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무산일기]따뜻한 남쪽나라... 그곳은 또 하나의 지옥이었다.

송씨네 2011. 4. 18. 01:59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평행이론이라는게 있습니다.

다른 시대의 사람들인데 우연하게 겹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죠.

미술에서는 데칼코마니라고 해서 물감으로 한 면의 종이에 반쪽만 물감을 풀고 그것을 반을 열심히 접고 다시 펴면 똑같은 모양의 그림이 나오는 것이죠. 

우리의 인생은 다른 듯 같은 평행이론이 존재하며 테칼코마니처럼 하나로 이어지는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점에서 오늘 소개할 '무산일기'는 그 여러가지가 닮아있는 작품이라고 보여집니다. 외로운 사람들, 그래서 우리가 더 감싸줘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무산일기'입니다.



승철... 그는 북에서 왔습니다.

하나원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는 그는 북에서 내려온 동료 경철과 철거촌 옆의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지 모릅니다. 근처 마을들은 포크레인으로 쓸어내리는 것을 보면 이 아파트는 절대 그럴일은 없을 것 같으니깐요.

그는 벽보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합니다. 나이트 광고가 대부분이고 가끔 현수막도 걸고 명함도 돌리는 일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도 여건이 좋으면 하게 됩니다. 나쁘면 신나게 상대편 쪽에 의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일꺼리도 못받는 일도 생기니깐요.

그에게 낙이라고는 교회에 같이 다니는 성가대 여인인 숙영을 보는 일입니다.

운이 좋게도 숙영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알바를 뛰게 되었지만 그녀는 노래방에서 술팔고 노래방 도우미를 고용하는 일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부정하려고 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경철에게 위기가 찾아왔고 그것은 죄없는 승철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게 됩니다.

남한, 이 곳은 그에게 절대 따뜻한 남쪽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승철의 친구인 백구도 그의 마음을 알까요?







몰랐던 사실...

탈북자들은 생일 다음 이어지는 일곱자리 주민번호 숫자에 125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군요.

이것으로 이들의 주홍글씨 같이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합니다.

탈북자들을 간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는 대목으로 이 주민번호가 사용이 되어진다는 의미이겠지요.

누군가가 이 영화에 대해 그러더군요. '당신이 알고 있는 탈북자 출신의 연예인들(가령 전철우, 김용 씨 같이 알려진 분들이나 김만철 가족 등등의...)을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한 탈북자 출신의 그 분들을 생각하면 안되는 영화였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탈북자 출신의 극소수이기 때문이죠.



소외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특히나 귀순자 혹은 탈북자(여기서 더 순화하면 새터민이라고 하기도 하죠.)들은 우리들의 관심의 사각지대로도 여져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속 승철이 잘하는 말이 있습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지요.

잘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가지 머리에 가까운 헤어스타일과 단정치 못한 패션외에도 탈북자 출신이라는 점이 그를 그 어떤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깐요. 그나마 그의 일터가 되었던 전단지 부착 역시 낮은 임금과 무시로 인해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믿은 줄 알았던 경철은 친구가 아니라 웬수가 되었고 교회에서 만난 숙영은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상량하던 모습은 온대간대 없고 노래방에서는 차갑게 그를 대합니다. 그리고 서로 아는체도 하지 말자고 합니다.

정말 믿을 것은 풍산개인지 진돗개인지도 모를 백구녀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데칼코마니 같다고 이야기하는 작품은 바로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혜화,동'입니다. 이 두 작품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버림받은 싱글맘과 버림받은 탈북자가 그 주인공들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며 그들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도 강아지(개)라는 점도 공통점으로 작용합니다. 무엇보다도 정말로 공통점은 그들에게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같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죠.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헤화,동'은 불안한 미래가 혜화를 기다리고 있었고 승철 역시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모습마져 보입니다. 그들에게 미래는 그야말로 암울함 그자체였을 껍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또 하나 있습니다.

자본주의 타도, 미제 타도를 외치던 이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낮은 임금에 고민하고 심지어는 나이키와 맥도날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이키 티셔츠와 파카, 그리고 식사를 맥도날드 햄버거로 때우는 모습에서 그들은 정말로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다시 갖게 됩니다.

더 의문이 드는 것은 승철은 마주보는 맥도날드 건물을 앞에 두고 왜 한번도 건물안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남한의 자본주의 삶에서 승철이 느끼고 있는 괴리감을 나타내기 위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건 박정범 감독에게 꼭 여쭈어봐야겠군요.) 



한편으로는 이 영화는 위선자들에 대한 고발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앞에 이야기한 숙영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속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래방에서 술을 팔고 노래방 도우미를 취업시키는 것은 단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 꼴을 보여주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방 도우미들도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입니다. 얼떨결에 승철이 그들과 찬송가를 노래방에서 디스코  버전으로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이 장면에서도 숙영은 이들을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부정합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똑같은 속물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깐 착해서) 승철은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는 장면 역시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승철의 비밀이 교회에서 밝혀졌고 숙영은 화해인지 동정인지도 모를 제스츄어를 취하지만 그것 또한 승철에게는 병주고 약주는 일이 되어버렸죠.




감독 겸 주연으로 등장한 박정범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스텝으로 활동하던 경력이 있던 분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나 '시' 등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그 차분함이 여기서도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그 사이에 교회가 걸려 있는 점 또한 유사한 점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박정범 감독은 이전에도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125 전승철'이라는 작품을 선보였으며 '무산일기'는 이 단편에 대한 확장판이라고 생각하셔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비슷한 예로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의 경우도 단편 '전쟁영화'의 확장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

모든 것을 잃은 승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적막감 속에 아무런 음악도 나오지 않습니다. 

엔딩크레딧에 그 흔한 음악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야기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외로움과 적막감...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은 마치 음소거처리된 TV처럼 그렇게 조용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늘상 제가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여러분... 정말 행복하신가요?"



PS. 얼마전 곽정범 감독님을 뵐 일이 있었습니다. 배우분들이랑...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상당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요.

가령 승철의 오리털 파카는 짝퉁 나이키 점퍼에 그 안에 있던 솜털을 제거하고 실제 오리털을 다시 집어넣은 뒤 촬영했다고 합니다.

또한 리뷰에서 제가 궁금해했던 맥도날드에서의 식사장면은 제가 생각했던대로 승철의 자본주의 삶에 부적응하는 일종의 괴리감이었다고 하는 군요. 수많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