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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맛]돈에 환장한 로열 패밀리... 찌질한 인간들아! '돈의 맛'을 보아라!

송씨네 2012. 5. 18. 20:57

 

 

 

1995년 우리나라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백수건달 달수(박중훈 분)은 자신의 계좌에 억대의 돈을 발견합니다.

억대의 돈이 신기했던 그는 외상값 받으러 온 은지(정선경 분)과 거액의 돈을 발견하고는 돈으로 뺨을 때리기도 하고 온갖 난리법석을 떨기도 하죠.

왜 갑자기 이 이야기냐고요? 사실 저는 이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주 인용이 되던 장면이 돈으로 뺨도 때리고 즐거워하던 모습이었지요.

그만큼 돈으로 얻어맞아도 즐거운 것은 그것이 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돈의 노예에 살고 있습니다.

돈에 환장한 사람들... 찌질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찌질이 로열 패밀리들이 여기 있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돈과 권력에 대한 블랙 코미디... 영화 <돈의 맛> 입니다.

 

 

윤회장(백윤식 분)의 지시에 따라 한 남자가 돈을 큰 여행용 가방에 넣고 있습니다.

비밀금고에 달러와 원화가 가득한 이 곳... 너도 좀 챙기라며 윤회장은 이야기하지만 영작(김강우 분)은 그냥 돈가방에 돈을 넣는데만 집착합니다.

윤회장의 아들 윤철(온주완 분)의 비리를 덮기 위해 로비용으로 준비하는 돈가방입니다.

그렇습니다. 윤회장은 잘나가는 대기업의 대표입니다. 그의 아내 금옥(윤여정 분)이 있긴 하지만 그녀보다는 필리핀 하녀인 에바(마우이 테일러 분)과의 사랑에만 집착합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영작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이 집의 큰 딸 나미(김효진 분)은 그나마 멀쩡한 편이죠. 어릴 적 불타죽은 젊은 하녀를 눈으로 봤던 터라 그녀만큼은 돈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깐요.

윤회장과 에바의 불륜 현장을 본 금옥은 분노에 다다르고 영작에게 위로 받고 싶어합니다.

에바와 살겠다면서 짐을 싸는 윤회장에 그에게 출금금지를 넣어버리는 금옥... 다시 윤회장은 아들을 검찰로 고발하는 초강수까지...

이 뿐이 아닙니다. 그들의 해외 돈세탁을 도와줄 로버트(달시 파켓 분)의 등장으로 윤회장의 돈은 동해번쩍 서해번쩍 자취를 감추기까지 하니깐요.

서로에게 모욕을 준 패밀리들... 과연 이들의 돈과 권력으로 이루어진 전쟁의 끝은 언제쯤 올까요?  

 

 

 

다시 서두의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돈의 맛>의 패밀리는 앞의 달수와 은지 커플처럼 돈으로 뺨을 맞고 돈을 가지고 쌩쇼를 하는 일은 하지 않겠죠. 그들은 품위 있는 로열 패밀리이니깐요. 식탁 겸 다용도 실로 활용하는 그들의 저택안의 미니 미술관이나 길게 널브러져 있는 오디오 시설이나 수 많은 옷방에 걸려 있는 옷들, 가치를 환산하기 힘든 그림 작품들... 보고만 있어도 그들의 돈지랄(표현이 좀 지저분하지만...)를 보고 있으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화가 날 일이죠.

그러나 아시잖아요. 이 영화는 서로에게 모욕감을 주기 충분합니다. <달콤한 인생> 에서 강사장(김영철 분)만 모욕감을 받은 건 아니니깐요. (넌 네게 모욕감을 줬어...  ^^; )

 

그런점에서 임상수 감독의 전작 <하녀>(2010)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말고요.

대저택에 온 은이(전도연 분)은 이 집안의 패밀리들에게 크나큰 모욕감을 받지요. 거기에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갖기까지 했으니깐요.

<돈의 맛>을 <하녀>와 연결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의외로 이 영화는 <하녀>의 후속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연관성 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우선 <하녀>에서는 은이가 나름 키운 어린 나미를 보게 되실껍니다. 이 당시 이 어린아이의 이름이 '나미'였는지도 기억이 나진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하녀>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충격적인 결말을 보셨을 겁니다. 바로 이것을 보고 자란 나미가 현재는 성인이 되어 돈에 환장한 윤 씨네 가문의 가족이 되어있는 것이죠. (아, 물론 <하녀>와 <돈의 맛>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확실히 다릅니다. 따라서 <돈의 맛>을 무조건 '하녀 2'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금물이죠. 단지 방식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들 가족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공교롭게 이들이 보는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입니다. 자신의 영화를 자신이 다시 비틀어주고 있는 상황이죠. 후반에는 영작이 구타와 더불어 비닐봉지에 질식사 당할뻔한 테러를 당하는데요. 무대 뒤편에서 상영되던 영상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라는 점도 특이하죠.

