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다른 나라에서]이자벨 위페르를 품은 홍상수... 글로벌 찌질이들의 행진!

송씨네 2012. 5. 19. 11:59

 

 

 

늘 말씀드리지만 홍상수 월드에는 항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찌질이고, 반대로 여자들은 지혜롭지만 은근히 까칠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홍상수 영화를 만드는 힘이고 그의 스타일이 되어버렸죠.

칸 영화제에 올라가는 한국 영화중에 임상수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들어서 아실껍니다.

그야말로 상수 VS 상수의 대결이죠. 하지만 두 감독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고 그들이 들고온 영화도 전혀 다르죠.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는 독특합니다. 외국인 배우가 첫 기용되었다는 것이죠. 그것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인 이자벨 위페를 기용했다는 겁니다.

<낮과 밤>에서 해외로케를 한 적은 있지만 외국배우를 오히려 찾기 힘든 홍상수 감독은 이번에는 제대로 판을 키워보려고 하나 봅니다.

안나와, 안나... 그리고 또 안나가 벌이는 기상천외 한국 체험기... 영화 <다른 나라에서>입니다.

 

 

 

태안 모항... 한 모녀가 펜션에 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들은 피신을 내려온 상황이죠. 시간도 때울 겸 딸 원주(정유미 분)는 자신이 펜션 주인이 된 듯 안나(아자벨 위페르 분)라는 외국인이 한국에 방문한 이야기를 단편 시나리오로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안나] 영화감독인 안나는 한국인 감독 종수(권해효 분)과 그의 부인 금희(문소리 분)을 이끌고 모항의 펜션에 들어섭니다.

종수는 결혼했고 만삭의 부인이 옆에 있음에도 안나에게 과거 나누었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 사랑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편 구경할 만한 곳은 찾던 안나는 원주에게 등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등대를 찾다가 안나는 해상 안전요원 유한(유준상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안나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그녀를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면서 텐트에서 안나에 관한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안나] 서래마을에 살던 안나는 프랑스 남편이 있지만 영화감독 문수(문성근 분)과 불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을 피해 모항에 온 안나는 문수를 기다리지만 그는 늦는다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유명한 영화감독이라 낯가림도 심한 문수를 안나는 이해할 수 없지요. 등대를 찾은 안나는 잠이 들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문수와의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세 번째 안나] 부잣집 여인인 안나는 한국 여자에 정신이 팔린 남편과 이혼한 상태입니다. 위로차 민속학 교수 박숙(윤여정 분)과 모항의 펜션에 들어섭니다. 옆방에는 감독 부부인 종수와 금희가 있고요. 낮에는 해상 구조요원으로, 밤애는 숯을 굽는 유한의 모습도 보입니다. 초면인 상태에서 종수는 안나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겠다면서 새벽에 펜션 밖으로 유인합니다. 그러나 금희에게 걸리게 되고 모두에게 망신만 당하게 됩니다.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 같은데... 어디서 많이 보셨다고요? 그건 여러분이 생각하신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홍상수 감독의 많은 영화에서 보여준 방식을 집대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의 영화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옴니버스 형식은 물론이고, 한 명의 사람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은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오! 수정>이나 <하하하>에서 각기 다른 사람의 눈으로 같은 상황을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거나 <북촌방향>처럼 한 이야기를 마치 다른 사람이 본 것처럼, 마치 처음 경험한 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하는 전개방식도 있지요. 홍상수 감독은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은 이 모든 홍상수 영화 스타일의 집대성처럼 보입니다. 같은 이름의 인물이고 장소도 동일하고 주변인물도 동일하지만 그 구성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 명의 안나의 성격은 전혀 다른데 안나 주위의 인물들의 성격은 모두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첫번째 이야기에서 종수 & 금희 부부의 모습과 세번째 이야기의 종수 & 금희 부부의 성격은 동일하다는 겁니다. 그 상황만 다를 뿐이고요. 거기에 안전요원이 안나를 짝사랑하는 모습은 세 가지 이야기 모두 동일시 된다는 것이며, 심지어는 마지막에 안전요원의 멘탈이 붕괴(일명 '멘붕'이죠!)되는 결론 또한 동일하다는 겁니다.

 

안나의 성격도 다르지만 그 여행을 하는 배경에 있어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요.

길이 양갈래로 갈라지고 안나는 고민합니다. A라는 곳을 가게 되면 안나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등대가 있으며 B라는 곳을 가면 해변과 안나에게 집적대는 이상한 성격의 해상안전 요원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이는 안나에게 찾아온 인생극장과도 같은 것이죠. ('그래! 결심했어'를 외쳐야 할 순간이죠.) 두 갈래의 길 속에 안나의 인생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네스 펠트로의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자벨 위페르와 유준상 씨를 위한 영화처럼 보입니다.

이자벨 위페르는 아시다시피 부산영화제를 다녀가 영화인들과 거리낌 없이 춤을 추는 등의 멋진 모습도 보여주었지요. 그것이 어쩌면 홍상수 영화를 출연하는 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염소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장면이나 한국소주에 반해 깡소주 두 병을 원샷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죠.

유준상 씨는 이제는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여러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데요. 이름없는 수상안전 요원(보도자료에는 '유한'이란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으로 등장해 세 가지 에피소드에게 작게나마 등장해 펜션과 모항 바다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앞에서도 이야기 드렸다시피 마지막은 이 수상안전 요원의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죠. 상당히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홍상수 사단에 처음으로 출연한 권해효 씨는 마치 과거에도 홍상수 영화에 출연한 것처럼 상당히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찍고 딸을 낳았다는 문소리 씨는 아예 만삭인 상태에 영화에 출연하며, 문성근 씨는 정치계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연기를 보여줍니다. (중앙일보 기선민 기자는 이 영화를 보고 이자벨 위페르는 제1야당 대표 권한대행(민주 통합당의 최고위원) 뺨을 두 대나 때린(?) 대단한 여자라고 위트 있는 멘션을 남기기도 했으니깐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인물이 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바로 도울 김용옥 씨입니다. 그의 헤어스타일에 걸맞게 스님으로 등장해 이자벨 위페르와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철학자답게 절대 쫄지 않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기자시사 후 간담회까지는 길게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국인이 낯선 땅에서 경험하는 모습들을 재미있게 그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친절해서 불편할 수 있는 한국인들의 과대(?) 친절과 낯선 땅에서 경험하는 신기한 것들을 홍상수 감독 방식으로 그렸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은근히 줌 장면이 많았죠. 앞에 리뷰로 소개한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을 360도로 끊임 없이 빙딩 돌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의 촬영이었는데 (이래서 상수 VS 상수의 대결이 볼만하다는 것이죠.) 줌 장면이 많았던 것에 대해서는 홍상수 감독은 말을 아꼈지만 간담회에서는 실수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 장면은 의도된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끊임없이 이자벨 위페르를 땡겨서 보여주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언젠가는 알려주시겠지요?)

 

 

 

홍상수 영화는 심한 노출 장면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늘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데에는 사실적이며 직설적인 홍상수 감독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직설적으로 남녀의 애정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서는 그것이 약간 지저분하고 직설적이지는 않으나 화면에만 집착해서 그야말로 야하다, 선정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점에서 홍상수 감독은 상당히 깔끔하게, 그러나 직설적으로 남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지저분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요.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에게 경고하는 홍상수 감독... 다음에는 어떤 이들에게 경고장을 날릴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