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아름답지만 지금 다시 끄집어내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것이 정말 추억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학창시절 동창이나 군시절 선임과 후임들을 만나면서 옛 이야기의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가 좋을 때도, 아니면 그 반대로 그 시절은 돌이키고 싶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어느 시절마다 불량써클이라는 것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있지만 이 불량써클은 하나의 조직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런점에서 강형철 감독의 신작 '써니'는 우정어린 일종의 애교스러운 불량써클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싶어집니다.
자, 우리는 이제 1980년대 시절로 돌아갑니다.
중년의 주부 나미는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로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친정어머니 병문안 갔다가 우연하게도 고등학교 시절 동창인 춘화를 만나게 되지요.
하지만 춘화는 앞으로 살게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춘화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원을 그녀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시절 맴버 '써니'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말이지요.
고교 시절... 벌교에서 서울로 얼떨결에 전학온 나미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사람은 춘화였습니다.
한 덩치 했으며 지금은 보험왕을 꿈꾸는 장미, 욕쟁이 소녀에서 고상한 여인이 된 진희, 문학소녀를 꿈꾸었으나 시어머니 눈치밥 먹고 있는 금옥도 보이고요.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미장원 집 딸 복희는 너무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그리고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지도 바로 '써니'의 맴버이지요.
종환 오빠가 지어준 이름 '써니'는 같은 구역 또 다른 불량써클인 '소녀시대'와 혈투를 벌이는 등 나름대로 고생들도 했지요. 몇 십 년이 지난 이들은 추억을 곱씹으며 다시 모였습니다.
그런데... 수지, 이 지지배는 도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거지?
사실 여고의 불량써클의 대표적인 예라면 '7공주파'가 대부분이죠. 왜 일곱이라는 숫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 '써니'의 등장인물도 공교롭게도 일곱이라는 숫자입니다. '나는 가수다'에 '남자의 자격', '무한도전'도 일곱이니 과거 짝을 맞추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지라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써니'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의 불량써클의 이야기를 단지 여성으로 옮겨온 이야기로 보입니다. '바람',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폭력써클', '품행제로'의 공통점은 바로 과거로의 여행이자 이 폭력써클에 몸담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써니'는 어디에 가까울까요?
'품행제로'의 아기자기한 학창시절의 추억과 '친구'에서의 의리를 결합한 영화라고 보여집니다. 그러고 보면 불량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없는게 참 이상하죠?
'써니'는 의외로 유쾌한 영화입니다.
세상을 등질지도 모르는 친구 때문에 나미를 비롯한 친구들이 나머지 친구를 찾는다는 이야기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로의 추억입니다. 음악과 소품이 상당히 뒷받침을 하는데 그동안 나온 영화들 중에서는 과거 고증을 잘한 영화로 생각이 되어집니다. 과거 롯데리아 간판에 꿀꽈베기 봉지, 써니텐 병 그리고 뜨는 애들만 나온다는 당대 최고의 잡지인 하이틴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이 작품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난 묘한 기분은 영화를 보고나면 사람을 흐뭇하게 만듭니다.
뭐니뭐니 해도 시사회에서 영화를 미리 보신 분이라면 인상적인 장면으로 느끼신 것이 데모에 얼떨껼에 참가해 '써니'와 라이벌 관계인 '소녀시대'(아이돌 그릅 이름이 아니라, 영화속 등장하는 또 다른 불량써클입니다.)와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JOY의 'Touch by touch'를 익살스럽게 등장시킨 부분입니다.
물론 이 장면은 많은 논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각한 상황에서 저런 장면을 집어넣었으니 말이죠. 사실 역사적 사실을 블랙 코미디처럼 엮은 경우는 이제는 너무 흔하게 보는 모습이죠. 같은 80년대를 이야기한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에서 데모하는 군중들 속에서 선동렬을 구해야하는 상황도 아이러니 했고요.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는 설사병이 간첩을 만드는 요소가 되어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내죠.
이런 상황이 웃음와 더불어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의외로 강형철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이긴 하지만 음악적 감성을 영화에 잘 사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데에는 전작 '과속 스캔들'로 같이 음악감독을 맡은 김준석 씨의 능력이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이나 '자유시대' 같은 이 노래를 들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써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라붐'으로 유명하고 몇 년전 한 의류광고에서 정우성 씨와 전지현 씨의 멋진 모습에 감동하면서 들었던 'Reality'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었고요. 이 영화의 동명제목이자 보니 엠의 히트곡인 'Sunny'도 들을 수 있지요. 주성치 영화인 '장강 7호' 이후 오래간만에 듣는 곡이기도 하죠.
이야기 구조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과거와 현재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를 연기한 배우와 현재를 연기한 배우가 싱크로율이 좋아야 한다는 점은 당연한 이야기인데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 것은 다름아닌 장미 역을 맡은 김민영(과거) & 고수희(현재) 씨... 그 외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미 역에는 심은경 양과 유호정 씨가 의외의 싱크로율을 자랑하지요.
신인, 중견 배우들이 다양하게 분포된 이 영화는 미스테리하고도 시크한 모습을 보여주는 수지 역의 민효린 씨를 비롯해서 영화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이연경 씨도 보이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홍진희 씨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히든카드는 영화 예고편,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나 트위터 속에서도 내내 계속 정체를 숨긴 수지의 성인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 분의 이름 기억이 안나더라도 얼굴을 보면 너무 익숙한 배우가 등장합니다. 여기까지!)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엔딩은 급히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춘화의 죽음 이후 써니 맴버들이 하나 둘 등장하는데요. 춘화의 고문 변호사(여기서 의외의 인물 한 명 또 등장합니다.)가 써니 맴버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이 그것이죠. 고생한 맴버들에게 일종의 로또같은 행운을 안겨주는 것은 멋진일이겠지만 더 특별한 방법으로 이들의 미래를 축하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 방식이 약간 진부하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모두들 슬퍼만 하고 있을 장례식장의 상황에서 보니엠의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맴버들의 모습은 인상깊은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유쾌한 장례식이 요즘 많이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생각들을 해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강형철 감독은 추억과 복고라는 화두를 잘 이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포모어 징크스에서는 어느정도 해방이 되지 않을까 싶어지긴 합니다. 사실 전작인 '과속 스캔들'이 많은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지라 부담감이 크긴 했을테니깐요.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여러분들은 나미의 '빙글빙글'을 흥얼거릴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라구요? 저는 '빙글빙글'은 아니더라도 'Sunny'를 무한반복 해서 듣고 있습니다. 'Touch by touch'와 더불어 말이죠. 그리고 처음과 끝에 등장한 'Time after time'으로 끝을 맺을 것입니다. 주문같죠?
그러나 진짜랍니다. 이상하게 이 음악들은 그런 마력을 지녔거든요.
아니면 마력이 아니라 세월탓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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