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말하는 건축가]건축가 정기용 선생을 통해 보는 진정한 '건축학개론'

송씨네 2012. 4. 1. 10:51

 

 

 

 

우연이었을까요? 올해 특이하게도 건축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두 편이 개봉되었습니다.

한 편은 얼마 전 소개한 상업영화인 <건축가개론>이며, 한 작품은 바로 지금 소개할 작품 <말하는 건축가>입니다.

개봉시기로 따지면 사실 <말하는 건축가>가 먼저 개봉을 했고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도 이미 선을 보인 작품입니다.

한참 개봉했을 영화이죠.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리뷰를 쓰지 못했습니다.

상업영화가 많이 개봉했었고, 시간 여유가 없었으며, 영화를 볼 돈이 없었습니다.

서두에 이런 장황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작품을 보고 故 정기용 선생님에 건축세계에 상당히 존경을 안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우리시대 위대했던 건축가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입니다.

 

 

 

전북 무주의 안성 면사무소... 목소리가 상당히 허스키한 남자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몸짓으로 무선 앰프를 허리에 차고 무선 마이크로 그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면사무소... 행정일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정말로 마을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한마디... "목욕탕이나 지어줘!"...

남자는 자신이 만든 면사무소에 자리잡은 목욕탕에 피로를 풀고 있습니다.

'화상 주의'라는 푯말처럼 물이 너무 뜨겁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보람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죠.

무주 공공 프로젝트는 말씀드린 것과 같이 안성 면사무소를 포함하여 여러 시설을 건축하는 프로젝트였고 바로 이곳에 정기용 선생님이 활약을 했던 것이죠.

 

하지만 어이없는 정부 시책은 공들여 만든 건축물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면사무소와 등나무 운동장에 등장한 태양열 집열판을 보고 화가 난 정기용 선생님은 결국 무주 공공 프로젝트의 설명회를 더는 소개하지 못하고 자리를 뜹니다.

무엇이 이 노인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요? 면사무소는 그렇다 치더라도 등꽃이 자라나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운동장을 지었던 정 선생님에게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녹색성장이니 뭐니 하는 그런 정책은 시대적 착오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라도 아마 분노했을지도 모르죠.

 

다큐의 중심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정기용 선생님의 작품세계와 일상을 볼 수 있는 특별전을 여는 것이었지요.

광화문 동아일보에 있는 일민 미술관(동아일보에 있지만 특이하게도 정치색을 배제한 상태로 이곳은 운영되고 있습니다. 과거 미디엑트가 이 건물에 철수했을 때도 안타까움을 나타낸 것이 일민 미술관 측이었으니 말이죠.)은 정 선생님의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수집한 돌이며, 작품들, 건축 모형 등을 아낌없이 미술관 측에 제공해줍니다. 다큐는 바로 정기용 선생님의 특별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그 속에서 그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삶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기용 선생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동료 선후배 건축가들과 건축 전문가들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뜻밖에 그는 건축을 잘 못한다는 내용의 인터뷰였지요. 위대한 건축가를 앞에 두고 이게 웬 망언이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숨은 뜻이 있었습니다.

정 선생님은 보여는 건축이 아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건축을 생각했던 것이죠. 어찌 보면 그가 만든 건축물들이 거창한 것이 아닌 심플함에 가까운 것도 요란한 디자인이 아닌 정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 위에 여러분이 보시는 '기적의 도서관' 시리즈입니다.

MBC의 간판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는 과거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보시다시피 위의 세 곳의 도서관은 바로 정 선생님이 만든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이들 도서관의 특징이라고 하지요. 아무래도 이 도서관을 주로 이용할 사람들이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일 테니깐요. 그렇게 2003년 순천, 2004년 제주, 2008년 정읍 등에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들어설 공원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습니다.

2007년 민선 4기 시장인 오세훈 씨는 과거 동대문 야구장의 부지를 공원으로 만들기로 방침을 정합니다. 지명 초청 설계 경기라는 것을 통해 건축가들을 상대로 일종의 대회를 벌인 것이지요. 하지만 최종 결정된 것은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인 지하 하디드의 디자인이 선정된 것이지요. 당시 정기용 선생님의 동료였던 조성룡 님도 이 설계 공모에 참여했지만 서울시는 주변환경을 무시한 상태에서 지하 하디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당연히 정기용 선생님을 비롯한 국내의 건축가들은 이번 결정에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죠. 더구나 정기용 선생님에게 동대문 운동장은 추억이 깊었던 곳이니깐요.

 

이렇게 수많은 그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면서 정기용 선생님은 단지 건축계에서 우상화되는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건축가였지만 자연과의 조화와 환경과의 조화, 그리고 거창한 아름다움이 아닌 평범함 속에 모두가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그 편리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정말 전문가들의 인터뷰대로 그는 건축을 정말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껍니다. 하지만 그 속에 인간적인 건축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태풍태양>으로 우리 이웃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이야기한 정재은 감독은 후속작으로 상업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라는 다소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몇 년 전 그가 다녀간 '건축 영화제'를 보고 건축가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계획을 했던 것이죠. 이는 故 정기용 선생님을 오랫동안 만나고 이야기한 결과로 지금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된 것도 정재은 감독 덕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리뷰도 거창한 결론 대신 고인이 된 정기용 선생님의 어록들을 끝으로 끝맺음할까 합니다.

어쩌면 그의 이런 말속에 우리나라 건축계의 숙제는 너무 훤하게 보이니깐요. 이거야말로 진정한 '건축학개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기용(1945~2011) 선생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문제도 이 땅에 있고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에게 있다.

-2010년 11월 정기용 건축전 중 그가 칠판에 적은 글 중에서...-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2011년 3월 5일 그가 일하던 건축 사무소 후배들을 앞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