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코쿠리코 언덕에서]지브리 스타일은 판타지 보다는 추억 이야기!

송씨네 2011. 10. 2. 00:19

 

 

 

우리에게는 토토로로 익숙한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제 감독직보다는 총책임자라는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역할은 중요한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대신할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지요. 여러 이름이 거론되었고 마치 베틀을 벌이고 테스트를 하는 것 뭐냥 후보자들은 한 편 씩 장편을 만들었지요.

 

그 중 한 명이라면 미야자키 히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는 '게드전기'라는 작품을 내놓았지만 보기좋게 비판을 받았지요. 지브리답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을 껍니다. 미야자키 고로가 다시 내놓은 작품은 심기일전하고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여러분을 1963년 일본으로 안내합니다.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입니다.

 

 

1963년의 일본... 바다가 보이는 요코하마.

항구쪽에 하숙집을 운영하는 소녀 우미는 아침마다 집앞에 정체모를 깃발을 걸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미보다는 메르라는 별명이 더 익숙한 그녀는 학교 동아리 건물인 '카르티에 라텡' 건물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소년 슌과 마주치게 됩니다.

청소라는 것 해본적 없고 여러 부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이 건물에서 슌은 학교 신문을 만드는 일도 겸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동아리 건물이 허물어진다는 소리에 고민이 크기만 합니다.

거기에 우미와 슌은 서로를 알게 모르게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슌과 우미가 친남매지간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슌은 일부러 우미에게서 멀어지려 합니다.

여학생들의 봉사활동으로 인해 점차 옛모습을 되찾는 카르티에 라텡...

하지만 학교 이사장의 결정이 떨어지는 순간 이 곳은 사라집니다. 슌과 우미는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도시로 향합니다.

이 두 사람은 동아리 방을 지키고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1960 년대 일본은 1964년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절이고 이 작품은 당시를 반영한 음악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과거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의 과거를 알 이유도 없고 몰라도 되는 상황이라 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당히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한국전쟁이죠. 우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물자를 수송하다가 실종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만큼이나 인상깊었던 것은 이 경우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한국전쟁은 일본에서는 그 패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들은 제국주의를 강조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작품은 이것을 교묘히 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패배를 인정한다기 보다는 서로간의 아픔을 인정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고 있지요.

 

또 하나, 지브리에서 볼 수 없었던 막장 코드의 등장이 특이한 점으로 다가옵니다, 일본 영화 '매직아워'에는 야외촬영이 아닌 세트촬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들이 관객들을 희롱하듯 주인공들이 있는 마을이 하나의 세트같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교롭게도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는 가족관계가 알려지면서 우미와 슌의 대화에서 마치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지브리가 새로운 무기로 막장 이야기를 다루는 것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브리는 절대 막장 코드로 장난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출생의 비밀과 한국전쟁이라는 이 소재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그런점에서 상당히 영리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후에는 두 사람의 가족관계가 정확히 묘사가 되고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죠. 지브리는 그런 막장을 이야기할 사람들이 아니니깐요.

 

 

지브리 작품은 '마녀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판타지에 중심을 준 제작사라고 생각하기 쉽상입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등과 같은 서정적인 멜로풍의 애니메이션도 만든 회사가 지브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브리는 판타지 애니메이션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더구나 지브리는 당분간은 판타지에 중점을 둔 작품은 제작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브리의 판타지 애니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디테일하고 판타지한 그들의 스타일은 계속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르티에 라텡을 우미의 여동생과 같이 방문한 장면인데 미로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건물 내부는 마치 '소림축구'의 돼지촌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먼지와 빨레,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한 그 모든 사물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브리가 판타지는 버려도 디테일함은 절대 버리지 않을 그들의 여전한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1980년에 만들어진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브리 측에서는 현대적으로 가공하거나 심하게 뜯어고치는 방법대신 1960년대 기분이 그대로 나도록 나름대로 고증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의 노래들을 그대로 기용한 것도 인상적입니다만 특히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던 '이별의 여름'(さよならの夏)이란 곡은 모리야마 료코라는 일본가수가 1976년에 불렀던 히트곡이지만 일본의 뮤지션인 테시마 아오이가 엔딩크레딧에서 리메이크 버전으로 부른 장면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가수 정엽 씨가 한국어로 번안해서 동명의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데 일본어 원곡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남자로 바뀐 부분이 어색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달리 정엽 씨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어울리는 OST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지브리는 '벼랑위의 포뇨' 때도 한국어 버전의 주제가를 준비하는 등의 한국어버전의 OST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부분을 볼 수 있지요. 앞에 말씀드린 한국전쟁의 묘사가 최소화 된 것도 한국팬을 어느정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어떻게 보면 지브리는 나름 영리한 제작사였다는 겁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으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많이 나온 이야기가 일본의 지진에 따른 방사능 유출로 직간접적으로 고통받은 일본인들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같은 영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 역시 1960년대는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임을 가만한다면 과거는 더 힘들었지만 그것을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이 참고 견뎌 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젊은이들과 사고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희망이라는 깃발을 달고 열심히 살자고 이야기하고 싶던게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들에게도 이 영화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 버리는 건 무리겠죠. 그리고 의외로 버리는 것중에는 쓸만한 것들도 분명 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