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다른 이에 의해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거나 혹은 세상을 떠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용서하시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질문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용서라는 대답은 쉽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관용이나 자비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죠.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방황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잊으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지요.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영화 '래빗 홀' 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일상은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대니를 잃으면서 그들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아무렇지 않은 듯 밥을 먹으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에서 열리는 유가족들의 모임에도 참석하지만 하나님을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베가는 대니를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제이슨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의도적이었습니다. 스쿨 버스에서 그가 내리길 기다렸고 그가 내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이슨 역시 괴로움에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이슨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만화를 그녀에게 보여주기로 합니다.
제목은 '래빗 홀'... 과학자인 아버지를 찾아 여러 시공간을 초월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제이슨이 쓴 자작 만화이죠.
누군가는 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
베가는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대니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미칠 지경이고 호위는 휴대폰 속에 대니의 동영상을 남겨놓지만 새로운 삶을 위해 베가에게 같이 잠자리에 들기를 원하지요. 베기의 고민은 또 하나 있습니다. 사고뭉치 여동생 이지가 출산을 앞두고 있고 그녀의 어머니는 마약으로 세상을 뜬 남동생과 대니의 죽음을 연결지으려고만 합니다.
결국 베가와 호위는 대니를 잊기 위해 자신들이 살던 집을 팔기로 합니다.
과연 이들의 행복은 지속 될 수 있을까요?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드웍'과 '숏버스'를 만든 존 카메론 미첼 감독에 제작자이자 이 영화의 주연이 니콜 키드먼이니 말이죠.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충격적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야기를 두 영화에서 보여주었고 공교롭게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지 않았지요.
그런점에서 맨정신으로 살아가는 중산층의 이야기를 그가 감독한다고 할 때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존 카메론 미첼과 니콜 키드먼의 의외의 조화가 눈에 띈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준 전작들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상당히 가벼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소재만큼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죠.
요즘들어 드라마적인 작품들에는 공통적으로 용서라는 키워드가 빼놓지 않고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 '래빗 홀'은 한국판 '밀양'이자 '오늘'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앞에 한국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자신은 신에게 구원받았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의지면에서는 조금 소심한 면이 있지만 용서받았다고 으시대지 않는 반성하는 한 소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영화에서 제이슨은 우발적인 사고를 친 것이 아닌 베가 부부의 개가 갑자기 올라오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것이죠.
물론 용서하긴 쉽지 않았을 껍니다. 특히나 베가의 남편인 호위는 제이슨을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것자체도 불쾌하니깐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교회에 나와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실패하고 말지요. 심지어는 또 다른 피해자 부모중 하나인 개비와도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개비와 호위가 교회에서 낄낄거리는 모습은 보면서 아슬아슬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괴로운 것은 베가였죠.
아들의 죽음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이상한 소리만 하고 여동생은 사고나 치고 다니고 이들 세 사람의 대화에서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이니깐요. 개비와 호위가 아슬아슬한 외도 아닌 외도를 하고 있을 때 베가는 그녀 나름대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들을 잊기 위해 옷을 세탁하고 세탁한 옷을 여동생인 이지에게 넘겨주려다가 퇴짜 맞는 장면 또한 불안하고 불편한 이들의 가족관계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들은 극적인 해격책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사 가기전 파티를 통해 나름대로의 화합을 모색하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쓸쓸히 마당에 앉아있는 베가와 호위 부부의 모습이니깐요.
이 작품 '래빗 홀'은 2005년 데이비드 린제이 어베이르의 동명 원작의 연극을 영화로 재구성한 것이며 니콜 키드먼은 이 작품을 보고 영화화를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려진바에 따르면 연극 원작에서는 사고를 일으킨 제이슨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최소화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녀는 이 영화를 '헤드웍'의 존 카메론 미첼에게 맡긴 것이지요. 의외로 자극적이지 않게 담담하게 이들 중산층의 한 가정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맡은 니콜 키드먼 뿐만 아니라 '다크 나이트'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아론 에크하트가 등장하여 영화에 큰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헐리웃 쪽 영화는 인상적인게 항상 오프닝 타이틀에 'and'로 등장하는 배우들 중에 비장의 카드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산드라 오가 이에 해당됩니다.
우리에게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시리즈로 당당한 여의사로 사랑받고 있는데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쓰는 당당하게 멋지게 활동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교회 유가족 참가자 모임 참석자로 등장하여 호위를 의도하지 않게 유혹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이슨이 그리는 만화 '래빗 홀'에는 아주 인상적인 그림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수많은 깔대기처럼 보이는 그림이지만 서로서로 연결된 이 깔대기는 평범한 깔대기가 아닌 또 다른 차원(세상)으로 통하는 연결구임이 밝혀집니다.
베가와 제이슨은 '레빗 홀'이라는 만화를 읽고 창작하면서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서로간에 힘들었던 과거를 청산하려고 하며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또 다른 세상에서의 희망을 기원합니다. 비록 헤어지고 만나지 못하더라도 어느 세상에서는 그리운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희망을 생각할 시기가 왔습니다.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차원... 우리는 어딘가에서 또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있겠지요.
우리는 그 희망 깔대기를 찾고 싶어할지도 모릅니다. 행복의 파랑새가 가까이 있듯 희망으로 통하는 또 다른 차원, 또 다른 깔대기는 아마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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