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도가니]소설같은 이야기, 하지만 실제 우리 주위의 이야기!

송씨네 2011. 9. 20. 05:43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작품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너무 오버하다가 실제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또한 그것이 살인이라던가 뉴스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알려진 것이라면 유가족이나 사고 당사자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죠.

그런점에서 이 작품 '도가니'는 어떤 쪽에 속할까요?

청각장애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어른들의 잘못된 이기심으로 희생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이야기가 되었고 작가 공지영 씨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게 됩니다.

소설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도가니'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시 스크린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안개가 많은 도시 무진... 한 남자가 안개를 뚫고 도시로 향합니다.

이 남자 인호는 자애 학원이라는 학교로 향합니다.

그는 선생이 된다는 마음에 부픈 가슴을 안고 이 곳에 왔지만 은근슬적 학교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행정실장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미소가 없습니다. 뭔가를 숨기고 있고요.

민수라는 아이는 보현이라는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다니고 있고요.

수상함을 느끼게 된 인호는 무진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유진과 이 사건을 파해치기로 합니다.

하지만 파해치면 파해칠 수록 이 학교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선생님들... 심지어는 교장에게까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가 진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그 과정 역시 순탄치만 않습니다.

 

 

 

 

 

2005년 11월 MBC 'PD 수첩'은 한 학교의 비리를 밝혀내게 됩니다.

사실 이 PD 수첩이 지금도 시민을 대표하는 양심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의외로 종교 문제나 종교인이 운영하는 학원이나 학교의 비리문제가 자주 다루어졌던 것도 사실이죠. (과거 소쩍새 마을 사건도 대표적일 수 있겠지요.) 아무튼 청각장애자인 14 세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공지영 작가는 이 이야기를 접해들고 충분한 자료조사를 거쳐 2009년 '도가니'라는 이름으로 장편소설을 쓰게 되면서 다시 이 이야기는 수면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황동혁 감독의 전작인 '마이 파더' 역시 공교롭게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의 경우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할만 점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활자만 묘사된 소설이 시각적인 영상이 들어간 영화로 옮겨지면서 많은 고심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성폭행 장면이 많은 부분임을 생각할 때 미성년자 연기자가 여럿인 이 영화에서 이 묘사를 어떻게 할지도 많은 고심을 하게 만들었을테니깐요.

 

이 작품은 사건의 개요부터 시작해서 법원으로 넘어가기의 과정을 생각보다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의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디테일이 뭔가를 보여준 영화였는데 이는 최근 시각장애자를 주인공으로 했던 영화인 '블라인드'처럼 한 쪽이 그 기능을 상실했지만 모든 육감을 총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그려지는데요. '도가니'에서도 청각장애인으로써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사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심지어는 이 영화는 법정장면에서까지 그 긴장감을 절대 놓지않으려는 감독의 장치들도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특히 조성모 씨 버전으로 부른 노래 '가시나무'와 관련한 장면은 상당히 소름끼치는 장면으로 등장합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그렇듯 방대한 내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등장인물을 축소시키거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영화속 유진은 실제 소설에서는 워킹맘에 인호와 친한관계로 묘사되었으나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바뀌어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시거나 소설을 읽으셔도 크게 스토리가 바뀌는 부분은 아닐테니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공유 씨의 경우 군복무중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읽고나서 그 감동과 분노를 감당하지 못했고 이 것이 영화화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유 씨나 정유미 씨 만큼 고생한 것은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역배우들의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연두 역을 맡은 김현수 양이나 유리 역을 맡은 정인수 양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장면들을 찍었어야 했지만 그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수 역을 맡은 백승환 군은 동생을 잃고 더구나 진실이 밝혀지지 않자 울분을 토하는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같이 연기를 한 배우들이 감탄을 할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악역들을 연기한 이 분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지요.

1인 2역으로 행정실장과 교장 역할을 한 사람은 연극배우이자 성우로 우리에게 익숙한 장광 씨가 열연을 하셨는데요. 사실 TV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주의깊게 보셨다면 이 분의 이름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최근 성우와 배우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시점에서 장광 씨나 김기현 씨, 김상현 씨 같은 성우분들이 오래전부터 스크린에 진출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장광 씨의 등장은 그리 낯선일은 아닐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고의 악역으로 열연한 모습이 아마도 크게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네요.

 

재미있는 점이 하나 발견되는데요. 악역으로 등장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분들이라는 것이지요. 심지어 영화 첫출연인 분들도 계십니다.

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등장하여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열연했던 김주령 씨, 학교와 결탁하여 비리를 저지른 형사 역으로 등장한 엄효섭 씨, 그리고 학생을 미친듯이 구타했던 교사 보현 역의 김민상 씨 등이 이 영화를 보면서 주먹을 불끈쥐게 만든 대표적인 3인방이었지요. 특히나 김민상 씨의 경우 큰 수술을 마치고 이 작품으로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주셨다고 하니 대단할 수 밖에 없지요. (트위터로 배우분들 성함 알려주신 @860407 님, @cchangbo 님, @trendy00 님, @yonghwun님 감사합니다.)

 

 

 

'도가니' 속 실제 이야기가 되었던 학교는 아직도 운영중이며 대표였던 교장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야 비로써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요.) 학교는 이름을 바꾸어 운영중이고 심지어는 판결에서 죄를 감량받은 교사들은 아직도 버젓이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개봉후 공지영 작가나 황동혁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이들 학교 관계자들이나 종교인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협박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의는 이긴다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방법은 별다른게 없습니다. 이 영화를 많이 봐주고 이들 피해자가 당했을 고통을 같이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영화 속의 가상으로 도시로 등장한 무진...

어쩌면 그 안개가 사라지고 밝은 햇살을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하늘을 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멋진 하늘을 볼 권리는 어디선가 피해를 입고 있을 수많은 장애인들과 여성들에게도 필요할껍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길 기원해봅니다.

 

 

 

PS. 제가 봤던 일반 시사는 가수 박혜경 씨의 주최로 열린 시사였습니다.

박혜경 씨는 아시다시피 최근 배우 김여진 씨 만큼이나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은 분으로 알려져 있지요. 황동혁 감독과 배우 정유미 씨의 무대인사도 덤으로 진행되었습니다.

 

PS 2. 도가니의 영문제목이 'Silenced'라고 하네요. 영화정보에 영문 원제도 같이 추가하였습니다.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