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이야기에는 역동적이고 멋지지만 항상 하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초근성에 빠진 남자들을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마초와 패미는 극과 극의 상황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남성우월주의나 그 반대인 여성우월주의 모두 좋아만 보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좀 재수없다고 해야할까요?
여기 마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달처럼 살아가던 전직 공무원이 있습니다.
마초를 꿈꾸던 남자, 혹은 왕이 되고 싶던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입니다.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이릅니다. 전두환 정권에는 조폭들이 대거 붙잡히고 삼청교육대로 불려나가고요.
그런 와중에 한 남자가 검찰에 송치됩니다. 그의 이름은 익현으로 과거 부산 관세청에서 일하던 남자입니다.
조폭과의 연계를 밝혀낸 검사인 범석은 익현에게 그 동안의 범죄를 추궁하지만 쉽게 이야기하지 않지요.
시대는 80년대 익현이 관세청에서 일하던 시절로 돌아갑니다. 마약 밀수단을 쫓다가 얼떨결에 거액의 마약을 발견한 익현은 처리에 고심하게 됩니다.
그와중에 부산의 조폭인 형배를 만나게 됩니다. 형배는 강했지만 익현은 최 씨 가문 집안 내력을 들먹거리며 결국 그의 조직 패밀리에 강자로 발전하게 됩니다.
나이트클럽을 맡고 싶었지만 빌미가 없었던 익현은 형배를 이용해 상대조직인 판호의 조직과 싸움을 부추기고 나이트클럽 자리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익현의 욕심은 과해지고 형배와의 관계도 삐걱거립니다. 결국 그는 판호와 손을 잡고 적과의 동침을 선언합니다.
다시 시간은 익현이 잡혀온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번에도 친인척을 동원해 감옥에서 빠져나왔지만 범석은 여전히 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모든 증거가 포착되어 다시 붙잡힌 익현은 살기 위해 범석의 제안에 수용하고 맙니다.
놈놈놈... 나쁜놈, 나쁜놈 그리고 또 나쁜놈... 세 나쁜놈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요?
윤종빈 감독의 이 작품은 이른바 '남성의 증명' 3부작 중 그 마지막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는 단편으로 동명의 제목인 '남성의 증명'이라는 제목을 만들었지만요.
장편의 그 첫 시작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군대의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용서받지 못한 자'며 두번째는 남자들의 공간이지만 여성들이 지배하는 공간이기도 한 호스티스의 이야기를 다룬 '비스티 보이즈' 입니다. 각기 다른 남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윤종빈 감독은 드디어 마지막 3부에 해당되는 이야기에 진짜 남자, 진짜 마초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사실 저는 두번째 작품인 '비스티 보이즈'만 제외하고 두 작품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범죄와의 전쟁'과 '용서받지 못한 자'를 생각해서 본다면 남자가 되는 과정를 다루는 하나의 단계를 그려나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상당히 복잡한 영화처럼 보입니다.
러닝타임도 두 시간을 넘기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저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가라는 의문도 들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관세청 말단 직원이던 익현이 조직을 이끌고 새로운 세계에 몸을 담는 과정을 거칠게 그렸다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줄을 잘 서야 하는 것과 동시에 아부와 로비등의 온갖 커넥션이 불기피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점에서 보면 익현이라는 인물은 치졸한 것도 부족해 박쥐같은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지요.
성공하기 위해 범죄조직 두목과 협상하고 그 두목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가문과 집안 내력까지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밧줄이 썩어서 떨어지기 일부 직전이라면 바로 옆에 새롭고 튼튼한 줄로 갈아타야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렇기 위해 익현이 이용한 사람은 자신보다 낮은 자손인 조직 두목인 형배를 이용하고 형배의 이용가치가 떨어진다고 느껴진다고 느낄때 적대관계인 또 다른 조직의 두목인 판호와 손을 잡는 것이지요. 그리고 영화의 제목처럼 범죄와의 전쟁에서 자신이 힘들어지자 친인척을 동원하고 그 인연마져 도움이 되지 못할 때는 또 다른 적이자 자신을 구해줄 검사 범석을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전형적인 박쥐과의 인물이라는 것이 바로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정말 많이 나온 대사라면 '살아있네!'라는 대사일 껍니다.
익현은 여러번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어떻게든지 살아남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배우 최민식의 연기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로도 해석이 되지요. 막장으로 가는 인간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준 최민식 씨의 연기는 정말 살아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껍니다.
살아있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죠. 윤종빈 감독은 '대부' 시리즈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갱스터 무비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성은 80년대 사랑받던 '영웅본색'의 스타일도 한몫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OB맥주 소품도 잘 살아있고, 장발에 촌스럽기 짝이없는 그 헤어스타일도 살아있는데요. 음악과 소품, 헤어스타일, 시대적 상황이 어울려 특이한 한국형 갱스터 무비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조연들이 눈에 잘띄는 영화였습니다.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부분일 수도 있고요.
특히나 판호 역의 조진웅 씨는 선한 역할, 악한 역할, 소시민 역할, 부자 역할... 등등 어느 것을 맡겨도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검사는 엘리트 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모습을 완전히 깨뜨려준 범석 역의 곽도원 씨는 이 작품에서 건진 최고의 수확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형배를 보좌하면서 익현에게 병도 주고 약도 주던 모습을 보였던 창우 역의 김성균 씨는 80년대 헤어스타일 만큼이나 묵직한 모습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성 영화라 여성들은 많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익현을 공격했던 여사장 역으로 등장했던 김혜은 씨도 좋았습니다. (이분은 다름아닌 전직 MBC 기상케스터 출신입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하죠. 다만 약간 사투리가 어색하신게 흠이었죠.)
1980 년대를 이야기한 영화답게 음악들도 풍성했습니다.
복고적 상황을 다룬 영화에서는 이제는 단골 음악이 되어버린 'Harlem desire'(할렘 디자이어)는 영화 '댄싱퀸'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등장했으며 이명훈(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라던가 1980년대 최고의 아이돌로 사랑받던 소방차의 '그녀에게 전해주오'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귀에 많이 들어오던 음악이라면 함중아와 양키스의 히트곡인 '풍문으로 들었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 엔딩에 한 번더 등장하는 버전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버전이 등장하는데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스타일이 과거 80년대 사운드를 바탕으로 음악을 자주 이용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들을 OST로 기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영화의 결론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살고 있는 익현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으니깐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권선징악의 엔딩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보면 영화의 결론이 의외로 권선징악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이런 영화들이라면 주인공이 파멸을 맞는 것이 결론이지만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박쥐처럼 살아온 익현이야 말로 최후의 웃는자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노년의 익현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대부님~!'하고 외치는(듯한) 형배의 목소리는 익현이 마음편히 노후를 보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점에서 '범죄와의 전쟁'은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것이 뻔한 해피엔딩이 아닌 우울한 세드엔딩일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우리가 한편으로는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비리로 얼룩진 이들이 오히려 더 잘살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떠드는 것도 그런 이유일테고요.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슬프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살아야 하고요.
익현 같은 인물도 자아~알 살고 있고, 범죄와의 전쟁을 나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실 보통사람이라 주장하시던 분도 잘 살고 있으며, 전제산이 29만원이라면서 기자들 내쫓을 수 있는 경호원 인건비 줄 돈은 가지고 계시는 그 분도 잘 살아계신데 우리도 그보다 못살 이유는 없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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