그리고 노비서(황정민 분)은 아예 '우리는 하녀나 다름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하녀>와의 연장선상이 있음을 확실히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아예 임상수 감독은 대놓고 친절하게 여러장치를 집어넣어 <하녀>와의 유사성을 이야기한 것이죠.

 

영화는 시사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故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블랙 코미디로 엮은 그의 작품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암전상영(!)이라는 사상 특유의 상영방식을 보기도 했지만요.) 시사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문제를 바로 이들 부유층 로열 패밀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블랙 코미디로 엮어나가고 있는 것이죠. 가령 윤회장이 故 장자연 씨 사건을 대놓고 언급하는 부분이나 쌍용차 노조의 파업 장면 영상을 보고 윤철과 로버트가 이들의 파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재벌들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그릇된 인식이자 우리들 같은 서민이 보기에는 정말 재수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재수없죠. (우리에게는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 코너로 알려진 김준현 씨가 과거 <폭소클럽>을 통해 'MR. 귀족'이란 코너를 맡았던 적이 있는데 바로 요런 느낌이었지요. 가난한 서민들을 우습게 바라보던 부유층의 모습을 코미디로 나타냈던 코너 말이죠. 딱 그 느낌입니다.)

 

 

 

 

 

출연진들이 참 화려했지요. 윤회장 역의 백윤식 씨나 사실상 패밀리를 이끌고 있는 백금옥으로 등장하는 윤여정 씨의 포스는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윤여정 씨의 경우 더구나 예순이 넘는 나이에 김강우 씨와의 정사 장면은 상당히 파격적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정말로 나이 든 사람은 섹스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깐요.

하지만 의외의 수혜자라면 김효진 씨 일 것입니다. 사실 이를 두고 말이 많았지요. 백윤식 씨, 윤여정 씨, 김강우 씨 모두 과감한 노출을 하였던 반면 김효진 씨는 큰 노출 장면이 없이도 관능미와 지적인 모습을 골고루 보여주었으니깐요. 하지만 배우가 영화에서 벗었다, 벗지 않았다... 혹은 섹스를 했다, 하지 않았다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것이고요. 그것은 배우의 선택이지 관객이 그 배우에게 벗으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깐요.

 

 

그런데 정말로 의외의 등장인물이 보이네요. 우리에게는 영화평론가로 알려진 달시 파켓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로 고루 트위터로도 활동하는 그는 이번 작품이 두번째 영화라고 하더군요. 자칫 <서프라이즈> 같은 재연배우 분들만도 못한 연기를 보여줄 우려가 있었지만 노출도 있고 로열 패밀리의 돈의 흐름을 관리하는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컸다고 봅니다.

 

영화의 엔딩은 어어부밴드 맴버이자 배우이면서 화가로 활동하는 백현진 씨가 맡았습니다. 김강우 씨가 부르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 일 없이 산다'도 인상적이지만 영화의 엔딩에 거친 목소리로 백현진 씨가 부르는 '그 맛'은 사운드도 거칠고, 가사도 거칠지만 그 가사 안에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기 멀리서 당신이 내게 손짓하네. 나는 당신을 아네! 당신은... 돈. 나는 당신을 먹네. 찢어 씹어 먹네. 당신은 맛있네. 당신은 돈.
나는 당신을 먹고 또 먹네. 돈 냄새가 나니 또 뜯어먹네. 그 맛이 화끈하여 난 녹아 흐르네. 나는 부득이 당신이 되네.
바위에 앉아서 생각해 보네. 의자에 앉아서도 생각을 하네. 당신 생각을 돈 생각을. 돈! 당신 생각을! 당신의 그 맛을!
당신은 바로 나. 나는 바로 당신. 금빛 먼지 속에서 우리는 돈.

(이하 생략)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1 억을 서민이 버는 방법... 아무 것도 쓰지 않고 그냥 숨만 쉬며 살면 되는 것이라는 말은 그저 웃을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좀 더 거칠어지긴 했지만 반대로 관객에게 작품의 의도에 관해서는 친절하게 이야기하려고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벗기고 벗기다가 결국에는 파멸하는 한 가족을 보면서 정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관속의 노잣돈 냄세에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정말 '돈의 맛'은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요... 돈... 당신은 정말 위대한 종이 덩어리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