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에피소드 <천상의 피조물> 중에서...
해마다 종말론과 휴거설은 끊임없이 이야기되었습니다.
일부 종교에서는 휴거설을 이야기하며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였고 툭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라면서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했죠.
사실 이런 종말론은 어떻게 보면 경제가 불황이거나 불안한 시기에 특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데 누가 종말과 휴거를 믿겠습니까? 그건 아마도 이 세상이 뒤숭숭한 탓이겠지요.
헐리웃 영화들도 심심치 않게 외계인 침공을 곰탕처럼 재탕하는 등 소재 면에서는 신선도도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내에는 이런 영화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을지도 모릅니다.
만들어진 지는 꽤 되었지만 마땅한 투자자를 못 얻으니 이것 또한 이 영화에는 기약도 없는 이 영화도 창고 속에 처박혀야 할 운명을 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말은 그냥 넘겨버리고 싶은 요즘 과연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요?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입니다.
우선 이 작품의 탄생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원래는 김지운, 임필성 감독 이외에 한재림 감독 등의 세 명의 감독이 세 가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한재림 감독이 빠지면서 두 가지 이야기만 만들어진 상태에서 6년 정도의 시간을 이 영화는 대기 아닌 대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임필성 감독이 한 편을 더 만들면서 세 개의 옴니버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첫 번째로 등장하는 작품은 <멋진 신세계>입니다.
<남극일기>와 <헨젤과 그레텔> 등의 독특한 스릴러로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지요.
하지만 그의 숨겨진 코미디의 끼는 바로 이 작품 <멋진 신세계>와 세 번째 에피소드인 <해피 버스데이>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연구원으로 근무중인 석우(류승범 분)은 직업과 달리 천방지축으로 사는 사나이입니다.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외국여행을 가게 되면서 그에게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및 기타 여러 가지를 남겨 놓고는 떠나 버리지요.
역시나 문제는 그 음식물 쓰레기였습니다. 분리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가 다시 그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깐요.
소개팅으로 만난 유민(고준희 분)과 오붓한 한 때를 보낸 이 커플들은 불량 청소년들로부터 공격을 당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긴 괴력으로 석우는 이 불량 청소년들을 때려눕히게 되지요.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온몸이 어지러움증을 느낀 석우와 그와 키스를 한 유민 역시 이상한 증세를 보이게 되었고 며칠 후 사람들은 좀비처럼 변해 버립니다.
좀비라는 소재는 어떻게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좀비가 되는 방식이 기존과 좀 다르다는 것이죠.
향기나고 맛도 좋은 사과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면서 문제를 일으킬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테니깐요.
이는 몇 년전 광우병 파동과 조류 독감 등의 사건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6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므로 상당히 시대적으로는 잘 안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반대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최근 헐리웃에서 개봉된 <퍼펙트 센스>나 <컨테이젼>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오염 때문인 감염이 더 치명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서운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첫 번째 에피소드인 <멋진 신세계>는 앞으로 충분히 다가올 수도 있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놈놈놈>과 <악마를 보았다>의 김지운 감독입니다.
스릴러나 르와르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였던 그이지만 <천상의 피조물>이라는 에피소드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천상사라는 절에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는 상황에서 도우미 로봇으로 활동하던 RU-4(박해일 분/목소리 출연)에 문제가 생기게 되지요.
수리하러 온 엔지니어 도원(김강우) 분과 사찰 스님들 간에 작은 의견이 충돌하게 됩니다.
RU-4는 인명 스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스님들과 로봇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도원 간에 말싸움이 벌어진 것이죠.
수리가 보류된 상황에서 도원의 집에 애완용 로봇 강아지를 수리해달라고 다짜고짜 한 소녀(조윤희 분)가 찾아옵니다.
남은 부품이 없다며 대충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그 소녀는 애완용 강아지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게 됩니다.
거대 기업이자 RU-4를 교체를 담당하는 RU라는 기업의 대표인 강 회장(송영창 분)이 직접 찾아와 교체를 명령하지만 도원을 비롯해 스님, 그리고 혜주 보살(김규리 분)까지 결사반대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천상의 피조물>은 왠지 무서운 제목과 달리(이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의 소제목들은 그 제목과 달리 내용이 상당히 우울하거나 그 반대인 작품들이 많습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특히나 저는 불교계에서 이 에피소드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네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등장하는 영화는 매우 많습니다. 물론 로봇이 이 되물음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절에서 활동 중인 도우미 로봇이 그런 의문을 갖는다는 점이 이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RU-4가 자신의 깨달음을 혜주 보살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죠.
