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디센던트]하와이의 눈물, 남자의 눈물... 그리고 아버지의 눈물...

송씨네 2012. 3. 7. 01:40

 

 

 

 

미국의 열대기후를 가진 섬, 훌라춤, 소수의 민족이 살지만 민족성만큼은 다른 원주민을 능가하는 사람들...

제가 기억하는, 혹은 우리가 기억하는 하와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유의 꽃무늬 남방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

이참으로 아름다운 섬에서 땅 이야기와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게 유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이야기한다면 그 얘기는 달라질지 모르겠지요.

<사이드웨이>로 유쾌한 와인 여행을 보여주었던 알렉산더 페인이 이번에는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죽음과 땅덩어리, 가족애를 이야기합니다.

섹시한 남자에서 이제는 진정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느껴진 작품 <디센던트>입니다.

 

 

 

 

영화는 살며시 미소 짓는 한 여인을 비춰줍니다.

그녀는 바다 위 보트 속에서도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분 후 그녀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입원실에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이 여자는 엘리자베스(파트리시아 하스티 분)라는 여자로 남편은 변호사가 직업인 맷 킹(조지 클루니 분)입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후손들이 남겨준 땅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땅을 팔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 중입니다.

그 와중에 아내는 이 꼴이 되었고 철모르는 막내 스코티(아마라 밀러 분)을 맡아야 합니다.

스코티의 언니인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들리 분)를 만나러 나서지만 거친 입담은 큰 애나 작은 애나 똑같습니다.

거기에 알렉산드라의 막돼먹은 남자친구 시드(닉 크라우스 분)까지 합세하니 정말 꼴이 말이 아니죠.

 

 

알렉산더 페인의 로드무비는 이런 식입니다. 정말 막장에 가까운 패밀리들이 모여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키니깐요.

<디센던트>는 엘리자베스가 산소호흡기를 떼고 곧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이 상황을 남은 가족들이 전달하러 가는 여정입니다.

엘리자베스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딸 알렉산드라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큰 상황이었지만 엘리자베스의 부모님(그러니깐 맷 킹에게는 장인과 장모죠.)은 그녀가 순수한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소식을 알리러 가던 와중 이들 맷을 비롯한 가족들은 마누라의 불륜남을 찾으러 떠납니다.

근데 정말 신의 장난처럼 하필 그녀의 불륜상대는 부동산 업자인 브라이언 스피어(매튜 릴라드 분)이고 하와이 땅 매각문제와 깊은 관여를 한 사람입니다.

팔긴 팔아야 하는데 자신의 마누라와 바람 핀 이 남자와 누군들 거래하고 싶을까요?

 

 

로드무비가 다 그렇듯 삐뚤게 살던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여행을 통해 서로의 삶을 반성한다는 내용은 늘 뻔하지만 이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감동의 깊이는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조지 클루니의 인상은 멋진 중년 남자의 표본이긴 하지만 그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최근 그의 영화들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영화들 위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빠지는 슬랩스틱이 아닌 블랙 코미디나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화된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코미디라는 장르로 규정지었지만 <디센던트>는 결코 코미디 영화라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는 불륜남을 때려눕히는 복수에 불탄 남자가 아니라 알고 보면 여리고 순진한 우리 아버지들의 뒷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라가 어머니의 불륜 현장에 대해 아버지인 맷에게 말하자 분노한 그는 어디론가 미친 듯 뛰어갑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 남자를 어떻게 찾아 복수할까 의문이었는데 맷이 미친 듯이 달려간 곳은 절친인 마크와 카이 부부(롭 휴벨 분, 메리 버드송 분)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아내인 엘리자베스와는 친하므로 그 불륜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포인트는 바로 맷이 뛰어가는 장면입니다. 이는 기존의 조지 클루니가 걷거나 뛰는 장면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즉 이 모습은 조지 클루니가 뛰는 게 아니라 분노에 가득한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이 뛰는 것이라는 것이죠. 상당히 웃기는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맷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해변 방갈로에 브라이언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장소에서 잠복하는 장면도 상당히 웃기는 장면이지만 우리가 그 실제 상황에 직면했다면 아마 절대 웃을 수 없는 장면일 테죠. 하지만 뜻밖에 소극적으로 브라이언 가족 내외와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동안의 조지 클루니 캐릭터와 다르다는 겁니다. 그는 이제 폼생폼사의 남자가 아니라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것입니다. 달라진 조지 클루니의 연기 스타일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맷은 브라이언을 때려눕히거나 지질한 복수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죽어가니 마지막 모습을 보러 오라고 요청을 하지요.

하지만 병문안을 온 것은 브라이언의 부인인 줄리(주디 그리어 분) 입니다. 근데 더 정말로 웃기는 것은 조지 클루니의 이상한 걸음걸이보다도 식물인간의 엘리자베스에게 줄리가 당신을 용서한다고 하는 장면이죠. 사실 이 장면은 어쩌면 브라이언이 병문안을 와서 용서를 구했다면 맷의 마음도 눈 녹듯 녹아버리겠지요. 하지만 브라이언은 용기를 내지 못했고 대신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부인이 대신 와서 울며불며 용서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지요. 이거야말로 '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줄리 입장에서는 정말로 남편과 바람핀 엘리자베스를 용서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이상하게 순서가 바뀌어버렸습니다. 제가 만약 영화 속 맷이었다면 줄리를 바라보며 '헐~!'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맷에게 용서의 의미는 덧없음을 느끼게도 합니다.

 

 

이 작품은 음악이 대박이었지요.

아무래도 영화의 배경이 하와이라는 점에서 하와이의 민요나 가요 등이 총출동하여 마치 하와이에 우리가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하였지요.

하와이를 배경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하와이 훌라걸을 모델로 삼았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영화 <훌라걸스>도 하와이풍의 음악들이 많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두 영화의 OST를 비교해보는 것도 큰 재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센던트>는 가족애를 다룬 영화입니다. 물론 로드무비와 잔잔한 코미디가 뒤섞여 그 가족애가 더욱 부각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잔잔한 코미디 같지 않은 코미디 영화를 좋아합니다. 시종일관 너무 웃기려 드는 슬렙 스틱보다도 이런 작품들이 더 진정성이 보이거든요.

조지 클루니의 뒤통수에서 우리는 남자의 눈물과 아버지의 눈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눈물이 하와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