녀 아리에티에도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브리 왕국의 대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

많은 후배 양성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그가 선택한 사람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입니다.

과연 아리에티 만큼이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지브리에 얼마나 구원투수 역할을 할까요?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 입니다.





한 소년이 마을 깊숙한 숲속 같은 곳으로 이사를 오고 있습니다.

이사라기 보다는 요양이죠. 이 소년의 이름은 쇼우입니다.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가 어렸울 적 살던 집에 쇼우의 친할머니와 이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삶에 희망은 없는지도 오래이죠.

그러던 그는 한 생명체를 보았습니다. 소인... 사람들은 일단 그렇게 불렀죠.

그런데 쇼우가 본 것은 소인이 맞습니다. 소인 가족들이죠.

쇼우가 본 소인 소녀의 이름은 아리에티... 

14 살이며 아버지 포드와 어머니 호밀리, 이렇게 세 식구가 오붓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리에티는 이제 아버지처럼 혼자 나가서 인간들의 물건을 빌려와야 합니다.

티슈 한 장, 각설탕 한 개...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쉽지가 않습니다.

동네 야옹이는 자꾸만 아리에티를 공격하고 까마귀에 온갖 녀석들은 아리에티 가족의 적이죠.

무엇보다 그들에게 큰 적은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의 손에 붙잡히면 이사를 가야 합니다. 붙잡히고 싶지 않으면 이사를 가야하는 그들의 숙명...

쇼우와 아리에티는 어느 덧 친한 관계가 되었지만 인간과 소인은 서로 친해진다는 것은 불가침의 관계나 다름없습니다.

과연 아리에티 가족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킬 수 있을까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똥고집이라고 해야할까요? 

헐리웃의 애니메이션계도 그렇고 심지어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3D를 생각하는 시점에 지브리는 여전히 2D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작품의 상영관 목록에는 이제는 흔해 빠진 3D 상영이 없고, 그렇다고 3D 제작을 했다는 문구조차 없습니다. 여전히 2D라고 할 수 있는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지브리 스튜디오는 장인정신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브리도 큰 문제점에 부딫쳤다는 것이죠.

바로 미야자키 히야오를 대신할 사람이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하야오를 대신할 감독들의 작품들이 시험삼아(?) 계속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크게 주목할 점이죠. 그러나 많은 작품들이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미래가 암울한 것도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히야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역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보였으니 말이죠.

그런점에서 겨우겨우 합격점을 얻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 작품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영국의 작가인 메리 노튼의 '마루 밑 바로우어즈'을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사실 이 작품에서 궁금한 것이 가져왔으면 가져왔지 왜 소인들은 '빌려온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가라는 의문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티슈 한 장, 각설탕 한 개는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져오거나 훔쳐온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그들이 빌려온 아주 작은 단위들은 이들 소인들이 몇 일을 먹고도 남을 만큼 풍성한 양이었던 것이죠.




'마루 밑 아리에티'는 소인의 입장에서 본 인간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관점은 아리에티와 쇼우 두 명이지만 아리에티의 입장에서 촘촘히 박힌 못들은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핀은 멋진 무기가 되어 돌아옵니다. 시계 추가 움직이는 소리는 거의 천둥번개 소리나 다름없는 소음이고요.

이것은 아리에티가 사는 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물건들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지요. 

쇼우의 어머니가 소인들을 위해 준비했던 인형의 집 같은 경우도 아리에티 식구들이 꿈꾸던 녀석들임에 분명하지만 인간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지만 이것을 멀리하게 된 것이죠.






지브리가 자주 이야기하는 것들이 있죠. 바로 서로간의 교감이며 또 하나는 환경보호입니다. 문제는 이 캠패인스러운 이야기를 절대 강요하듯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이웃의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위의 포뇨'...

재미있게도 이 모든 작품에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요정 혹은 다른 생명체와의 교감을 이야기합니다.

환경파괴는 곧 아무것도 살아갈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데 '마루 밑 아리에티'에도 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죠. 너희들은 곧 멸망할꺼라고 대놓고 말하는 쇼우와 아직 우리 종족은 많이 살아있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대립하는 아리에티의 이야기에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즉, 아리에티 같은 소수의 종족들(문명의 혜택을 얻지 못한 민족들도 포함되겠죠.) 문명의 혜택을 얻게 되지만 그것은 오히려 종족이나 민족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어버리고 자연도 자연스럽게 파괴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미 인디언들이나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것들을 보게 되었고요.

어떻게 보면 아리에티 종족의 멸망은 곧 자연의 파괴를 의마하는 점에서 그렇게 유쾌하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OST 면에서도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아예 작정하고 한국어 버전의 주제가를 부른 것을 생각한다면 지브리는 글로벌화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점에서 이번에는 프랑스의 하프 뮤지션이자 가수인 세실 코벨을 기용했다는 점이 이색적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주제가를 세실 코벨이 살고 있는 불어로 부른게 아니라 일어로 부르게 만든 것입니다. 어색할 것 같죠? 그런데 세실 코벨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 작품의 OST들을 모두 일어로 소화합니다. 특히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아리에티의 노래'는 그 솜씨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작품 2D... 

그야말로 날 것과 같은 에니매이션 형태입니다.

3D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 정통성을 유지하는 지브리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세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면 지브리도 먼 훗날 다른 곳과 똑같은 길을 걷겠죠. 하지만 적어도 미야자키 히야오가 살아있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구나 분명 지브리는 소인 종족처럼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데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하는 것이 그것이죠. 이는 앞에 말한 3D 시장의 침범과 마찬가지로 지브리가 가지고 있는 숙제인 것이죠. 정말로 소인 종족처럼 전통을 지키느냐, 아니면 멸망하여 다른이들과 똑같이 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런면에서 이 작품은 아리에티의 고민이 아닌 지브리의 고민이 숨겨져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되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