로봇 혹은 무생물이라 불리는 것도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며 부처가 될 수 있느냐 의문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로봇이 절이 아닌 성당이나 교회를 지키는 로봇이라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김지운 감독답지 않지만 그게 오히려 더 이 에피소드를 집중하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에피소드의 말미의 도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최고의 반전인데요. 이 부분도 생각해볼 부분이라고 봅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더 이야기 하긴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세번째 에피소드 <해피 버스데이> 중에서...
마지막 에피소드의 감독은 다시 임필성 감독으로 넘어갑니다.
어쩌면 마지막 이야기야말로 가장 가까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고 실제로도 세 가지 에피소드 중에 최근에 촬영을 마친 작품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집중하기 좋은 에피소드입니다. 한 소녀에게 감당하지 못할 생일 선물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이야기인 <해피 버스데이>입니다.
민서(진지희 분)는 아버지가 아끼던 당구공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것도 ⑧번이 찍힌 당구공이 망가져 버리지요.
부랴부랴 민서는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깨진 당구공을 다시 구매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는 사이 망가진 당구공은 골목을 지나 정체 모를 구멍에 빠지게 되지요.
몇 년 후... 갑자기 지구에 거대한 혜성이 날아온다는 뉴스 속보를 듣게 되는 민서네 가족들...
과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던 민서의 삼촌(송새벽 분)은 지하실을 개조해 이들 가족의 임시 피난처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뉴스 속보에서 민서는 화들짝 놀랍니다.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그 혜성이 당구공 모양에 ⑧번이 찍혀 있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이디가 적혀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구를 향해 날아온 외계 쇼핑몰(?)의 정체는 과연 뭘까요?
가장 현실적인 이 에피소드는 어쩌면 지구가 멸망하면 가장 높은 가능성을 지닌 혜성 충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혜성충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상당히 코미디 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영화 <아마게돈>스러운 비장함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대신 영화는 수없이 집안을 가득체운 통조림 상자와 긴급시 조달해서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의 모습만 보입니다.
혜성충돌을 앞두고 홈쇼핑 채널은 휴대용 방공호를 팔고 있고요. (가장 웃기는 대목이었지요.)
외계인의 정체가 후반부에 등장하지만 상당히 허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것은 외계인의 정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구가 멸망해도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거든요.
<인류멸망보고서>는 세 가지 다른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가까운 미래의 모습들을 경쾌하고도 우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SF 영화가 없다는 문제점에서도 어느 정도 그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영화이고요.
하지만 이 영화가 조금더 빨리 만들어졌더라면 관객들이 이야기하는 표절 혹은 유사 논란의 영화들의 리스트를 우리가 굳이 볼 필요도 없었겠지요.
지구 종말을 정말 믿으시나요? 진짜 믿는 분은 없을 껍니다.
갑자기 이 세상이 두 조각 혹은 수십 조각이 되지 않는 이상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휴거설과 멸망설을 보아왔듯 이번에도 그냥 헤프닝으로 끝날 확률이 높겠지요.
그러나 정말로 이 세상이 사라진다 면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 안해본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과나무를 심을까요? 아니면 휴대용 방공호를 찾아 홈쇼핑에 구매 의사를 밝혀야 할까요?
우울한 세상... 그냥 웃기에는 이 세 편의 에피소드 저에게는 매우 공감되는 이야기라고 보이네요.
PS. 세 에피소드에는 각각 의외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고등학생으로 많이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마동석 씨,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토론 패널로 등장하는 김지운 감독, 혜성 충돌의 급박한 상황에도 막말과 엉뚱한 고백을 하는 류승수 씨와 이영은 씨... 그리고 진지희 양을 대신해서 등장하는 배두나 씨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셀러리맨 초한지>에 악날한 비서 모가비의 부활이 느껴지는 김서형 씨도 세 편의 에피소드 가운데 어딘가 숨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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