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이란판 '사랑과 전쟁'... 이 곳에도 아픔이 있네!

송씨네 2011. 10. 10. 17:33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이혼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디 이혼 뿐일까요? 이혼만하지 않을뿐이지 별거에 들어간 가정도 꽤나 되겠지요.

어쩌면 별거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면 웃기는 소리겠지만 어느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이란과 같은 아랍권 국가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이란영화를 볼 기회가 과거에 비하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이란영화를 찾아보긴 힘듭니다. 그런데 그동안 가난한 이란의 빈부가정 이야기만 봤는데 이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네요.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입니다.

 

 

이란의 한 중산층...

은행원으로 일하는 나데르와 학교 교사로 일하는 씨민은 부부입니다.

씨민은 이란에서 사는 이 삶이 너무 답답하기만 합니다. 딸인 테르메를 위해서라도 이란을 떠나 다른 곳으로 터전을 마련하고 싶었던 씨민에 비해 나데르는 치매인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아버지 때문이라도 이민은 꿈도 못꿀일이죠. 이렇게 두 사람은 의견이 맞지 않습니다.

이혼 법정에 들어선 두 사람... 하지만 이혼은 막자는게 이들 모두의 생각인 것 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혼 아닌 이혼을 하고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갑니다.

나데르는 치매인 아버지를 돌볼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고 씨민의 아는 사람의 가족의 소개로 라지에라는 여인이 그들의 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며느리인 씨민만 찾는 나데르의 아버지... 용변처리도 문제고 갑작스럽게 집밖을 탈출할 경우 일은 더 꼬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고 라지에는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어느 날... 평소 때 처첨 하굣길에 테르메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서던 와중에 충격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집 문은 잠겨 있고 라지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데르의 아버지의 두 손은 묶여 있으며 거기에 침대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돈도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후 돌아온 라지에를 도둑으로, 그리고 아버지를 묶어버린 죄를 추긍하기 시작합니다. 자지에는 억울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쫓겨나고 몇일 후... 라지에가 유산을 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임신중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나데르와 알고 있었다는 라지에...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해지면서 또 다시 법정으로 갑니다.

거기에 다혈질의 라지에의 남편까지... 별거로도 힘든데 나데르는 힘들기만 하고 씨민도 그런 남편의 모습을 멀리서만 바라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란의 중산층들의 모습입니다. 이상하게도 국내에서 수입되어 공식 개봉되거나 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들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란의 빈민층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더구나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이란의 문화적 특성상 계급의 문제나 여성들의 인권이 차별되는 문제들이 영화에 많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는 이란의 모습은 다릅니다. 씨민과 나데르 부부는 그렇게 잘 살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산증 가정입니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가정교사나 라지에 같은 간병인을 들여놓을 정도로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도 있지요. 차도 남편과 부인명의로 각각 있으니 그정도면 잘사는 것이지요.

 

여기에 반대되는 라지에의 가정이 물론 등장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함은 물론이요, 그녀의 남편은 사기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성격은 다혈질입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어서 거의 막가는 인생으로 사는 막장의 삶을 사는 인물이죠.

이를 통해 중산층과 비교되는 빈곤층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란의 빈부 격차를 직접적으로(간접적이 아니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란의 법정의 모습입니다.

좁아터진 방 하나에 원고와 피고가 서지만 검사와 변호사도 없습니다.

원고와 피고가 각각 알아서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을 하며 직접 변론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란의 법정이 허술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혼 법정에서 판사는 한번 더 생각해볼 것을 씨민과 나데르에게 이야기하고 있고 라지에가 들어간 사건에서는 나름 현장검증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아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작은 법정이다보니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긴 법정공방보다는 속전속결로 끝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서로 다른 관점의 증인들의 모습들과 진실을 숨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금전적인 거래만 없을 뿐이지 나데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하는 사람들도 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유산된 라지에에 관한 묘한 반전입니다.

그 묘한 반전이 공개되면서 라지에와 그의 가족들도 고민에 휩싸이게 되지요.

 

 

 

 

 

비슷한 아랍권임에도 인도 영화와 이란 영화의 스타일은 확연히 틀리죠.

음악이 있는 인도영화와 달리 이란의 영화는 이야기가 그 중점이고 이야기의 구성에 있어서도 탄탄한 구성을 갖춘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죠. 어쩌면 이란 영화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여전히 종교와 여성에 관한 기준을 너무 못을 박은 나머지 통제와 제한이 많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히잡을 벗지 못하는 여성들이라는 점이죠. 한 관객은 이에 대해 이란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히잡을 실내에서도 쓰는 장면이 영화에서 등장하지만 이는 영화촬영도 실외와 똑같이 간주되는 점 때문에 실내에서의 촬영장면에서도 어쩔 수 없이 히잡을 쓰게 된다고 하더군요.

 

또 하나, 영화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바로 라지에가 나데르의 아버지를 씻겨주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바지에 실례를 한 나데르의 아버지처리를 두고 고심합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처럼 남성주의의 사회가 강한 이란은 히잡을 계속 써야하는 것만큼이나 남녀관계에 있어서 개방적인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종교부관련 센터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하냐고 상담하는 장면이야 말로 개방적이지 못한 이란의 사회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란 영화는 변화의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와 여성의 독립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최근 많이 등장했다는 것은 달라지고 있는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언젠가는 여성들도 히잡을 벗어낼 것이고, 여성들도 자유롭게 사회생활에 진출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아봅니다.

 

그러나 이란의 문화가 폐쇄적이라고 해서 영화 제작 정책까지 폐쇄적이지는 않습니다. 인도만큼이나 이란에서는 수많은 장편 단편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에는 '청소년 지능 개발 연구소'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중고딩스러운 이 기관(?)은 우리나라의 영진위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이란 영화의 거장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도 이 곳에서 데뷔하였고 이 기관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란의 영화 정책만큼은 개방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한 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엔딩은 (스포일러지만 공개해도 되는 부분이라...) 법정에서 이혼 후 아버지 나데르로 갈 것인가 어머니 씨민으로 갈 것인가에서 고민하는 테르메 사이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두 사람은 화해의 직전까지 갔지만 이들은 이미 이혼서류에 싸인을 한 상태이죠. 양육권 문제에 서로 데려가겠다고 외치지만 결정은 테르메가 가지고 있었죠.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물음에 갈등하는 아이의 모습처럼 테르메

는 울먹이며 누구에게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찰나에 끝을 맺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테르메의 선택이 누구에게 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쩌면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을 하건 별거를 하건 걱정이 없는 이들 중산층에게는 상당히 배부른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아이에게는 둘 중 누구에게 갈경우 어떤 미래가 보장될 것이냐의 고민일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어쩌면 이혼할 권리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란 사회에서는 말이죠.)

 

다시한번 말하지만 누구에게 갈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엉뚱한 사건에 휘말린 이 부부의 이야기보다는 삶의 질에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고민을 해야하는가 일 것입니다. 정말 배부른 소리일까요?

 

 

 

PS. 이 영화에서는 이색적인 인물이 있는데요. 이 영화의 감독인 아쉬르 파르하디의 딸이 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씨민과 나데르의 딸로 등장하는 사리나 파르하디는 부모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감정기복 심한 사춘기 소녀로 열연하는데다가 영화의 엔딩까지 장식하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