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부산을 갔다왔습니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고 제 통장의 잔고를 다 털어서 가는 여행이었지요.
해운대 바다를 보았고, 영화의 전당도 들여다보고, 해운대 시장에서 튀김을 먹으며 아무 생각없이 1박 2일을 보냈습니다.
바다를 보는 것만큼 기분전환을 하는 좋은 방법도 없으리라 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산으로 들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죠.
여기 저처럼 아무 생각없이 부산을 찾은 두 남자가 있습니다. 입봉(흔히 정식 데뷔를 하는 감독들을 일컫는 말로 일본식 단어죠. 영화에서는 '입봉'이라는 단어가 많이 실제로 나옵니다만 언어 순화를 위해 '데뷔'라고 여기서는 표현하겠습니다.)을 준비중인 감독과 삼류 건달 전문 배우가 만나 2박 3일 동안 부산을 돌고 왔습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을 것 같은 저 바다와 부산영화제... 과연 그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영화 <슈퍼스타>입니다.
어느 한 녹음실... 한 남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진수(송삼동 분)은 4년 동안 영화를 준비중인 감독입니다. 말이 감독이지 내세울만한 작품 하나 없는 남자입니다.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절친이자 같이 영화를 하면서 만났던 무명 배우 태욱(김정태 분)을 만나게 됩니다.
태욱은 주로 건달이나 조폭 전문배우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배우이지요. 그는 갑자기 렌터카를 가지고 오더니 진수에게 부산으로의 여행을 제안합니다.
LPG 차량인지도 몰랐던 것부터 시작해 그들의 고생길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
무작정 이들은 부산영화제 리셉션에 들어가 안성기 씨와 이준익 감독을 얼떨결에 만납니다.
하지만 태욱의 목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냥 화끈하게 부산에서 여자들이나 만나 놀아볼 생각인 것 같네요.
그러나 숫기 없는 진수로 인해 그렇게 상황은 좋지만 않습니다. 한편 태욱은 장 감독으로부터 배역이 대폭 조절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괴로움에 빠집니다.
그러던 와중 과거 스텝으로 지내던 시절에 만난 은숙(장경아 분)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애정지왕'이란 제목의 영화를 들고 그야말로 영화제에 입봉을 하는 순간이지요.
전날처럼 여자들과 노닥거리던 태욱과 진수... 하지만 진수는 전화 한 통을 받고 충격에 잠깁니다. 데뷔가 좌절되는 순간입니다.
충격을 받고 우울감에 빠진 진수는 은숙의 작품을 함께한 스텝들과의 자리에 합석해 온갖 추태를 부리고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사실은 이 영화는 알고보면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감독인 임진숙 감독은 이 영화의 주연인 김정태 씨와 절친한 사이로 물론 가공된 일화도 있겠지만 힘들었던 시기에 진짜 부산영화제를 서성이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영화에 반영이 된 것이죠. 김정태 씨의 본명이 김태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 태욱 역은 그에게 딱 맞는 것이 되지요.
또 하나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페이크 다큐와 드라마 사이를 오가는 점입니다.
실제 영화에서는 화자가 되는 진수의 나레이션이 들리실 텐데요. 가상의 다큐를 녹음하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도 기존의 영화와 다른 점이죠. 더구나 배우들이나 영화계 인사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며 심지어는 장항준 감독처럼 아예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기에 영화속의 가상의 영화인 '애정지왕'의 두 배우인 정찬 씨와 박수진 씨는 아예 마치 연예정보 프로그램 인터뷰를 하는 것 뭐냥 '우리 영화 많이 사랑해주세요'라는 닭살스러운 멘트도 합니다. 이것이 이 작품이 다큐인지 영화인지 사람을 헛갈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것이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예이지만 최근 유세윤 씨가 출연했던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인 <UV 신드롬>이나 최근 방송되고 있는 <유세윤의 아트 비디오>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실제 영상과 실제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이중에는 실제가 아닌 가공된 화면과 일화가 숨겨져 있고 전문가들은 마치 그들이 영웅이거나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철판을 깔고 말한다는 것이죠. 이런 페이크 다큐(혹은 모큐멘터리라고도 불리죠.)의 대표적인 예를 하나 더 꼽으라면 작년 MBC 스페셜에서 방송된 <노처녀가>라는 프로그램일 것입니다.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하고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알고보면 모두 배우였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속에서 시대의 흐름이나 여러 장치를 집어넣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논란과 더불어 찬사를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페이크 다큐는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공감과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게 비난받을 장르(?)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슈퍼스타>는 상당히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영화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가상의 인터뷰에 등장한 장항준 감독의 예를 들면 그는 태욱에게 굴욕감을 안겨준 이로 등장합니다. 태욱은 당초 그의 영화에 주조연급으로 등장시키려고 하지만 주연배우의 지인을 출연시켜 달라는 주연배우의 요청에 태욱의 배역을 몇 단계로 내려버리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주연배우가 중도하차하여 영화가 엎어지는 경우도 있고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엎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연배우와 투자자는 감독에게 있어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로 생각되는 것이죠.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굽신거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가 수진의 영화 상영 후 이어진 음식점에서의 뒷풀이 장면일 것입니다.
여기서 투자자(김철홍 분)가 등장하는데요. 수진에게 독립영화도 좋지만 상업영화도 찍어야 하지 않냐며 100억대의 돈으로도 예술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나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수는 이에 격분해 그와 싸우게 되지요.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장 힘든 점이 바로 이 돈과 연계된 문제입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투자자 역시 영화계에서는 절대권력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점이죠. 최근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보면 배우이름 보다도 투자자, 투자사의 이름이 먼저 올라가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야말로 정말 영화계에 절친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뒷담화를 숨김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외에도 신인 데뷔를 한 10명의 감독 중에 세 명 정도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수 있다라던가, 세 번은 데뷔 준비에서 엎어져야 그나마 다음에는 진짜 데뷔 할 수 있다는 영화계의 속설과 징크스도 들려주고 있으니 아마도 영화계 관계자들은 영화를 보시고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또한 태욱과 진수가 어린 애들처럼 '벤츠가 최고다... 아니다! BMW가 최고다' 욱신각신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힘든 현실이지만 자신들에게도 꿈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이한철 씨의 동명 곡인 '슈퍼스타'로 끝을 맺게 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해뜰날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아봅니다.
그게 비단 영화계 뿐일까요?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 아직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 좌절하고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이 영화가 작게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작게나마 해운대 바다를 걸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노력한다면 어렵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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