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아멘]김기덕의 셀프 생존기에 이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송씨네 2011. 12. 12. 00:51

 

 

 

 

영화제 기간만 상영, 독점 상영, 단독 상영, 앞으로 상영 계획 없음...

이딴 소리에 저걸 누가 믿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죠.

어차피 영화제가 끝나더라도 언젠가는 부가판권으로 DVD나 합법적 다운로드, TV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안심을 하게 되니깐요. 하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나라의 영화들 중 끌리는 영화는 그것이 정말 마지막 일 수 있는 경우가 실제로도 있죠.

 

근데 우리나라 감독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김기덕 감독이죠.

그는 어떻게 보면 좀 칼 같다고 해야할까요?

제한적인 배급방식, 영화제 기간동안만 상영, 인터뷰 절대 없음 등등...

그는 항상 보도자료를 이용하거나 김기덕 필름의 다른 감독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편이죠.

 

서울 디지털 영화제 이후 잠시 공개된 '아리랑'은 이후 CGV에서 잠시나마 김기덕 감독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 영화를 상영하였고 그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씨네큐브 광화문을 통해 두 작품을 공개하였습니다. '아리랑'과 지금 소개할 작품 '아멘'이 바로 그것입니다. 

궁금증이 컸던 그 영화... 과연 '아멘'은 어떤 영화일까요?

 

 

한 여인이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옵니다.

어딘가에 살고 있는 이명수라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파리로 온 것이지요.

그 남자... 명수에게 그녀는 전화를 걸지만 없는 전화번호라고만 합니다.

명수를 찾아나선 유럽의 고속열차에서 정체불명의 방독면 사내에게 겁탈을 당하게 됩니다.

명수라는 남자를 찾기도 벅찬데 그녀는 돈과 자신의 가방도 잃고 거기에 몸도 빼앗기게 되었으니 분노가 차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게 이 여인은 파리, 베니스, 아비뇽의 도시를 거치게 되고 열차에서 살아가고 돈이 없을 때는 구걸로 힘든 하루를 극복해갑니다. 그리고 그녀를 뒤를 방독면을 쓴 사내가 쫓아옵니다.

그녀가 잉태하고 있을 생명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낳아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경찰서로 가서 자수하겠다고 글을 남기게 됩니다.

 

 

 

이 영화는 '아리랑'을 보신 관객이라면 조금 이해하기 쉬운 영화입니다.

김기덕 감독은 분명 자신의 전작인 '아리랑'에서 자신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까닭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에 대한 자책도 있고 영화산업에 대한 불만도 섞여있는 상황에서 그는 고통을 받게 한 장본인과 자신를 향해 스스로 총을 겨누게 됩니다. '아리랑'의 리뷰를 저도 쓰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아멘'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몇 초의 짧은 예고편이 기대를 하게 만들었죠.

 

그런데 이 영화는 기존 김기덕 감독의 영화 스타일과는 많이 틀린 것 같습니다.

분명 '아멘'은 시나리오에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그 모든 상황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물론이요, 마치 익히지 않은 그야말로 날 것으로 요리한 음식 같은 영화라는 겁니다. 거친 화면은 '아리랑'과 마찬가지로 DSLR 카메라를 개조하여 만들었고 드러내놓고 꼼꼼하게 하는 편집이 아닌 미세한 소음까지도 살려가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엔딩크레딧도 단촐하여 김기덕 감독이 직접 촬영한 것은 물론이요, 방독면을 쓴 남자로 등장하여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방독면 사내가 움직일 때 장면은 바로 이 영화의 유일한 주인공인 김예나 씨가 촬영을 했다는 것이고요. (영화 'REC'의 촬영방식과 좀 비슷하죠.)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느낌이 들더군요.

'아리랑'과 '아멘'은 마치 짝패같은 영화라는 것이죠.

'아리랑'이 김기덕 감독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픈 그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면 '아멘'은 그 의지가 실천되는 부분이지요.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큰 제작비가 들지 않아보였고 스텝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죠. ('아멘'의 경우 일부 스텝이 있긴 했지만 보조역할을 했을 뿐이고 직접적인 촬영에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이 영화가 짝패인 이유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두 작품을 같이 봐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데요. '아리랑'이 마치 김기덕 감독이 순교자처럼 영화를 만들면서의 고통을 이야기했다면 '아멘'은 겁탈당한 여인의 자아찾기와 더불어 어딘가에 있을 명수를 찾아나서기 위한 고난의 길을 보여주는 영화로도 생각이 됩니다.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에서 보여준 상처 투성이의 맨발과 '아멘'에서의 (비록 양말(버선에 가까운)을 신었지만) 맨발로 거리를 나서는 여인의 모습은 어딘가는 닮아있다는 겁니다. 고행, 고난의 길을 말없이 그냥 걷는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이름 모를 여인으로 등장한 김예나 씨는 김기덕 필름이 발견한 신인입니다.

김기덕 필름 패밀리인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에서 운이 좋았다면 그녀를 볼 수도 있었지만 잠시 출연이었고 실제로도 제 기억으로는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 눈에 띄었고 김기덕 감독이 유럽에 있는 동안 김예나 씨는 유럽으로 급히 도착하여 김기덕 감독과 작업을 하게 된  것이지요. 영화에서도 그녀는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실제로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은근히 김기덕 감독은 종교적 성향이 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아멘'인지는 김기덕 감독이 직접 대답해주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아리랑'을 통해 김기덕 감독에게 궁금했을 법한 부분을 본인의 자문자답으로 알아냈듯이 이 영화를 비롯한 다른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영화의 제목이 '아멘'인 것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응답하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방독면 사내에 대한 정체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후 여인이 그가 쓰던 방독면을 그대로 쓰고 거리를 거닐었던 부분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명수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만약 그 방독면 사내가 명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이 사내를 용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그녀는 '아멘'이라고 대답하지 않아도 그를 용서하고 그가 남긴 방독면을 쓰면서 또 다른 고행의 길을 떠나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만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영화를 분명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아리랑'에서 세상을 향해 그렇게 울부짖었던 그인데 세상과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웬지 모를 아쉬움이 듭니다. 이제 고난과 고행의 길에서 벗어나 관객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김기덕 감독... 당신은 괴짜이지만 이제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