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줄탁동시]두 소년들... 혹은 외로운 이방인들의 슬픔...

송씨네 2012. 3. 13. 00:38

 

 

 

 

사람이나 동물이나 태어나면서 큰 고통을 얻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할까요?

여기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명은 북에서 넘어와 남한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소년이며 또 한 명은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는 소년입니다.

그들은 과연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영화 <줄탁동시>입니다.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준'(이바울 분)이라는 소년입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남한에 정착해 딴살림을 차렸습니다.

그에게 이곳 남한은 외롭고 힘든 또 하나의 나라입니다. 그는 거기에 이방인이고요.

하지만 기존 탈북자들의 정착기를 다룬 영화들과 달리 준은 다른 이들에 비해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악착같이 악바리처럼 준은 전단 배포, 지하철 명함살포 등등 많은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유소 매니저와의 싸움에서도 지지 않으며 전단지 배포구역에서도 네 구역, 내 구역을 외치는 이들에게도 당당하기만 합니다.

또 다른 북에서 내려온 소녀 순희(김새벽 분)이 주유소 매니저에게 희롱당하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자 준은 주유소 매니저를 혼내주고는 정처없는 길을 떠납니다.

그들의 만남은 반복되었고 지속하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현'(엄현준 분)이라는 소년입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합니다.

수많은 남자의 가슴에 안긴 그는 성훈(임형국 분)이라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납니다.

성훈은 현과 시간을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까지 그 사랑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성훈이 남긴 오피스텔에 홀로 남은 현은 또 다른 이를 초대하게 됩니다. 바로 '준'입니다.

 

1부와 2부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렇게 준과 현의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준이 뜬금없이 미친 듯 서울 종로 거리를 거닐면서 이 영화의 제목인 <줄탁동시>가 뜹니다.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 영화의 타이틀이 뜨기 사직합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약 1시간 30분을 향해가는 시점에서입니다.

3부로 넘어와서는 준과 현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합쳐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준과 현 모두 젊지만 자신이  뭘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당황하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초대는 이들의 불행을 예고하는 위험한 초대이죠.

 

 

 

 

이 작품은 서울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암전이 되는 장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서울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죠. 준은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주유소 알바 일을 하고 있고, 서울 전철역을 돌며 불법 명함과 광고를 붙이고 다닙니다.

준에게 서울은 돈을 벌 수 있는 그냥 그저 그런 장소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의 3부로 향하는 시점에서 준은 하염없이 종로 거리를 거닐죠. (그것도 끊김 없이 롱테이크로 갑니다.)

성산로(독립문 고가차도)를 오토바이로 타고 다니는 준의 모습과 금화 터널을 넘어가는 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연탄가스로 자살을 하려는 장면에서는 더 충격적이죠. 하지만 이 장면은 희한하게도 판타지적인 장면처럼 등장합니다.

순희 집에서 찌개를 먹지 못한 준을 대신해 찌개를 먹고 있는 것은 현이며 연탄가스 속에 거친 기침을 하면서 찌개를 먹고 있습니다. 

연기는 점점 어둑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미래도 암흑천지였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서울의 모습과 어두운 화면들은 어떠면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발견한다면 너무 억지일까요?

 

이 영화의 감독인 김경묵 감독은 독립영화 감독 중에는 드물게 거친 이야기를 자주 담던 감독이죠.

그리고 뜻밖에 성에 관한 이야기와 서울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2008년 작품인 <청계천의 개>가 대표적이지요.

배우들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준 역의 이바울 씨나 현 역의 엄현준 씨는 독립영화에서는 첫선을 보이는 배우들인데요. 각각 탈북 소년과 게이 소년 역할을 멋지게 해내기도 했습니다. (염현준 씨의 경우 제 트위터에 제가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간단히 적은 것을 보시고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셨네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  ) 이 영화에서 유일한 홍일점으로 등장한 순희 역을 맡은 김새벽 씨의 경우 또 다른 독립영화 <로맨스 조>에서 다른 연기를 펼칠 예정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역시 최근 개봉되어서 김새벽 씨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네요.

 

 

 

청년실업을 걱정해야 하는 판에 탈북자나 동성애자 같은 소수의 사람까지 우리가 챙겨줘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실껍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소외계층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보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들의 친구이자 이웃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우리도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만큼 그들도 외로운 삶을 살아갈테니깐요.

 

ps. 아... 그리고 시간 나시면 종로 거리를 한번 거닐어 보시길 바랍니다. 세운 전자상가를 출발해 탑골공원 거리까지 무작정 걸어보는 겁니다.

영화처럼 말이죠... 영화에서 실제로 롱테이크로 등장한 구간입니다. 저 역시도 실제로 이 코스를 자주 걷습니다. 차비가 없을 때, 그리고 그냥 무작정 걷고 싶을 때 말이죠.

청계천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입니다. 다만 겨울밤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걷기에는 너무 외롭고 무서운 거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