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내 아내의 모든 것]시대의 변화... '마누라 죽이기' 대신 '마누라 유혹하기'?

송씨네 2012. 5. 14. 22:22

 

 

 

수십 년 동안 모테솔로로 보내고 있는 저에게는 어쩌면 치명적인 점은 연예 경험이 없다는 것과 더불어 권태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연애를 하면서도 권태기에 시달리고 결혼 후에도 깨가 쏟아지던 신혼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권태기가 찾아오겠지요.

권태기는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 누군가 먼저 냉전상태가 될 것이고 심한 경우라면 이혼도 불사하겠지요.

이 '사랑과 전쟁'스러운 이야기가 곧 펼쳐집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하 <내 아내...>)입니다.

 

 

 

일본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던 두현(이선균 분)은 지진 사고로 당황하던 정인(임수정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정인은 요리를 공부하던 여인이었는데 이렇게 두 사람은 일본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현이 정인에게서 두려워 하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녀가 너무 요리를 잘해서 온종일 녹즙부터 시작해서 계속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정인의 무서운 독설이죠. 온갖 불만을 참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덕분에 투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마누라 때문에 두현은 늘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는 기분이죠.

아내와 잠시 떨어져 살고 싶은 그에게 강릉 출장 소식은 희소식이나 다름없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경기장 건설 담당으로 뽑히는 것은 그에게는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출장 간 거처까지 행차하신 그의 부인... 그런데 두현은 옆집에서 이상한 모습을 목격입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여성들... 그것도 '미녀들의 수다'를 옮긴 듯한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매주 방문하는 옆집... 알고 보니 성기(류승룡 분)라는 남성을 연모하는 여성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전설의 카사노바!

입에 걸레를 문 것처럼 거친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부인이 무서운 두현은 그녀를 떨어뜨리기 위해 성기에게 자신의 부인인 정인을 유혹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에 두현의 절친인 지방 라디오 방송국 작가인 송 작가(김지영 분)를 통해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섭외 로비까지 벌입니다. 이리하여 정인은 자신의 불만을 PD이자 DJ인 최 PD(이광수 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가 이야기하게 됩니다. 청취율이 바닥이던 이 프로그램의 청취율이 높아지고 인기도 많아지면서 서울 진출의 꿈도 싣게 됩니다. 거기에 도도할 줄만 알았던 정인도 성기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되지요.

'우리 마누라가 달라졌어요~!'를 느낀 두현은 정인과 다시 시작하려고 하려고 하지만 성기와 정인의 사랑이 깊어지니 그는 두렵기만 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볼까, 말까라는 고민이 컸던 영화니깐요.

아무리 이선균 씨와 임수정 씨라는 나름 티켓 파워가 있는 분들이라도 부인을 유혹해 달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별 특색이 없는 소재로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임수정 씨의 노출장면이 이슈가 되었던 시점(물론 대역을 썼다지만...)에서도 저는 이 영화가 그리 당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민규동 감독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그는 로맨틱 코미디에는 이제는 확실히 노하우가 쌓인 감독이기 때문이죠. 역시 기대만큼이나 그 기대치를 보여주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혹이라는 소재는 뻔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설정이 더 들어갔습니다. 거침없는 독설을 하는 여성이 그것이고, 카사노바이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허당의 느낌이 나는 카사노바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더해져서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지만 독특한 스타일의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준 것이죠.

 

나름 신선했던 이유 중 하나라면 두현과 정인이 결혼에 골인하는 시점을 스피드하게 자막과 화면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일본과 국내를 넘어가면서 벌이는 그들의 애정행각과 아기자기한 자막을 보는 사이 결혼을 한 이들 커플을 보게 되고 그 사이 이 영화의 제목이 올라오는 방식이지요. 엔딩크레딧에 해당하는 에필로그 부분도 놓칠 수 없는 잔재미를 주는 장면도 있을 정도로 코미디 영화가 갖춰야 할 부분을 나름 잘 갖추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성기가 보여주는 느끼한 대사나 동작들이 퍼레이드로 지나가는 장면들이 많은데요. 버터나 기름이 필요할 정도(!)로 느끼한 맨트나 장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성기의 무기라는 것이죠. 영화의 말미에는 성기의 또 다른 비밀(그렇게 놀라울 정도는 아닙니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도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런 느낌의 영화 과거에도 있지 않았나요? 1994년의 강우석 감독의 영화 중에 <마누라 죽이기>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마누라 죽이기>가 남편이 권태기에 접어든 상태에서 아내를 죽이려 킬러를 고용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코믹한 상황을 다룬 작품이라면 <내 아내...>는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죠. 과거에는 이혼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이런 소재가 등장했지만 현재는 이혼이라는 것이 사화적 이슈 그 이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내를 죽이는 대신 아내를 꼬셔달라는 남편의 주문은 황당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출연진인 이선균 씨나 임수정 씨, 류승룡 씨는 의외로 몸에 맞는 배역으로 등장하여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선균 씨는 착한 남자부터 나쁜 남자도 연기한 배우였던지라 그의 이번 역할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임수정 씨는 사실 <전우치> 이후 전환점이 되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순정녀나 얌전한 역할에서 벗어나 고난도의 액션도 하고 점차 섹시한 역할에도 도전하게 된 것이지요. 근데 거기에 독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여성이라는 점은 뜻밖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의외는 류승룡 씨였죠. <별순검>, <고지전>, <최종병기 활> 등에서 그는 젠틀맨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고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도 모두 잘 어울리는 배우였죠. 이 영화에서도 젠틀맨의 이미지가 강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애견 뽀삐를 잃고 나쁜 남자가 되었다는 설정은 좀 말도 안 되고 웃기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순정마초이면서 허당이지만 매력적인 카사노바 역할을 수행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조연급으로 큰 활약을 보여준 이광수 씨나 김지영 씨 외에도 깜짝 등장한 김정태 씨, 박희본 씨, 정성화 씨의 모습들도 보는 재미도 큽니다.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니 분위기를 바꿔 패션에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뜻밖에 권태기에 좋은 방법은 잠시 헤어져서 서로 생각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럼에도 권태기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그들은 인연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저 웃고 떠드는 영화이긴 하지만 권태기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음식을 질리도록 먹는 것도, 욕설과 불만과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곁에 오래두고 살아가는 것도 늘 행복할 수만은 없는 일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