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베리드' 저예산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최고의 영화를!

송씨네 2010. 11. 24. 22:48




※개봉 예정작입니다.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인디영화를 소개함에 있어서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디영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죠. 

산티나고 어려운 메시지가 나온다고 거부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저렴한 제작비임에도 없어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영화도 있고 재미난 영화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일단 세트면에서는 저렴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관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 어둠에서 시작해서 어둠으로 끝나는 이야기...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영화이겠구나 싶으실껍니다.

편견을 버리고 이 영화에 주목해 주십시오. 영화 '베리드' 입니다. 





어둠이 깔린 어느 곳... 그 곳은 땅 위가 아닙니다.

바로 땅 아래라는 것이죠. 땅 아래 그것도 땅 깊숙히 사람이 죽어서 갇히게 되는 관 속에 한 남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시종일관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그의 이름은 폴 콘노이... 그는 민간업체인 CRT 소속의 운전기사이고 이라크 어느 한 복판의 땅밑에 그는 그야말로 매장당해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아랍언어로 되어 있는 휴대폰 하나와 낡은 손전등, 형광봉, 그리고 라이터가 전부입니다. 

전화를 겁니다. 국방부로, 911로,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치매에 걸린 그의 노모, 진상 친구... 그 외에도 많은 곳에 전화를 걸고 있지요.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펜이 있고 그나마 관 위에 글씨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죠.

그러던 와중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폴을 생매장 시킨 테러범이죠.

저녁 9시까지 100만 달러를 송금하지 않으면 그냥 그 관에서 죽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사람들은 웃기기만 합니다. 퇴사를 강요하는 회사와 무조건 미안하다고 외치는 인질 전담반장에 사무적인 정부 직원들까지 그를 분노케 만듭니다.

모래와 어둠과, 공기와 그리고 뱀과의 사투에서 과연 그는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영화 '베리드'의 시사회가 열린 23일은 북한군이 연평도를 공격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죠.

관객과의 토크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시사회는 이 영화를 공동제공에 참여한 '워낭소리'를 만든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대표의 이야기로 시사회와 토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국내외적으로 극적으로 사람들이 구출된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세상에는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스촨성이나 인도네시아, 아이티에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상자가 났을 때도 기적은 있었으며 삼풍백과점 붕괴사건이나 최근 칠레 광부들의 매몰사건처럼 기적적인 뉴스는 사람들을 안도의 한숨과 환의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황당한 상황을 겪은 남자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요?

구조되기를 기다리거나 미쳐버리거나 할 것이 분명할 일이죠. 

1 시간 30 분간의 긴 러닝타임은 의외로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듭니다. 더구나 카메라는 폴 이라는 남자만 미친듯이 비춰주고 있다는 것이 더 희안한 일이죠.


영화의 러닝타임과 그의 구조 시간 90 분은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일치하는 것이 있지요. 영화의 시작과 끝이 어둠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초반 영화가 시작되면 약 1 분 가량은 암흑으로 비춰집니다. 마치 몇 년전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등장하던 암흑 장면을 다시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영사사고가 아닌가 싶은데 숨에 헐떡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이건 영사사고도 아니라는 얘기죠.

1 시간 30 분의 사투를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는 약간의 소지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관객과 폴과 같이 이 어두운 관을 빠져나가기 위한 사투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지요.

휴대폰은 특히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지품입니다. 액정의 밧데리는 가득하다는 점을 본다면 이 영화에서 얼마나 휴대폰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할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여러 곳에 전화를 걸지만 모두 실패하거나 늦장 대응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분명 사람이 갇힌 것은 중요한 건데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영화의 후반에 들어서면 계속 돈을 요구하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인질범과 미안하다고 연발하는 인질 전담반 반장의 목소리를 듣게 되죠. 화가 날 노릇입니다. 관객도 폴도 말이지요.

그러나 더욱 더 폴을 화나게 하는 것은 뒷짐지고 사건을 무마하는 것도 모자라 시덥지 않은 스켄들로 계약직 근무조건을 파기시키는 회사의 횡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 남의 일같지가 않네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도 생각나고 쌍용차 노조도 생각나며 얼마전 겨우 파업을 풀은 기룡전자 노동자들도 생각나네요. 비정규직이라고 하찮은 관리직이라고 무시하는 대기업의 횡포는 화가나다 못해 서글프다는 겁니다.







영화는 끝을 향해 가면 갈 수록 더욱 더 절박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동료가 처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봐야 하며 자신의 가족들도 인질로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다행히 인질범의 몸값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돈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도, 가족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기에 그는 힘든 결정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뱀도 다가오고 모레는 점점 폴의 몸을 덮여옵니다.

시네마 토크를 맡은 고영재 대표와 영화 '똥파리'로 사랑을 받은 배우 이환 씨는 토크를 진행하면서 비정한 이 현실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관객들 역시 이 비참한 현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영화의 거의 단독주연을 맡은 배우는 라이언 레이놀즈입니다.

저예산 영화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대배우죠. 하지만 독특한 시나리오에 반해버린 라이언 레이놀즈는 이 작품 출연에 적극 응하는 대신 작품의 앤딩을 수정하지 말것을 제작자 측에 요구했다고 합니다.(결말은 상당히 허무하면서 충격적이므로 결말에 대한 맨트는 삼가하겠습니다.) 

감독인 로드리고 코르테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감독은 아니지만 헐리웃에서도 퇴짜맞은 이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 잘만나서 인생역전을 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몇 몇 해외에 높은 가격에 판권이 팔리는 것은 물론이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은 차기작을 검토중일 정도로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올해 선덴스 영화제가 주목했던 작품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죠.

촬영방식도 독특한데요. 세트는 방금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관이 등장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만 이 관을 다양한 각도로 찍기 위해 여러가지 형태의 관 7개가 특수 제작되어 촬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작은 배급사와 수입사들이 참여했지만 배급파워는 일반 상업영화 못지 않습니다.

제공은 제가 사랑하는(!) 극장이자 배급사인 at9이, 공동제공은 고영재 프로듀서의 스튜디오 느림보와 인디영화 배급 연합인 인디플러그가 맡았습니다.

상영관 수를 제가 강조한 이유는 인디, 저예산영화 답지 않은 배급망 때문입니다. 

현재 이 영화는 100 여개의 상영관을 잡은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워낭소리', '똥파리','우리학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날아라 펭귄' 등의 인디영화계의 최전선에서 뛰었던 스튜디오 느림보의 전력을 잘 아는지라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죠.

'워낭소리'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작게 시작해서 상영관을 늘렸다는 이야기는 제가 여러번 했던 기억도 나고요.




고영재 대표는 말합니다.

이 영화는 매우 서글픈 영화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이 있기에 희망을 얻는다고 이야기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이, 정부가, 그리고 기업이 한 사람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인데 이건 국민이 될 수도 있고 소시민으로 대입해도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죠.

땅 속에 갇힌 남자는 어떻게 보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점에서 '베리드'는 스릴러와 드라마로 위장한 블랙코미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