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은 참 재미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다른 나라에서 흥행을 거둔 영화를 어느 나라보다도 복제를 많이 하는 곳이니깐요.
물론 인도 중국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끊임없이 패러디하고 복제하거나 표절까지 하기 때문이죠.
스웨덴에서 물 건너온 소설이자 영화인 '렛미인'은 그런 점에서 과연 원작을 잘 살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일껍니다. 사실 그것도 그럴것이 스웨덴 영화를 국내에서 만나보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이 이국적인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보기도 쉽지만은 않았을테니깐요.
스웨덴 버전의 오리지널 '렛미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긴 했지만 그리 많은 개봉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개봉당시에 감각적인 영상과 이야기들은 관객을 사로잡기 충분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화들이 헐리웃으로 넘어가면 영상미나 작품성보다는 오락과 화려한 영상에 치중하는 경우가 있기에 많은 이들이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물을 껍니다. 스웨덴 버전의 '렛미인'은 헐리웃으로 넘어가면서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것입니다. 왜곡되었는가 혹은 원작을 살렸는가의 의문말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작의 느낌도 살렸지만 미국식 정서를 살려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이 양반아, 헛소리 그만하고 영화이야기 좀 하지...'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랫미인' 입니다.
로럴드 레이건이 미국을 다스리던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 그렇다고 아닌 최근은 전혀 아닌 1983년의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의 어느 마을.
얼굴이 흉직한 상태의 한 남자가 병원에 실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남자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는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됩니다.
그러니깐 이 사건이 일어나기 2 주전입니다.
한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이들이 눈내린 겨울 이사를 오게 됩니다.
이들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꼬마... 그의 이름은 오웬입니다.
학교에서 소문난 왕따이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외모입니다.
그러니 동네 사내들은 이 이이를 공격하느리라 바쁘죠.
밤이면 나타나는 한 소녀... 이 소녀의 이름은 애비입니다.
정글짐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오웬에게 다가온 이 소녀는 늘 창백한 얼굴에 맨발입니다. 그러다가도 어느날은 그 핏빛 얼굴이 아닌 뽀얀 얼굴로 나타날때도 있고요.
그런데 이 소녀와 아버지로 보이는 부녀가 나타나면서 마을은 점점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되기 시작합니다. 변사체로 사람들이 발견되고 심지어는 냉동상태로 발견됩니다.
빛을 받은 한 여인은 자신의 몸이 미친듯이 불타오르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 사건 모두 애비와 관련된 사건임을 직감하는 오웬...
하지만 그런 애비가 오웬은 싫지만은 않습니다.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애비와 그것을 이해 못하는 오웬...
과연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어딘가 모르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작품의 원작은 2008년에 만들어진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이며 그 보다 먼저 소설로는 욘 A. 린드크비스트라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의 작가의 작품이 원작이라는 겁니다.
영화의 주된 상황들과 이야기 구조를 볼 때도 스웨덴 버전과 헐리웃 버전은 상당히 유사합니다. 아니, 어떤 분들은 복제품이 아닐까라는 의심도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데에는 그 이유가 있지요.
'클로버필드'를 만든 매트 리브스 감독은 원작의 변형 대신에 원작과 그대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원작 소설을 알고 있고 스웨덴의 오리지널 버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외이지요.
하지만 분명 스웨덴 버전과 헐리웃 버전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스위스 원작은 1981년이라는 점이죠. 그에 비해 헐리웃은 레이건 대통령이 활발하게 정치를 하던 1983년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대적인 상황이 헐리웃 버전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점은 그 것 뿐만이 아닙니다. 스웨덴 버전의 엘리(이멜리)와 오스카의 관계와 달리 헐리웃 버전에서는 오웬과 애비의 관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 두 영화의 확실한 차이는 엘리와 애비에게 각각 등장한 정체 불명의 사나이에 대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내주고 운명을 택한 정체불명의 사내는 스웨덴 버전보다 헐리웃 버전이 더 확실하게 이 남자의 정체를 관객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도 아닌 그렇다고 먼 가족관계도 아닌 이 사내는 헐리웃 버전에서는 빛바랜 스티커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내의 운명과 오웬의 운명은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떠면 앤딩 장면에서 어두운 상자속에 엘리(스웨덴 버전)와 애비(헐리웃 버전)를 가둬둔 상태로 여행을 하는 장면은 같은 해피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앞의 장면에서 남자의 정체를 더 확연히 드러나게 만든 헐리웃 버전이 사실상 더 세드 앤딩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정글짐과 큐브, 모스부호, 왕따 등의 소재들은 두 버전 모두 동일하게 흘러갑니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수영장과 객실에서 벌어지는 상황까지도 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것은 헐리웃 버전은 스웨덴 버전과 좀 더 다른 기교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버전이 CG 없이 담백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면 영화의 천국 헐리웃답게 헐리웃 버전에서는 애비가 뱀파이어로 변하는 장면을 특수분장과 CG로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교없는 스웨덴 버전과 기교가 있지만 분명 오락적인 면에 충실한 헐리웃 버전은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깊이있게 보신 분이 아니라면 이 두 영화는 모두 똑같은 영화이고 헐리웃 버전은 스웨덴 버전의 복제품이라는 우려를 충분히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복제품의 우려를 받을 수 있음에도 이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는 애비 역을 맡은 크로 모레츠와 오웬 역을 맡은 코디 스미스 맥피의 역할이 컸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특히나 크로 모레츠는 소름끼치도록 뱀파이어 역할을 해냈는데 '킥 애스'의 힛 걸에서 점차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헐리웃의 기대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헐리웃 판 '랫미인'은 그야말로 헐리웃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밉지 않은 것은 헐리웃 스타일의 특징을 살리고 원작을 심하게 훼손시키지 않은데 있습니다. 원작이나 스웨덴 버전을 보시지 않은 분들에게는 헐리웃 버전이 멋지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고 저처럼 스웨덴 버전을 보신 분이라면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앞에도 결말을 이야기드렸지만 같은 결말임에도 헐리웃 버전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위험한걸 알면서도 하고 있는 바보같은 사랑일껍니다.
바보같은 사랑, 그럼에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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