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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인력거]인도 인력거꾼... 가난 속에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는가?

송씨네 2011. 12. 7. 01:13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죽지 못해 산다는 우스겟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고민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현실이,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은데요.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만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해 고민하고 가난에 좌절하는 우리들의 삶...

인도에서 한 인력거꾼들을 10년 이상을 만나면서 이야기되는 그들의 삶...

다큐 '오래된 인력거' 입니다.

 

 

인도의 캘커타... 한 남자가 맨발로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샬림입니다.

그는 병든 아내와 자녀들, 일가 친척의 생활비를 위해 인도의 도시인 캘커타에 올라왔습니다.

샬림은 인력거를 모는 사나이인데요, 시대가 변하면서 이 도시에도 택시를 비롯한 자동차 수단이 많아졌고 인력거는 가난의 상징이라면서 줄이려는 움직임입니다.

샬림은 돈을 더 모아 삼륜차를 구입하고 집을 장만하는 것이 꿈입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날 보다는 비가 오는 날 오히려 장사가 잘 됩니다.

하지만 택시나 삼륜차를 비롯한 다른 차들로 엉켜버리면 오히려 욕을 먹는 것은 이들 인력거꾼들입니다. 그러나 살림은 절대 그들의 기에 눌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중 큰아들이 가난에 가출하는 일이 발생하고 아버지 샬림의 마음은 찹찹하기만 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의 아내는 도무지 알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신이 원망스러워질 때가 있을 때... 어쩌면 그것도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샬라... 그가 인력거꾼으로 살아가는 것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 작품은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이 영화의 연출인 이성규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10년이 넘는 기간 인력거꾼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발견한 것이 바로 중년의 인력거꾼 샬림과 젊은 또다른 인력거꾼인 마노즈의 이야기를 담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샬림이지만 마노즈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사연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고 마치 조작된 것이 아닌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달프고 슬픈 일들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고난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나름의 희망을 걸고 살아가려 합니다.

 

샬림의 모습은 그런데 우리에 웬지 익숙해보입니다.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하고 돈을 벌기위해 산업전선에 뛰어든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가끔 머나먼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을 보살핍니다. 보살피다가도 쉴틈도 없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내 땅도 아닌 빌려서 하는 땅이지만요.

아내는 아파오는데 병명은 알 수 없고 동네의원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큰 도시의 병원으로 가라고 합니다. 아내를 큰 도시로 데려가야 하고 약값에 진료비에 힘들기만 하지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의 큰 아들은 가출을 하였고 어렵게 찾은 아들은 신종플루에 시름시름 앓다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거액의 약값과 치료비... 그리고 이자로 불어난 금액입니다. 아들을 답답한 가방 공장에서 빼내오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 못합니다.

이 놈의 가난이 웬수이지요.

 

또 다른 젊은 인력거꾼 마노즈도 기구한 인생입니다.

언제나 말이없고 할 말만 하고, 어떤 때는 술로 밤을 지세우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동료이자 인력거꾼 선배인 샬림도 기분 좋을리가 없지요. 하지만 10살 때 지주에게 아버지를 잃은 이후 세상과 단절하면서 그만의 방식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모두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 작품의 나레이션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이 맡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목소리가 이 작품과는 안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 느리고 그 답지 않은 발성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면 이외수 선생님이야말로 힘든 시절을 겪었고 기인처럼 살아갔다는 점에서 인력거꾼인 샬림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샬림이나 마노즈의 이야기만큼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공중파를 비롯한 어느 방송사에서도 이 작품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이고, 그것은 그들을 이 작품을 종편에서 최초 공개할 수 밖에 없는 현실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작품 '오래된 인력거'는 공교롭게도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A'의 개국특선 3부작 다큐의 한 작품으로 방송되었습니다. (물론 방송용으로 편집된 것이며 채널A는 이 작품의 제작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소식만 접하고는 저는 제작사와 배급사를 원망하였습니다. 왜 하필 조중동 중 하나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지요? 하지만 그 의문은 이성규 감독의 트위터(@ttombangong)와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seonggyou.lee)에서 풀렸습니다. 어느 방송국에에서도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작품 자체가 매장을 당할 위기를 겪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이런 비슷한 작품이 떠오르게 되더군요.

2008년 인디 다큐의 새지평을 열었던 이충렬 감독의 작품인 '워낭소리'였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도 열심히 만들고도 방송을 내보낼 방송국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요.

저 역시도 '종편 나빠, 종편 싫어!'를 외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이런 독립영화나 독립다큐를 틀 수 있는 곳들이 많았던가 의문입니다. 그들이 최악의 상황으로 결국에는 종편을 선택한 것은 안타가운 일이라는 점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인력거'는 우리보다 가난한 인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살아가려지만 늘 제자리에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삶이 우릴 우울하게 만들지요.

인도의 인력거꾼들의 대부분은 맨발이라고 합니다. 신발을 신었다가는 많이 달릴 수 없을 뿐더러 신속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들도 그렇게 맨발로 세상을 달렸습니다.

어떠면 '이 영화를 내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이성규 감독의 프로덕션 노트의 글귀가 저만이 공감하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