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부득이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국내에서 좋은 시나리오를 찾지 못하면 하는 방식이 외국 작품을 우리식으로 바꾸는 것이죠.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헐리웃도 그렇게 하고 있는 방식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의 마음에 꼭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화차'의 영화화입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국내로 끌고 온 사람은 바로 변영주 감독입니다.
과연 그녀가 보여주는 어두운 한국의 자화상은 뭘까요? 영화 <화차>입니다.
우선 비교를 해봐야겠지요. 원작인 소설 <화차>는 2011년 일본 아사히 TV에서도 드라마화된 작품인데 소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특징입니다.
혼마라는 전직 형사는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친척인 카즈야가 찾아와 자신의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약혼녀가 사라진 것은 물론이요, 그 약혼녀로 때문에 은행원인 자신도 대출문제와 관련해 상당히 곤란한 입장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죠. 혼마는 사라진 여인 쇼코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름도 가짜, 그 모든게 다르다는 사실을 접하며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 내용이지요.
국내 버전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문호(이선균 분)는 선영이라는 여인에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결혼을 약속하고 문호의 고향으로 향하던 도중 휴게소에서 음식을 사러가던 도중 여인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여인(김민희 분)은 전화 한 통을 받자마자 사라지게 되는데요, 문호는 사촌 형인 종근(조성하 분)을 만나 선영이라는 여인을 찾아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가짜이고 종근과 문호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는 바로 여기부터입니다. 우선 인물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죠. 변영주 감독은 각본을 맡으면서 아예 등장인물을 뜯어고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우선 혼마 형사의 분량을 둘로 나뉘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물론 원작에서는 카즈야가 등장하지만 그 분량이 적지요. 어떻게 보면 카즈야의 역할은 문호 역을 맡은 이선균 씨에게 맡기되 그 분량은 혼마 단독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지요. 어떻게보면 원작에서 혼마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영화로 옮기면서 비중이 약간 줄어들었다고 해야할까요? 국내 버전으로 바뀌면서 혼마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직 형사 종근 역은 조성하 씨가 맡았습니다.
영화나 소설 원작 역시 약혼녀가 파산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은행원인 카즈야가 곤란을 겪게 되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영화로 넘어와서는 문호의 은행원 친구(김민재 분)의 발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배역들을 재배치하여 같은 듯 다른 이야기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도 만족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합격점이겠지요.
홀로 사는 사람들의 정보를 이용해 그 사람에 접근하고 친밀도가 높아졌다고 생각되면 살해하여 그 사람의 이름과 인생을 대신 살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베일 속의 그녀가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빚을 떠안게 된 그녀는 아버지 대신 빛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몸을 팔아 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 와중에 결혼과 이혼, 출산 등의 희노애락을 겪게 됩니다. 아이의 죽음으로 독기만 는 그녀에게 어쩌면 막장으로 치달은 그녀의 인생은 한편으로는 가엽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에서 용산은 모든 것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대형 백화점이 있고 전철역도 들어가 있는 교통의 중심지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용산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상당히 모든 에너지를 감독과 배우 모두 쏟은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심심한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로 애초에 이 엔딩을 염두에 두었느냐라는 의문이 생겨 변영주 감독님에게 직접 트위터로 여쭈어 보았습니다. (빠른 답변 감사드립니다. @ __ @ ) 그녀의 답변은 보시 시다시피 좌측과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여운이 남는 엔딩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요즘 우리가 너무 그 여운이 남는 엔딩에 익숙해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제가 리뷰를 쓰면서 왜 김민희 씨의 극중 이름을 '그녀'라고만 표기했을까요?
영화 속 초반에 그녀의 이름은 선영이지만 나중에 이것이 조작된 것임을 알게 되지요. 선영은 자신이 일하던 회사의 회원정보에 있던 사람이고 그녀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차경선...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경선의 제물이 되고 말았던 진짜 선영(!)의 역을 맡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요가학원>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차수연 씨입니다. 아무래도 영화에서는 반전이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배역 이름이나 실제 배우의 이름을 잘 공개 안 하죠. 이는 마치 공포물에서 귀신 역을 맡은 배우(한을 품고 있을 어떻게 보면 정말 중요한 역할이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특별출연으로 등장하지만 어떻게 보면 왜 희생이 되었는가를 보여줄 인물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은 또한 꽤나 많은 등장인물과 이름도 생소한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동물병원 간호사 한나로 등장한 배우는 김별 씨로 <살인의 추억> 같은 형사물에서는 자료 조사를 하는 일종의 여경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요. 또한 전직 경찰인 종근의 친구이자 형사로 등장하는 성식 역의 최덕문 씨는 사건에 적극 협조해 종근을 돕는 또 한 명의 조력자로 등장해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외에도 최일화 씨는 극중 문호의 아버지 역으로, 임지규 씨는 스토킹 남으로 잠깐 등장하여 짧지만 미친 존재감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로채고 자신의 이름은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위장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지요.
실제로 이 사건은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3월 3일 방송) 를 통해 알려졌으며 이 사건에 대한 짧막한 일화는 씨네 21(845호 'cinepedia' 코너)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노숙인 쉼터에서 한 여인을 만나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속인 뒤 살충제가 들어간 맥주를 그녀에게 먹여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망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사망신고하고 화장을 한 뒤, 본인 명의의 생명보험을 받기 위해 나타났다가 경찰에 붙잡힌 이야기죠.
<화차>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나 지금 이야기한 실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홀로 사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점과 그들을 범죄로 악용할만한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들은 외로운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이죠. 저도 홀로 자취생활을 하지만 다행(?)인 것은 부모님 집이 얼마 멀지 않다는 것과 그래도 저는 나름 외롭지 않으려고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도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르겠지요.
변영주 감독이 정말로 영화화 해야 한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비싼 판권 구입하며 시나리오를 만들었기 보다는 정말로 영화 같은 막장 스토리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씁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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