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두 개의 선]연애, 동거, 출산... 그리고 결혼은 그들에게 정말 미친 짓인가?

송씨네 2012. 2. 27. 16:58

 

 

 

기다란 막대가 하나 있습니다.

남자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여자들은 이 막대에 그려진 줄 하나에 울고 웃습니다. 이 막대기 이름은 임신테스트기입니다.

한 줄이면 임신이 아니지만 두 줄이면 임신으로 간주하는 임신을 빨리 확인할 수 있는 도구죠.  울고 웃는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임신테스터기 결과가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만 임신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까가 걱정입니다.

심지어 아이를 지우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합니다. 애가 지우개도 아닌데 지운다니 말이죠.

여기 한 커플이 있습니다. 동거하는 커플이지만 결혼도 싫고 아이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입니다.

 

 

 

이 다큐 주인공은 이철 씨와 지민 씨로 이들은 대학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입니다. 이 들은 연애를 했고 10년간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동거를 했습니다.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지민 씨는 임신테스트기로 확인결과 임신을 나타내는 붉은 줄이 두 줄이 나왔기 때문이죠.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영화감독으로 사는 지민 씨와 학원 강사로 지내는 이철 씨는 고민하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는 아이를 출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두 번째 문제에 부딪힙니다. 아이의 이름을 엄마 성을 따를 것이냐, 아빠 성을 따를 것이냐입니다. 아빠 성을 따르게 된다면 지민 씨와 이철 씨 동거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나고 이들은 혼인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새 생명의 등장은 기쁘기도 하지만 곤란한 일이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이들 커플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얼마나 지속할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커플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들 커플이야말로 상당히 정상적인 커플이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커플들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을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요.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들 모습에 대한 부모들 반응이라는 것이죠. 동안의 지민 씨 부모님은 젊을 적 데모 현장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고 군 입대로 지민 씨를 제대로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민 씨와 이철 씨 상황과 상당히 비슷한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죠. 세상과 맞서 싸우던 지민 씨 아버지는 감옥에 투옥하고 지민 씨 어머니 홀로 지민 씨를 비롯한 자녀를 키워야 할 날이 많았죠. 결국 이들은 이혼이라는 것을 선택하게 되며 지민 씨 부모님은 따로따로 사는 모습을 비춥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혼 후에도 그들은 사이가 나쁘지 않고 그야말로 ‘쿨하게’ 지민 씨와 예비사위인 이철 씨에 대해 유쾌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답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민은 아내인 지민 씨가 여성영화제에서 그들 이야기를 계획안으로 발표하면서 더 많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들은 결국 출산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이들은 또 다른 고민에 부딪힙니다. 정부에서 아이에 대한 수술비를 지원해 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지민 씨와 이철 씨는 부부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수술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절망에 다다른 두 사람... 이철 씨는 여성영화제 프레젠테이션 도중 눈물을 보이고 맙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출생신고도 서둘러야 하고,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큐는 로맨틱한 상황이 아닌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나누고 동거를 하고 관계를 맺지만 정작 그 관계가 쾌감을 위한 관계인지 종족 번식을 위한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생기는 문제점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지요. 속된말로 쉽게 싸지르고(?) 도망가는 남자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못사는 나라의 경우일수록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관계를 맺으며 아이가 출산하면 그 가난이 두려워 남자들은 책임지지 못하고 도망을 가지요. 쾌감만 느끼고 관계를 맺고 새 생명의 잉태가 불편해 도망가는 사람들... 저도 같은 남자이지만 책임질 짓을 하지 못하는 남성들을 보면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 주인공인 지민 씨와 이철 씨는 상당히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보입니다. 아이 미래를 무시한 상태에서 독단적으로 살아가는 일부 철없는 부부들을 생각한다면 그들 결정은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출발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니깐요.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새 생명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으니 그렇게 나쁘게만은 볼 수 없는 것이죠.

 

다큐가 끝나고 윤성호 감독과 배우 박희본 씨가 지민 감독과 이철 씨와 함께 관객과 대화를 하였는데 한 가정을 꾸리고 사람들에게는 이들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나타냈지만 결혼을 준비하거나 저처럼 미혼인 사람들에게는 이들 이야기는 왠지 모를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혼 대표로 나선 윤성호 감독과 박희본 씨가 그 역할을 잘 수행하신 것 같아요.)

 

맨 위 첫번째 사진에서 좌측부터 박희본 씨, 윤성호 감독, 지민 감독, 이철 씨...

 

 

어쩌면 <우리 결혼했어요> 낭만적인 로맨스보다는 <자기야>에서 ‘그랬구나’를 외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삶이야말로 이것이 진정한 리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혼은 무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결혼이야말로 진정한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닐까요?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그들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족쇄라고 생각할 수 없듯 그들이 꼭 동거에 목숨을 걸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등장하던 이들 부부의 아들인 이강 군의 그 똘망한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의 삶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전쟁이 그들에게 시작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