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바로 '치유' 혹은 '힐링'이라는 단어죠.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이 때문에 자신에게 정신적인 질환(미치광이나 정신병자를 이야기하는게 아닌...)를 치료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죠. 현대인들은 어쩌면 모두 알고 보면 정신병자인지도 모르는 일이죠.
상당히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멜 깁슨이 침대에 누워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인상적인 포스터였지요.
우울증에 걸린 남자의 셀프 힐링 극복기... 영화 <비버>입니다.
월터(멜 깁슨 분)는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는 CEO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 늘어난 것은 잠과 우울증을 동반한 증상들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를 대신해서 얼떨결에 대표가 되었던 상황에서 회사의 경영난은 물론 가족과의 화합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하고 연구하는 아내 메레디스(조디 포스터 분)와 결별을 하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던 와중 쓰레기통에서 비버 인형을 발견합니다.
모텔에서의 자살 시도 중 그를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비버 인형이었지요. 치료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에게 설득한 월터는 공구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기를 좋아했던 둘째 아들 헨리(라일리 토마스 스튜어트 분)의 모습을 보고 비버 모양의 장난감 공구상자를 개발하여 성공을 거둡니다.
한편 숙제나 보고서를 대필해주던 월터의 첫째 아들 포터(안톤 옐친 분)에게 고등학교에서 퀸카로 손꼽히는 치어리더 노아(제니퍼 로렌스 분)에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자신의 졸업 연설문을 대필해달라고 부탁을 하지요. 포터는 노아를 만나면서 그라피티를 좋아했다는 것과 세상을 마약으로 세상을 떠난 오빠 때문에 노아가 괴로워했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숨겨야 했던 노아는 포터 덕분에 달라지려고 하지만 포터도 그리고 그의 아버지라는 월터도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월터가 발견한 비버 인형은 월터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그리고 가족의 화합에도 도움이 되었고 부인 메레디스의 관계도 시작되었고 장난감 사업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지요.
하지만 월터는 절대 이 비버 인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믿었고 그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오히려 더 곤란한 사건을 겪기 때문이죠.
특히나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월터와 포터의 관계는 아내와의 별거로도 힘들었을 상황에서 더욱더 상황을 악화시키게 만듭니다.
포터는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고 아버지를 절대 배우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포스트잇에 수많은 아버지와 자신과의 공통점을 쓰기 시작합니다.
쓸데없는 목운동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힘든 상황에 자포자기로 잠을 청하는 모습까지도 아버지를 닮아버렸지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대로 아버지를 원망만 하게 된다면 끝없는 평행선으로 끝날 확률이 높지요.
월터만큼이나 포터에게도 꿈이 있었지요. 대필 작업으로 모은 돈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라던가 위인들 혹은 명사들이 세상을 떠난 곳을 명시했던 장소들만 여행을 떠나기로 그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죠. 자아를 찾아 떠나는 부분은 같지만 아버지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버릇들은 그곳에서라도 버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월터는 꿈이 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비버 공구 세트로 돈을 벌었고 메레디스와 관계를 갖는 횟수도 늘었으니 이런 행복을 지속하고 싶었을 겁니다. 메레디스가 그의 고민이 기억상실증이 그의 고민일 것이라고 헛다리를 짚은 순간 월터의 감정은 폭발하고 자신이 아닌 인형의 힘을 빌려서 우울증과 자살시도에 대해 고백하기 시작하지요.
월터가 이야기한 부분 중에 이런 대독이 있습니다. "우리에는 상자에 갖혀버린 존재이다"라고 말이죠.
또한 행복한 척 가식을 떠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미친 사람이라는 것이죠.
월터는 비버 인형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심지어는 보이지도 않는 라디오 인터뷰에도 비버 인형을 들고서 말이지요.
영화 중간 중간의 월터의 나레이션은 월터의 나레이션이 아닌 다시 생각하면 비버로서 월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치 사이코 드라마나 일인극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멜 깁슨의 노력은 대단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멜 깁슨은 많은 슬럼프를 겪었다고 하죠. 인종차별 발언에 범죄행위 등의 종합 선물세트처럼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료인 조디 포스터는 그의 편에 서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런 내용이 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월터 혹은 멜 깁슨의 <힐링 캠프>가 되어버린 것이죠.
영화 속 소녀 노아의 모습도 인상적이지요. 치어리더로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지만 자신의 꿈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 같아 보입니다.
더구나 노아와 포터는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다행이었을지도 모르죠. 비버 인형을 손에 끼고 혼자 발악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깐요.
그라피티를 좋아하는 노아는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의 죽음과 어머니의 반대로 자신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되고 그것에 좌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슬픔과 괴로움은 계속 쌓이고 쌓이게 되지요.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쓰지 못해 포터에게 대필을 요청한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런 것이죠. (음... 그렇지만 분명히 대필은 나쁜 겁니다. 범죄행위는 아니더라도 도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지요.)
멜 깁슨의 인상적인 연기와 더불어 조디 포스터가 오랜만에 연출한 작품이라서 이 작품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더구나 연기까지 겸업했으니 매우 힘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외에도 <터미네이터 4>와 리메이크 버전의 <스타트렉>을 통해 새로운 스타탄생을 예고한 안톤 옐친이나, <윈터스 본>을 통해 눈도장을 찍은 제니퍼 로렌스의 모습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영화의 OST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지만 스코어 중심으로 OST인 것이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서도 라디오 헤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씨클로>, <그을린 사랑>, <브레이킹던> 등 그들의 노래는 이제는 단골 손님처럼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 <비버>에서는 '엑시트 뮤직(Exit music)'이라는 곡이 흘러나오는데 역시나 이 음악 영화의 장면과 어울리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트위터로 이런저런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힐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살한 연예인들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과연 그들이 죽기 전에 힐링(치료)를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바로 옆에 있었더라면 그들은 어떠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아무래도 소리 없이 이들이 'help me'를 외치고 있을 때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을 도울 수 있지 않았나라는 안타까움도 듭니다.
영화 <비버>가 이런 슬픔과 괴로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동반한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해봅니다.
'영화에 대한 잡설들 > 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봇]인도에서 날아온 프랑켄슈타인 혹은 터미네이터? 유쾌한 SF 무비! (0) | 2012.04.20 |
---|---|
[하늘이 보내준 딸]'아이 엠 샘'의 카피버전? 영리하게 보완한 드라마! (0) | 2012.04.19 |
[인류멸망보고서]종말론? 그냥 이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0) | 2012.04.14 |
[타이타닉]명불허전의 다시보는 대작... 하지만 3D 효과는 글쎄? (0) | 2012.04.09 |
[어머니]'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리운 이소선 여사... 또 한 명의 철의 여인! (0) | 2012.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